ADVERTISEMENT

오겜·지옥·지우학 세계 1위 휩쓸어도…한국은 못 웃는다 [K콘텐트의 불안한 흥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히트작인 '오징어 게임'과 넷플릭스 로고. [셔터스톡]

지난해 히트작인 '오징어 게임'과 넷플릭스 로고. [셔터스톡]

지난해 '오징어 게임'과 '지옥'. 올해는 '지금 우리 학교는'.

'오징어 게임'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한국 콘텐트 히트 #하지만 수익 배분과 저작권 소유 문제로 논란 계속돼 #OTT가 한국 콘텐트의 기회 넓힌 지금이 공정성 확립할 시점

 글로벌 OTT 넷플릭스를 강타한 '코리안 메이드' 드라마들이다. 제작비를 전액 지원받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들이지만 전 세계 안방 시장에서 'K 영상'의 몸값을 높였다. 하지만 숙제도 남겼다. 수익 독식 논란이다. 넷플릭스 등이 제작비는 충분히 지급하지만 흥행에 성공해 수익이 급증하는 경우 한국 제작사에 추가로 지급하는 '성과급'은 없다시피 하다는 논란이다. 업계에서는 갈수록 요긴해지는 IP(Intellectual Property·지식재산권)를 해외 OTT에 떠넘기는 계약 내용 자체가 문제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해 넷플릭스 수익 독식 논란은 국정감사장으로도 번졌다. 문체위 임오경 의원은 "'오징어 게임'에 넷플릭스는 200억원을 지원하고 3주 만에 시가총액이 28조원 늘었다"고 지적했다.

 K 드라마의 대성공은 분명 환영해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수익 독식 논란이나 IP 자체를 넘기는 계약은 문제적이다. 바람직한 시장질서는 어떤 것일까. 현장의 목소리를 두루 들었다.

 국내 드라마 제작사 합종연횡

지난해 12월 '크리에이터 얼라이언스'를 출범시킨 9개 제작사들. [사진 초록뱀미디어]

지난해 12월 '크리에이터 얼라이언스'를 출범시킨 9개 제작사들. [사진 초록뱀미디어]

 지난해 말 초록뱀미디어·김종학프로덕션 등 9개 드라마 제작사들은 '크리에이터 얼라이언스'를 결성했다. 자금력은 물론 제작 인력을 공유해 넷플릭스 드라마에 맞설 고품질 콘텐트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이들은 그런데 "하나의 사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IP를 보유하도록 힘쓰겠다”고 했다. IP는 한 콘텐트를 다른 장르로 변형하거나 부가사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매력적인 드라마를 만들어 넷플릭스와 방영권 계약을 맺어 수익 독식을 막을 뿐 아니라 드라마에서 파생된 2차·3차 콘텐트들의 지식재산권도 확보하겠다는 얘기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이 당장 가져온 변화다.

 앞으로 넷플릭스 드라마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2016년 국내 상륙 이후 지금까지 31편의 영화·드라마를 제작 지원했다.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2019년 ‘킹덤’, 지난해 ‘고요의 바다’ 등이 모두 넷플릭스가 돈을 댄 작품들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금까지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투자 총액은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만 5500억원을 쏟아부었다. 미국 본토 바깥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하는 시장이 한국이다.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트를 총괄하는 강동한 VP(Vice President)는 지난달 "지난해 15편을 만들었고, 올해는 25편을 만든다"고 밝혔다. 한국 제작사들에게 추가 수익과 저작권을 적정하게 보장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매일매일 고민한다"고만 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영상산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넷플릭스 사무실 바깥까지 드라마 프로듀서들이 줄을 서는 형국이다. 역시 제작비가 두툼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돈의 온기는 번진다. 영화 '부산행', 드라마 '지옥'을 만든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의 성공으로)확실히 제작 환경이 점점 나아진다. 드라마 예산도 이전과 비교하면 넷플릭스가 크게 높여 놓은 상태"라고 했다. 2016년 16부작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편당 제작비는 7억5000만원 정도였다. 9부작 '오징어 게임'은 편당 20억원이 넘는다. 제작비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얘기다. 법무법인 세종의 임상혁 변호사(한국저작권위원회 부위원장)는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유연하게 드라마를 만들 수 있고, 국내 감독·배우의 해외 지명도도 높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다양한 작품이 만들어지고, 감독이나 배우 등 국내 창작인력에 대한 해외 수요 역시 늘어나리라는 전망이다.

 국내 제작사 보호하는 길은  

영상 플랫폼의 중심이 되고 있는 OTT들. [사진 복스미디어 웹사이트 폴리곤]

영상 플랫폼의 중심이 되고 있는 OTT들. [사진 복스미디어 웹사이트 폴리곤]

 넷플릭스의 한국 사업 손익계산서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넷플릭스가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철저히 함구해서다. 지난해 순익을 공개한 직원을 해고하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드라마 IP를 확보해 2·3차 저작물 수익까지 싹쓸이한다는 국내 우려는 모든 드라마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가령 드라마 '지옥'은 웹툰이 원작이다.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가 '지옥'의 만화원작 IP를 갖지는 않는다. 원작 IP의 영상화 권리를 가진 것이다. 그래서 ‘지옥’의 스핀오프 소설을 낸다면 그것은 넷플릭스와 관계없는 일이 된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서비시스 코리아의 연주환 팀장 역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타이틀마다 수익 배분에 대한 계약은 매우 다르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 중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중 한 장면. [사진 넷플릭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국내 제작사가 넷플릭스와 협상을 맺는 현실은 당분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선행 계약들의 구체적 조건을 알 수가 없고, 협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저 수익률 보장이나 창작 기여도에 따른 최소한의 저작권 보유와 관련된 기준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리얼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 대표는 “현재로써는 넷플릭스와 콘텐트 계약을 맺을 때 수익분배, IP 소유권에 대해 정해져 있는 기준이 없다”고 밝혔다. 표준화된 계약 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원 대표는 특히 "코로나 상황에서 헐값으로라도 작품을 만들고 싶어하는 제작사까지 보호할 룰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임상혁 변호사 역시 “제작사와 OTT 계약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계약 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넷플릭스와 계약 경험이 있는 대기업들이 동반자 감각을 가지고 노하우를 공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OTT 법제도 연구회를 통해 넷플릭스의 수익 독식 논란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체부는 국내 중소 제작사가 해외 OTT의 투자를 받는 경우 계약 내용에 IP 공유 조건을 명시해야 '드라마 펀드'를 통한 제작비 투자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코로나에 넷플릭스 덮친 국내 영화계

한국영화 개봉작 숫자 비슷해도 신인감독 작품은 급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영화 개봉작 숫자 비슷해도 신인감독 작품은 급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런 가운데 메가박스, CJ CGV, 롯데시네마 등 극장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주요 정당 관계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코로나 직격탄으로 수입이 크게 줄었다며 긴급 지원 요청을 했다는 후문이다. 넷플릭스발 호황과는 상반되는 현상이다.

 영화 ‘기생충’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최근 영화계가 겪는 어려움을 "K콘텐트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기생충’으로 결국 한국 영화계가 돈을 벌었는데, 최근에는 웬만한 작품이 흥행하더라도 그 수혜가 기획자나 창작자에게 가기 힘들고 그러다 보니 새로운 창작자가 사라지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영화판에서 성장하며 노하우를 쌓은 감독·스태프 등 제작인력을 ‘오징어 게임’ ‘D.P.’ 등 넷플릭스 드라마들이 빨아들이는 현실에 대한 우려가 섞인 진단이다.

 지난해 국내 영화 관객 수는 코로나 이전 대비 30% 수준이었다. 제작을 마친 영화들의 개봉이 줄줄이 연기되다 보니 신임 감독들의 '입봉'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올해 CJ ENM,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등 주요 투자ㆍ배급사의 개봉 예정작 49편 가운데 신인 감독 데뷔작은 9편뿐이다. 2020년 신인 감독 영화가 전체 50편 가운데 17편(34%)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이런 현상은 영화 다양성 실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신인 감독 이상근의 2019년 영화 '엑시트'는 색다른 재난 소재로 942만 명이라는 예상 밖 흥행을 기록했다. 이런 작품을 더이상 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정세 메가박스중앙ㆍ스튜디오M 본부장도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2016)이나 '리틀 포레스트’(2018)처럼 '좋은 이야기’의 영화화를 망설이게 된다"고 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