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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정명훈이 부담? 음악 자체가 가장 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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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정민. 올해부터 강릉시립교향악단을 맡아 지휘한다. [사진 스테이지원]

지휘자 정민. 올해부터 강릉시립교향악단을 맡아 지휘한다. [사진 스테이지원]

 “아침마다 아버지의 피아노 소리에 일어나고는 했다.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아버지의 새벽 악보 공부보다 앞서진 못했다. 이제는 나도 새벽에 악보를 본다. 최근에 ‘악보 공부 지겹지 않으냐’고 아버지에게 물어봤더니 글쎄 ‘아주 많이 지겹다’ 하시더라!”

지휘자 정민 인터뷰 #정명훈의 셋째 아들, 강릉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취임 #"음악의 기가막힌 순간 위해 지휘한다"

지휘자 정민(38)의 아버지는 정명훈(69)이다. 세 아들 중 막내인 그가 지휘봉을 작심하고 들었다. 강릉시립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 2년 임기를 올해 시작했다. 서울대 음대에서 더블베이스와 바이올린을 전공한 정민은 2007년 부산 소년의집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와 깜짝 데뷔했고 2015년엔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취임했다.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정식으로 맡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정민은 “지휘자가 꼭 돼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내 진로에 거의 신경 쓰지 않아서 나 혼자 악기를 바꿔가며 음악을 했다. 음악의 힘에 끌려 이렇게 왔다”고 했다.

어린 시절 궤적은 정명훈의 지휘 이력과 일치한다. 정명훈이 1984년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를 맡았을 때 자르브뤼켄에서 태어났다. 89년 바스티유 오페라단 음악감독이 됐을 때는 따라서 파리로 갔다.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였던 아버지와 로마에서도 살았다. 정민은 “출신이 어디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참 힘들다”면서 웃었다.

오케스트라는 그의 일상이었을까. 정민은 “꼭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남들보다 오케스트라 공연과 리허설을 더 많이 보며 자라긴 했겠지만,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 하며 자랐다. 부모님도 무엇이 되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

첫 악기는 일렉트릭 베이스였다. “둘째 형이 기타를 치길래 같이 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러고는 어쩌다 오케스트라의 더블베이스에 관심이 생겨 배우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바이올린이었다. “하루는 정경화 고모가 아버지와 함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했다. 그 음악이 참 좋았는데 브람스가 더블베이스 협주곡은 쓰지 않았다는 게 답답했다. 그날로 악기사를 혼자 찾아가 100달러에 바이올린, 활, 케이스, 송진까지 샀다.”

여러 방식으로 음악을 경험하던 중 첫 지휘는 부산이었다. 보육 시설인 소년의집의 오케스트라를 알게 된 정명훈이 2006년 그에게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면서 지내보라”고 했다. 매주 부산에 내려가 아마추어 중고등학생들을 지휘하며 2007년 한국에서 처음 지휘대에 올랐다. 2010년 뉴욕 카네기홀, 2012년 도쿄 산토리홀까지 함께 섰다. “아이들과 같이 성장했다”고 했다.

지휘자 정명훈의 세 아들 중 막내인 지휘자 정민. [사진 스테이지원]

지휘자 정명훈의 세 아들 중 막내인 지휘자 정민. [사진 스테이지원]

지휘를 집중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 아버지에 대해 “음악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지만 지휘 테크닉 같은 건 전혀 가르쳐주지 않는 분”이라고 했다. 대신 실전 무대에서 성장했다. 그간 일본ㆍ이탈리아ㆍ러시아 등에서 심포니와 오페라 무대에 섰던 정민은 “미안하게도 오케스트라를 고생시키면서 배웠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면서, 너무 창피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 지휘를 익혔다.” 그는 “오케스트라가 없으면 연습할 수도 없는 지휘자가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무대는 어렵지만, 환희는 충분하다. “음악을 할 때 기가 막히고 굉장한 순간이 많다. 아름다워서 죽어도 될 것 같은 순간이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적어도 음악의 이런 순간만큼은 아버지 영향으로 경험했다. “열 살도 안 됐을 때 아버지가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했는데 귀가 확 열렸다. 도대체 어떤 소리가 이럴 수 있는지 아주 놀랐다.”

지휘자로서 그는 고(故) 버나드 하이팅크의 말을 믿는다. “세계 일류 교향악단을 다 지휘한 그가 90세가 돼서도 베토벤 9번 교향곡 1악장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여기는 끝이 없는 세계다.” 또 아버지 정명훈의 말도 기억한다. “모든 연주가 오디션이라고 했다. 아무리 유명하고 경력이 화려해도 소용없다. 그날 그 순간에 음악을 제대로 못 하면 오디션에서 떨어진 사람과 다름없다.”

‘누구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은 정민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는“그게 억울하면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농담으로 답을 시작했다. “아버지 때문에 특별히 더 부담되지는 않는다. 음악 자체의 부담감이 이미 너무 컸기 때문이다. 공부와 고민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저 음악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던 그는 비유를 하나 들었다. “마이클 조던 아들이 농구를 했다더라. 그거야말로 부담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포츠니까. 누가 더 골을 많이 넣는지, 많이 이기는지가 가장 중요하니 바로 비교가 되지 않나.” 음악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지휘자는 누가 더 경력이 좋은지 그런 경쟁이 안된다. 나를 ‘정명훈 아들’로 봐도 되고, 안 그래도 된다. 나는 음악하고만 씨름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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