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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좀비 학교의 합창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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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좀비로 폐허가 된 ‘효산 고등학교’에서 이 합창 음악은 좀 낯설었다. 그레고리오 알레그리(1582~1652)가 작곡한 ‘미제레레(Miserere)’다. 조금 긴 원래 제목은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Miserere mei Deus)’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넷플릭스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7화에서 이 곡이 흘러나왔다. 생존자들이 수많은 좀비를 음악실로 유인하고 뒷문으로 탈출하려고 틀었던 노래다. 피범벅이 된 음악실에 참으로 대조적이었고 그래서 적절했던 음악이다.

거의 400년 전 이 음악이 울렸던 곳은 로마의 시스티나 대성당. 라파엘로, 보티첼리,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경이로운 그림으로 둘러싸인 이 성당에서만 연주될 수 있었다. 교황은 이 곡의 단 한 페이지도 교회 밖으로 나갈 수 없게 금했고 규칙을 어기면 파문했다. 작곡가 알레그리가 교황청 소속이었고, ‘미제레레’는 음악이기 이전에 예배 의식이었으며 교회에서 해야만 하는 기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대 사람들은 ‘그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교황의 독점욕을 해석하곤 한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생존자들이 합창곡 ‘미제레레’를 틀어놓고 좀비떼를 막는 장면. [사진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생존자들이 합창곡 ‘미제레레’를 틀어놓고 좀비떼를 막는 장면. [사진 넷플릭스]

죽음과 비극으로 뒤덮인 고등학교에서 울려 퍼진 소절은 ‘미제레레’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높은 ‘도(C)’ 음의 부분이었다. 솔로 소프라노는 높으면서도 마음을 찌르는 듯한 이 음을 부른다. 무엇보다 17세기의 음악 어법에 맞도록 거의 아무 기교 없이 부르는 점이 중요하다.

드라마에서 나온 부분의 라틴어 가사를 번역하면 이렇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다.’ 시편 51편 중 한 구절로,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신의 용서를 처절히 구하는 내용이다.

‘미제레레’는 별다른 장치가 없어서 아름답다. 장엄한 오르간 반주도 없고, 복잡한 멜로디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9개의 서로 다른 성부로 된 사람의 목소리가 각각 오르내리며 교차하거나 분리된다. 인간의 소박한 목소리일 뿐인데도 ‘미제레레’는 특별하게 강한 힘을 가진다. 17세기 이 곡이 부활절 직전 성 금요일에 연주될 때는 곡에 맞춰 촛불을 하나씩 껐다. 나지막한 합창에 따라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면서 인간은 죄를 진심으로 고백하게 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가장 비극적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골랐다. 2020년 12월에도 비슷한 선택이 있었는데, 바로 넷플릭스 ‘스위트홈’이 오프닝 음악으로 쓴 모차르트 레퀴엠이었다. 여기에서도 죽은 후 신의 심판 앞에 선 인간이 용서와 구원을 간절히 구한다. 수백 년 전부터 절실히 자비를 요청해왔던 인간들의 음악이 인기 드라마에 잇따라  쓰이고 있다. 종교와 상관없이, 어디엔가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