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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中, 한국여론 안다”더니…中대사관 '한복 논란'에 “억측, 비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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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일 오후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회식의 중국 국기 입장에서 한 여성(앞줄 왼쪽 둘째)이 한복을 입고 있다. 김경록 기자

4일 오후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회식의 중국 국기 입장에서 한 여성(앞줄 왼쪽 둘째)이 한복을 입고 있다. 김경록 기자

주한 중국 대사관이 베이징 겨울 올림픽 개막식 공연에서 촉발된 ‘한복 논란’에 대해 “일부 언론의 억측과 비난”이라며 문화공정이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한복은 조선족의 복식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사관 대변인은 8일 오후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우리는 일부 언론에서 중국이 ‘문화공정’과 ‘문화약탈’을 하고 있다며 억측과 비난을 내놓고 있는 데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족 한복 착용, 바람이자 권리” 

이어 “중국의 각 민족 대표들이 민족 의상을 입고 올림픽에 참석하는 것은 그들의 바람이자 권리”라며 “중국 조선족과 한반도 남북 양측은 같은 혈통과 복식을 포함한 전통문화를 갖고 있다”고 했다. “이런 전통문화는 한반도의 것이며 또한 중국 조선족의 것으로, 이른바 ‘문화공정’ ‘문화약탈’이라는 말은 전혀 성립될 수 없다”면서다.

주한 중국 대사관 대변인이 8일 오후 언론에 배포한 '한복 논란' 관련 입장문. 웹사이트 캡처

주한 중국 대사관 대변인이 8일 오후 언론에 배포한 '한복 논란' 관련 입장문. 웹사이트 캡처

이런 입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제기되는 우려의 핵심은 한복이 한국 고유 전통문화가 아니라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의 복식으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이를 중국의 의도적 연출로 의심까지 하는 우려의 배경에는 한복, 김치, 태권도 등을 두고 억지 원조 주장을 펼쳤던 중국의 반복된 문화 왜곡 시도가 있다. 대사관의 입장에는 이런 맥락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셈이다.

특히 이는 직전 한국 외교부가 내놓은 설명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국내에서 치솟는 반중 감정의 또 다른 원인으로 정부의 대중 저자세 외교가 지적되자 외교부 당국자는 8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 외교 당국은 중국에 적절한 경로로 국내적 관심과 우려를 정확히 전달했다”고 반박했다. “중국도 ‘한국 내 관련 여론 동향을 잘 알고 있다’며 이번 개막식 공연이 문화 원류 문제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을 확인해왔다”면서다.

中 “한국 고유 문화” 인정했다더니 

중국이 한국에 전했다는 입장은 “한국 측이 문화적으로 특별히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 “이런 공연과 상관없이 한복이 한국과 한민족 고유의 전통문화라는 명백한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을 것” 등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대사관의 입장은 한복이 조선족의 전통 복식이기도 하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사관이 한복 논란을 “억측”으로 표현한 것도 조선족의 한복이 베이징 올림픽에 등장한 것을 한국에서 공연히 문제 삼는다는 것처럼 들릴 여지가 있다.

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을 입은 한 공연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을 입은 한 공연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대사관은 “중국 측은 한국의 역사·문화 전통을 존중하며, 한국 측도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 각 민족 인민들의 감정을 존중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사관은 입장문 제목에서부터 ‘한복’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의 중국 조선족 의상 관련 문제’로 표현했다.

개막식(4일) 이후 한복 논란이 뜨겁던 나흘간 침묵하던 대사관이 공식 입장을 낸 시점도 공교롭다. 한국 외교부가 중국이 외교 경로로 해명성 입장을 전달해왔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진화에 나선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한국 언론에 입장문을 배포했기 때문이다. 외교 경로는 통상 한국 외교부-주한 중국 대사관, 혹은 중국 외교부-주중 한국 대사관을 일컫는다.

김치와 파오차이. 중앙 포토

김치와 파오차이. 중앙 포토

앞서 2020년 말 중국이 절임 채소 음식인 파오차이 제조법을 국제표준화기구(ISO)에 등재하며 “중국이 김치 산업의 6개 국제 표준을 제정했다”(중국 관영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 보도) 등의 식(食)문화 왜곡에 나섰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중국은 이런 절인 발효식품을 파오차이라 부르고, 한반도와 중국의 조선족은 김치라고 부른다”고 말해 논란을 증폭시켰다.

美 대사관 "한국 하면 한복" 트윗 

한편 한복 논란과 편파 판정 등으로 국내 반중 정서가 높아지는 가운데 주한 미국 대사관이 한복 등 한국 문화를 부각하는 트윗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크리스 델코소 주한 미 대사대리는 이날 밤 트위터에 “대한민국(태극기로 표시)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김치, #K팝, #K드라마...#한복은 말할 것도 없죠”라고 한국어로 적었다. 한복을 입고 갓을 쓴 사진과 함께다.

그는 지난해 8월에도 캘리포니아주 의회가 ‘김치의 날’을 지정한 것을 두고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한국이 ‘김치 종주국’임을 선언했습니다”라고 올렸다.

앞서 파오차이 논란이 한창이던 2020년 12월 해리 해리스 당시 주한 미 대사는 김장 담그는 사진과 함께 “김치 종주국인 한국에서 생활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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