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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숲 안 보고 나무만 보는 대선 공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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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지난해 취업자 수가 36만 명 이상 증가, 2014년 이후 7년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물론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 취업자가 감소한 데 따른 기저효과가 반영돼서다. 도소매업 취업자가 15만 명 줄어들고 숙박음식점업 취업자도 2년 연속 감소했다. 또 60세 이상 일자리는 증가했지만 30대와 40대 취업자 수는 줄었다. 게다가 근로시간이 주 36시간 미만 취업자가 크게 늘면서 고용의 질이 나빠졌다. 지난달 12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 희망자들이 구인게시판을 살피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취업자 수가 36만 명 이상 증가, 2014년 이후 7년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물론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 취업자가 감소한 데 따른 기저효과가 반영돼서다. 도소매업 취업자가 15만 명 줄어들고 숙박음식점업 취업자도 2년 연속 감소했다. 또 60세 이상 일자리는 증가했지만 30대와 40대 취업자 수는 줄었다. 게다가 근로시간이 주 36시간 미만 취업자가 크게 늘면서 고용의 질이 나빠졌다. 지난달 12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 희망자들이 구인게시판을 살피고 있다. 뉴시스

이렇게 즉흥적 공약이 많았던 대선이 있었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와 병사 월급 200만원을 들고나와 주목을 받았다. 이에 질세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탈모약에 이어 피임·임신중절 건강보험 적용 같은 소확행 공약을 쏟아낸다. 캐스팅보트처럼 떠오른 이대남(20대 남자)·이대녀(20대 여자)를 붙잡기 위한 필살기다. 그런데 이런 정책들은 사회적 합의가 안 됐거나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다. 모두 현실의 벽이 높다. 다분히 즉흥적이다.

특정 연령 겨냥한 즉흥적 공약 남발 #득표 경쟁 위한 공약은 재정만 낭비 #표 사냥 멈추고 경제 선순환 힘써야

 선거를 통해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고 삶의 질이 향상된다면 바람직한 방향이다. 다만 득표를 위해 남녀노소를 갈라 온갖 명목으로 돈을 퍼주고 재정을 악화시킨다면 유권자에겐 소탐대실이다. 선심성 공약은 받을 때 잠시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금세 오간 데 없어질 일회성 혜택이다. 결국 미래에 눈덩이 청구서를 받아 드는 청년은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제물(祭物)이 된다.

 그래도 굳이 연령대별로 공약을 마련한다면 사십대를 빼놓긴 어려울 것 같다. 최근 우연히 사대남·사대녀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어느새 사십대로부터 멀어져 미처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있었다. 일단 사십대는 부동산 정책 실패의 최대 피해자가 아닌가 싶다. 특히 자녀 교육비와 내 집 마련 비용이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연령대다. 그런데 아파트값이 서울의 경우 두 배로 뛰었다. 문재인 정부는 투기를 차단하고 집값을 원상복구한다면서 공급을 틀어막았다. 집을 사면 후회할 테니 그냥 가만있으라고 했다. 그 결과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대로다.

 사십대는 크게 세 유형이 있다. 첫째, 현 정부 말만 믿고 내 집 마련을 미룬 경우 졸지에 내 집 마련 기회를 박탈당했다. 둘째는 ‘영끌’로 은행에서 3억~4억원 안팎을 빌려 집을 사들인 경우다. 셋째는 돈이 좀 있었는데도 집 살 기회를 놓치고 주식이나 비트코인에 투자한 경우다. 비단 사십대만의 얘기는 아니겠지만 이런 딜레마에 빠진 사십대가 많다고 한다.

 이들 모두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벼락거지가 된 첫째 경우도 박탈감이 크지만, 둘째와 셋째 경우도 고민이 크다. 둘째의 경우 집값이 올랐다는 안도감은 잠시뿐이었다. 미국발 금리 인상과 함께 집값 하락 조짐이 닥쳐오면서다. 특히 이들이 영끌에 나설 때는 은행 돈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는 게 함정이었다. 최근 3~4년간 저금리가 절정에 달했을 때 정부는 대출 규제를 확 풀었다. 물불 안 가리고 대출을 받는 배경이 됐다. 고금리를 경험했던 고령자들은 은행 대출 무서운 줄 알지만 젊은 영끌족들은 과감하게 돈을 빌렸다고 한다.

 너무 과열돼 정부가 슬슬 돈줄을 조이자 이들은 은행권을 벗어나 돈을 빌리고 다녔다.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실체도 뚜렷하지 않은 투기를 잡는다며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40%까지 낮추자 신용대출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중 카카오뱅크 대출은 최근 금리가 10%를 넘나든다. 집값 침체가 본격화하면 이들의 고통은 심각해질 수 있다. 1990년 일본에서도 버블 절정기에 뒤늦게 영끌 매수에 나섰던 젊은 층이 집값 하락의 덫에 걸렸다.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기준금리로 활용되는 코픽스(COFIX, 자금조달비용지수)가 일제히 상승한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은행 영업점에 대출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전날 은행연합회가 공시한 지난해 12월 기준 코픽스에 따르면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1.69%로 전월 대비 0.14%포인트 상승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이 취급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잇따라 오를 전망이다. 뉴시스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기준금리로 활용되는 코픽스(COFIX, 자금조달비용지수)가 일제히 상승한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은행 영업점에 대출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전날 은행연합회가 공시한 지난해 12월 기준 코픽스에 따르면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1.69%로 전월 대비 0.14%포인트 상승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이 취급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잇따라 오를 전망이다. 뉴시스

 교훈은 무엇일까. 표 사냥을 위한 공약은 숲은 안 보고 나무만 보는 나쁜 공약이다. 이십대가 힘들면 사십대도 힘들다. 사십대는 문 정부의 가장 확고한 지지층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으로 얻은 게 별로 없다. 시장경제 원리를 거스른 온갖 정책실험 때문에 반듯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사십대는 현 정부 내내 일자리가 줄었다. 고령자도 장수 리스크 때문에 미래가 막막하다.

 대선후보들은 이제라도 파편적 표 사냥을 내려놓고 미·중이 각축을 벌이는 첨단 산업 진흥 같은, 국민 전체를 위한 보편적 공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선순환하고, 그게 국민이 생애 전체로도 더 잘사는 길이다. 4주 후 오늘, 이런 길을 열어주는 대통령 당선인이 나와야 한다.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