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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18개 면적 샅샅이…양주 실종자 찾은 구조견 아롱·태공이

중앙일보

입력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사고 현장을 수색하는 구조견들.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사고 현장을 수색하는 구조견들.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지난 2일 오후 1시쯤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매몰사고 현장. 핸들러와 함께 수색하던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특수대응단 소속 119 구조견 ‘태공(5·암컷·벨지안 말리노이즈)’이가 멈춰섰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더니 ‘멍’하고 짖었다. 무언가가 있다는 신호다.

군 금속탐지기가 바닥을 훑었다. 태공이가 맞았다. 흙을 퍼내자 유압실린더가 발견됐다. 마지막 실종자 정모(52)씨가 쓰던 천공기에서 나온 것이다. 1시간 더 땅을 파자 이번엔 유압붐대가 발견됐다.

하지만, 태공이는 계속 ‘밑에 더 있다’는 듯 주변을 빙빙 돌며 짖었다. 오후 4시쯤 땅속에서 정씨가 몰던 천공기 본체 잔해가 확인됐다. 1시간 30분 뒤엔 본체가 인양됐다. 정씨는 작업할 때처럼 조정석에 앉은 상태로 숨져 있었다.

첫 날은 아롱이, 마지막은 태공이 

양주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매몰사고 현장에서 희생자들을 찾는데 구조견들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첫날 실종자 2명을 찾은 데 이어 마지막 실종자 발견에도 구조견들의 공이 컸다.

사고는 설 연휴 첫날인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8분쯤 발생했다. 석재 발파를 위한 천공작업 중 토사가 붕괴해 현장에서 일하던 작업자 3명이 매몰됐다.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 등은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다.

구조견 태공이.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구조견 태공이.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사고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30만㎡의 토사가 쏟아져 내라면서 작업현장이 사라졌다. 휴대전화 위치추적 결과 실종자들은 모두 현장에 매몰된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넓은 수색 면적이었다. 축구장 18개가 넘는 13만㎡였다. 소방당국은 삼표 측의 굴삭기로 토사 제거 작업을 진행하면서 양주 중장비 연합회에 대형 굴삭기 지원을 요청했다. 토사가 무너진 방향을 1차 수색범위로 정했다. 그리고 인명구조견 투입을 결정했다.

첫날은 ‘아롱(9·수컷·래브라도 리트리버)이’의 활약이 컸다. 투입 1시간 만에 매몰된 굴착기를 발견했다. 아롱이는 매몰된 장비 4대는 물론 실종된 정모(30·사망)씨와 김모(57·사망)씨를 잇따라 찾아냈다.

구조견 아롱이.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구조견 아롱이.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수색작업은 연휴 내내 이어졌다. 태공이와 아롱이, 전진(7·수컷·벨기에 마리노이즈) 등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소속 구조견은 물론 경찰견까지 투입됐다.

영하 10도에도 연휴 내내 실종자 찾아 

연휴 내내 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고 폭설이 내렸다. 설상가상 2차 붕괴 위험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현장에 투입된 소방과 경찰, 양주시, 산림청, 군인 등 관계자들은 연휴를 반납한 채 실종자 찾기에 매달렸다.

산전수전을 겪은 구조견들에게도 쉽지 않은 현장이었다. 더욱이 구조견들은 1월 초부터 채석장 사고 현장에 투입되기 1주일 전까지 광주광역시 현대산업개발 신축 공사 붕괴사고 현장으로 장기 출장을 다녀왔다. 태공이를 돌보는 오문경 핸들러(49·소방장)는 “수색 범위가 워낙 넓었고, 날씨도 추운 데다 장시간 대기하면서 구조견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며 “항상 현장에서 날아다니던 아이들인데 이번엔 예전보다 움직임이 둔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사고 현장을 수색하는 구조견 태공이.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사고 현장을 수색하는 구조견 태공이.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그러나 제 몫은 톡톡히 해냈다. 첫날 아롱이에 이어 지난 2일 태공이가 마지막 실종자인 정씨를 찾아냈다. 정씨의 시신이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옮겨지는 순간 현장 가까이에 있던 구조대원 등 십여 명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구조견들도 자리를 지켰다.

한 소방 관계자는 “인명 구조견과 금속탐지기가 이상 반응을 보인 장소가 동일했다”며 “현장에 투입된 모든 이들이 고생했지만, 구조견들이 없었다면 실종자들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닷새간의 수색 작업엔 소방대원 649명과 유관기관 직원 368명 등 1016명(누적 인원 기준)이 투입됐고 굴착기 등 각종 장비 366대가 동원됐다.

1년에 100일을 현장에서 보내는 인명 구조견

태공이는 지난해 10월 열린 전국 119 구조견 경진대회에서 종합 2등을 차지한 ‘능력견’이다.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특수대응단의 119 구조견들은 지난 2018년과 2020년 대회에서도 각각 단체 1등, 단체 3등에 입상했다.

출중한 능력 탓에 출장도 잦다. 365일 중 100일 이상을 현장에서 보낸다. 일이 없어도 매주 3~4일은 훈련에 매진한다.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사고 현장에서 수색에 나선 구조견 아롱이.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사고 현장에서 수색에 나선 구조견 아롱이.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양주 채석장 사고 현장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구조견들에게 핸들러들은 상을 줬다고 한다. 오 핸들러는 “구조견은 현장에서 날렵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체중 조절 탓에 적정량의 먹이만 먹는다”며 “수색현장에서 고생한 만큼 이번에 특별식으로 오리 목뼈를 선물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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