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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개막식에 한복 등장시켜…또 반중 정서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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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4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에서 치마저고리와 댕기머리를 한 조선족 여성 등이 중국의 오성홍기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에서 치마저고리와 댕기머리를 한 조선족 여성 등이 중국의 오성홍기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시작부터 문화공정(다른 나라의 고유문화를 중국이 원조인 것처럼 주장하는 행태) 논란에 휩싸였다.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식 행사에 한국의 전통 의복인 한복이 등장하면서다. 개막 전부터 미국 주도의 ‘외교적 보이콧’(선수단만 참가하고 정부 대표단은 보내지 않음) 동참을 두고 국내 여론이 양분됐는데, 올림픽이 시작되자마자 한복 논란으로 반중 정서가 불붙는 분위기다.

지난 4일 개막식엔 중국 내 56개 민족 대표가 차례로 오성홍기를 전달하는 퍼포먼스가 포함됐다. 이 중 조선족 여성이 댕기머리를 한 채 한복을 입고 등장한 장면이 문제가 됐다. 개막식 전 조선족 자치주가 있는 지린(吉林)성 소개 영상엔 한복·윷놀이·강강술래 장면이 담겼다. 2008년 베이징 여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한복과 아리랑이 나왔었다.

이날 개회식 사전공연 도중 경기장 대형 화면에 지린성 바이산을 소개하면서 등장한 한복과 떡메치기. [연합뉴스]

이날 개회식 사전공연 도중 경기장 대형 화면에 지린성 바이산을 소개하면서 등장한 한복과 떡메치기. [연합뉴스]

세계가 지켜보는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을 등장시킨 만큼 향후 중국의 문화공정이 거침없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개막식 행사를 통해 ‘한복이 중국 소수민족의 고유 의복’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국제사회에 번질 수도 있다.

중국이 한복에 대해서만 억지를 부린 게 아니다. 2020년 말엔 중국이 절임 채소 음식인 파오차이(泡菜)의 제조법을 국제표준화기구(ISO)에 등록하면서 ‘김치의 원조는 파오차이’라는 왜곡된 주장이 퍼졌다. 당시 중국 관영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중국이 김치 산업의 6개 국제표준을 제정했다”고 보도해 식(食)문화 왜곡에 앞장섰다. 지난해 4월엔 중국 액션배우가 “모든 무술의 기원은 중국이다. 태권도 역시 중국 발차기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했다.

중국, 과거 김치·태권도도 원조 주장

중국의 문화공정은 국내 반중 정서가 고착화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서울대아시아연구소·중앙일보의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2021년 한·중 관계를 다룬 851만여 건의 네이버 기사를 분석한 결과 10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린 기사는 대개 한복 원조 주장이나 태권도 기원 등 중국의 문화 왜곡 시도에 대한 보도였다.

중국의 계속된 문화 왜곡 시도에 한국 정부가 침묵하거나 미온적으로 대응한 것도 반중 정서를 키우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2021년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을 이유로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를 초치한 횟수는 6건, 항의 논평 발표는 2건, 성명 발표는 2건이었다. 반면에 같은 기간 중국 역사 교과서들에서도 “수 양제가 고구려를 정벌했다” 등 왜곡이 상당수 있었지만, 공식 대응은 없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한복 논란에 대해서도 “중국 측에 고유한 문화에 대한 존중과 문화적 다양성에 기초한 이해 증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한복이 전 세계의 인정을 받는 우리의 대표적인 문화 중 하나라는 점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만 밝혔다. 베이징 올림픽 정부 대표단을 이끄는 황희 문체부 장관은 “소수민족은 양국 간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싸우자고 덤비는 순간 과연 실익이 뭐가 있느냐”며 공식 항의 계획이 없음을 시사했다. 황 장관은 한복을 입고 개막식에 참석했다.

박병석, 중국 리잔수 만나 우려 표명

박병석

박병석

개회식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박병석 국회의장은 지난 5일 리잔수(栗戰書)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과 만나 우려를 표했다고 밝혔다. 박 의장은 6일 특파원단 화상간담회에서 “한복 문제로 다양성에 기초한 이해 증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며 “그런 관점에서 문화콘텐트 전면 개방은 중요한 과제이며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란과 우려에 대해 거론했다”고 말했다.

리잔수

리잔수

역사 수호 운동을 벌이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이번 한 장면으로만 그러는 건 아니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 백과사전에 ‘한복은 한푸(韓服)에서 기원했다’고 나오고, 중국 게임 ‘샤이닝니키’에 한복이 중국의 복식이라고 소개했고, 갓도 중국이 원조라고 한다. 상당 기간 억지 주장을 반복한 게 ‘문화 동북공정’으로 봐야 할 근거”라고 밝혔다.

체육철학자 김정효 서울대 외래교수는 “미필적 고의란 단어가 딱 떠올랐다. 중국은 민감한 사안인 줄 뻔히 알면서도 소수민족이라는 프레임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듯한 모습이다. 한국 문화를 중국 문화의 56분의 1로 간주하려는 거만한 프레임 같아 불쾌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림픽 개막식은 인류사에 남는 거다. 2030세대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항의하고 있다. 문화라는 속성 탓에 정부가 항의하기 껄끄럽다면 대한체육회가 어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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