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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파일] 무속(巫俗)은 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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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호 31면

김홍준 사회부문 기자

김홍준 사회부문 기자

아빠는 불교, 엄마는 천주교. 첫째 딸은 기독교고, 둘째 딸은 (아직) 종교가 없습니다. 경기도 고양시 박모(53)씨 집안의 종교 현황입니다. ‘한 가족은 한 종교’라는 관점에서 보면 ‘콩가루 집안’이라고도 볼 수 있죠. 한데, 이들이 매년 이맘때 ‘그 집’으로 갑니다. 점(占)을 보는 것입니다. 종교와 세대를 떠나는 의례라고 해야 할까요. 한국리서치가 지난달 내놓은 조사가 흥미롭습니다. 최근 5년간 점을 본 사람이 41%라는군요. 그중 20·30세대 52%가 점을 봤답니다. 압도적입니다. 60세 이상은 29%에 그치는군요. 이렇게 점을 본 사람의 50%가 ‘미신으로 보기 어렵다’고 대답했고, 거기에는 불교 신자 54%도 포함돼 있습니다. 기독교·천주교 신자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미신’이 뭘까요. 주술 혹은 무속을 말하는 걸까요. 무속 혹은 민속신앙은 불교·기독교처럼, 종교로 부르지 않는 걸까요.

우리나라 불교는 독특합니다. 다른 종교에 비해 민속신앙에 많이 열려 있습니다. 40여 년 전 경희대 민속학연구소에서 진행한 연구가 있습니다. 당시 김태곤 경희대 교수는 무속이 불교와 결합한 사례로, 대부분의 절에 있는 산신각(山神閣)과 불전 앞에 음식·돈을 놓는 행위 등을 듭니다. 불교뿐일까요.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 산(이학사, 2019년)』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인 구형찬 박사(서울대 종교학과 강사)가 말합니다. “민속신앙은 기복(祈福)과 분리될 수 없는데, 이른바 제도종교인 불교·기독교 등에서도 복을 기원하는 건 마찬가지죠. 각 종교의 성격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복을 찾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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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인 지난 1일, 박씨 가족이 인왕산을 찾았습니다. 인왕산이 어떤 산인가요. 최근 20·30세대가 338.2m 정상으로 향하는 한양도성을 따라가며 소셜네트워크(SNS)로 경험담을 공유하는 ‘핫 플레이스’입니다. 속살을 들여다보면 다른 무대가 펼쳐집니다. 경복궁의 ‘좌청룡’이 낙산이라면, ‘우백호’가 되는 산은 인왕산입니다. ‘서울의 계룡산’이라고 부를 정도로 어떤 이들에게는 종교적 실천의 장소가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박씨 가족은 길을 잘못 들었답니다. 용궁·천신당·산신당·장군당 등으로 부르는 기도처를 보게 됐습니다. 박씨는 “기묘하고도 신기한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신기(神氣)가 있는 곳입니다. 기도나 굿은 점보다 종교성이 강하지만 복을 기원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차이라면 회향(回向·자신의 공덕을 남에게 돌림)이나 적극성입니다. 구 박사는 “어떤 종교도 기복과 주술성을 배제할 수는 없어요. 불교·기독교도 민속신앙과 교류하며 뿌리내릴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합격이나 치병을 위한 기도회, 산에서의 통성기도를 예로 듭니다.

장군당을 관리한다는 60대 남성이 박씨 가족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바위는 종교에 연연하지 않는 이에게는 모자바위지만 무속인에게는 장군봉이고, 불자들에게는 관음봉입니다. 관점에 따라 이름도 달라지는 겁니다.” 박씨는 머릿속이 번쩍했답니다. 우리는 무속을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을까요. ‘굿’이 요즘 정치권에서 거론됩니다. 구 박사는 딱 잘라 말합니다. “무속은 자연스럽게 뿌리 내린 여러 종교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어느 종교든 비과학적입니다. 그런 종교적 신앙을 정치에 반영하는 건 올바르지 않죠.” 임인년 한 해 운세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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