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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본 세상] (21) "거센 여자를 들이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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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 전 옛날얘기다.

"폐하, 심심하옵니다. 뭐 화끈한 거 더 없을까요?"

애첩은 교태를 부린다. 왕은 이기지 못한다.

"그래, 뭐 해줄까…?"

"둥근 쇠막대에 기름을 잔뜩 발라놓고, 불구덩이 위에 걸쳐 놓으십시오. 그리고 사형수를 쇠막대 위로 걸으라 하세요. 건너면 살려주고, 미끄러지면 불구덩이에 빠지게요…."

'알았다, 알았어...' 왕은 당장 기름 쇠막대와 불구덩이를 준비하라고 시킨다. 죄수가 끌려왔다.

"너 저쪽으로 건너가면 풀어줄게. 해봐~"

기름 묻은 쇠막대 봉을 어찌 걸을 수 있겠는가. 다 미끄러졌다. 죄수는 비명과 함께 불구덩이에 빠져 타들어 갔다. 애첩은 깔깔 웃었다. 왕은 품속으로 뛰어들어 웃는 애첩을 더 이뻐했다.

은(상)나라 마지막 왕이었던 주왕(紂王, ?~BC1046)과 그의 애첩 달기(妲己)의 일화다. '포락지형(炮烙之刑)'이라는 형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은(殷)나라를 망국으로 몰아넣었던 여인 달기. 그는 중국 드라마, 영화의 단골 소재다. 달기가 나오는 드라마의 한 장면./ 바이두

은(殷)나라를 망국으로 몰아넣었던 여인 달기. 그는 중국 드라마, 영화의 단골 소재다. 달기가 나오는 드라마의 한 장면./ 바이두

위험하리만치 예뻤다. 갸름한 얼굴에 가냘픈 몸매, 요염한 몸짓…. 왕은 달기에 빠졌다. 겉은 예뻤지만 속은 포악했다. 음란하고 잔인했다. '포락지형'은 달기의 잔인성을 보여주는 평범한 얘기일 뿐이다.

달기는 연못에 술을 채우고, 고기로 숲을 만들어 즐기기도 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성어가 그래서 나왔다. 왕은 주지육림에 빠졌고, 정사는 뒷전으로 밀렸다. 국정이 문란해진 만큼 백성의 원성은 높아만 갔다. 중국 역사의 두 번째 왕조 은나라는 그렇게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궁 밖 유리(羑里)라는 지역의 허름한 초가집. 이곳에서 궁의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이름은 희창(姬昌), 서백창(西伯昌)으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훗날 주(周)나라 창업의 기초를 닦은 주문왕(周文王, BC1152~1056)이 바로 그 사람이다.

주(周)나라 창업의 기초를 닦은 주문왕(周文王, BC1152~1056). 그는 자식의 고기를 삶은 곰탕을 마셔야 할만큼 정치적 탄압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그는 그 시기에 주역 64괘 괘사를 정리한다. /바이두

주(周)나라 창업의 기초를 닦은 주문왕(周文王, BC1152~1056). 그는 자식의 고기를 삶은 곰탕을 마셔야 할만큼 정치적 탄압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그는 그 시기에 주역 64괘 괘사를 정리한다. /바이두

희창은 원래 서쪽의 한 봉읍을 다스리는 제후였다. 땅 이름은 주(周), 지금의 시안(西安) 주변이었다. 그는 인자했다. 백성들의 생활을 몸소 체험하면서 서민들의 슬픔을 달랬다. 또한 강했다. 서쪽 오랑캐를 밀어내고 영토를 넓혔다.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주지육림에 빠져있던 주(紂)왕이었지만 정치적 입지를 지키는 데는 치밀했다. 정적은 가차 없이 처단하고, 내쫓았다. 서백창도 예외는 아니다. 주왕은 없는 죄를 만들어 서백창의 지위를 박탈하고, 유리에 감금시켰다.

주왕은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궁에서 군사가 찾아와 '왕이 하사한 것'이라며 서백창에게 사발을 내밀었다. 서백창의 큰아들 백읍고(伯邑考)를 죽여 그 고기로 삶은 곰탕이었다. 주왕은 서백창에게 역심을 갖지 말라는 경고의 뜻으로 '아들 곰탕'을 만들어 보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공포만큼 강력한 경고는 없다.

서백창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는 알면서도 자식 삶은 곰탕을 마셔야 했다.

'物極必反'

'세상일은 모두 극한에 이르면 반드시 뒤집어지게 마련이다.'

은 왕조는 분명 망해가고 있다... 그는 변화의 진리를 믿었다. 시간이 무르익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아들 곰탕을 마시며 피눈물을 쏟았다. 도광양회(韜光養晦)다.

그 때 그 유배지에서 서백창이 몰두한 게 바로 주역 정리였다. 그는 기호로만 남아있는 복희씨(伏羲氏)의 64괘 괘사(卦辭)를 써내려갔다. 우리가 읽고 있는 주역 괘사에는 자식의 살점을 먹어야 했던 울분, 도탄에 빠진 백성을 살려야 한다는 혁명 정신이 담겨있다.

오늘 서백창이 정리한 주역의 제44괘 '천풍구(天風姤)'를 보자. 그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천풍구'는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 ☰)이 위에, 바람을 의미하는 손(巽, ☴)이 아래에 있다(䷫). 괘명 '구(姤)'는 '만난다, 조우한다'라는 뜻이다(姤,遇也).

주역 '천풍구(天風?)' 괘는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 ?)이 위에, 바람을 의미하는 손(巽, ?)이 아래에 있다(?). 괘명 '구(?)'는 '만난다, 조우한다'라는 뜻이다(?,遇也). /바이두

주역 '천풍구(天風?)' 괘는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 ?)이 위에, 바람을 의미하는 손(巽, ?)이 아래에 있다(?). 괘명 '구(?)'는 '만난다, 조우한다'라는 뜻이다(?,遇也). /바이두

그런데 전체 괘 모습을 보면 만남이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위로 다섯 효는 모두 양(ㅡ)이고, 가장 아래 효만 음(--)이다. 5개의 양과 1개의 음, 결국 음이 처음으로 양 집단과 만나는 형상이다.

양은 군자, 음은 소인을 뜻한다. 5명의 군자가 선정을 펼치고 있는 데 소인 한 명이 슬쩍 다가와 사악한 기운을 퍼트리려는 모습이다. 외부에서 음기(陰氣)가 스며들어와 조직을 오염시키는 것과 같다. 나쁜 풍속(--)이 건전한 사회(ㅡ)를 좀먹는 것도 같은 이치다. 기업, 정부에서도, 심지어 학교에서도 이런 일은 쉽게 발견된다.

서백창은 이 현상을 설명하며 여성을 비유로 들었다. '천풍구' 괘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女壯 勿用取女'

'거센 여자는 취하지 말아라.'

경고다. 거센 여자, 바람기 있는 여자는 받아들이지 말라는 얘기다. 그가 조직에 들어오면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不可與長也). 첫 번째효사는 더 리얼하다.

'繫于金柅 嬴豕孚蹢躅'

'쇠말뚝에 꽁꽁 묶어놔라. (억제되지 않으면) 발정 난암퇘지 날뛰듯 날뛴다'

여자를 거의 악마화했다. 현대 여성관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얘기다. 서백창은 왜 이렇게 극단적인 비유를 들어가면서 소인의 등장을 묘사했을까.

당시의 상황을 보면 이해가 간다. 그의 눈으로 볼 때 국정 농단의 주역은 음란하고 포악한 달기였다. 주왕이 애첩에 빠지면서 사달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음기가 스며들어 조직을 망치는 형상이 바로 '구(姤)'괘다. 이를 설명할 가장 적합한 비유가 바로 '거센 여자(女壯)'였던 것이다. 달기가 궁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음기가 양기를 밀어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게 '천풍구'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쉽지 않다. 여자가 힘을 얻어가면 갈수록 그 주변에는 더 많은 남자가 모이고, 권력이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센 여자는 발을 들이지 못하는 게 상책이건만, 어쩌랴 이미 들어와 자리를 잡았으니 말이다.

방법은 하나, 세를 불릴 수 없도록 초기에 꽁꽁 붙들어 매는 것이다. '쇠말뚝에 묶어두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왔다. '그물 속에 고기 가두듯 단속해 다른 남자(손님)와 접촉하지 못하게 하라(包有魚, 不利賓)'고도 했다. '사악한 음기(陰氣)가 조직에 퍼지지 않도록 초기에 철저히 단속하라'는 가르침이다.

음기(陰氣)가 스며들어 조직을 망치는 형상이 바로 '구(?)'괘다. 이를 설명할 가장 적합한 비유가 바로 '거센 여자(女壯)'였다./ 바이두

음기(陰氣)가 스며들어 조직을 망치는 형상이 바로 '구(?)'괘다. 이를 설명할 가장 적합한 비유가 바로 '거센 여자(女壯)'였다./ 바이두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天下有風姤, 后以施命誥四方'

'하늘 아래 바람이 부는 형상이 구(姤)괘다. 제후는 이로써 명을 내려 사방에 알린다.'

풍속을 해치는 음기는 음습한 곳을 좋아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햇볕을 쬐어야 한다. 강건한 하늘의 뜻을 널리 알리는 게 상책이다. 소인배를 포용하되, 그들이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교화시켜야 한다. 소인배 난동을 제약할 법규를 제정하고 알려야 한다. 그게 리더가 할 일이다.

서백창은 복귀한다. 궁에 있는 동료 신하들의 노력에 힘입어 풀려나 복권됐다. 강태공(姜太公)을 영입해 주(周)나라 창업의 기틀을 다졌다. 그가 세상을 떠난 건 BC1046년. 그로부터 10년 후 그의 둘째 아들이 결국 주(紂)왕을 멸하고 주(周)나라를 새로 세웠다. 그가 바로 주무왕(周武王)이다. 서백창은주문왕으로 추존되었다.

그렇다면 주나라 정계에서 '거센 여자'는 사라졌을까? 아쉽게도 아니다.

주나라 12대 왕이었던 유왕(幽王, BC795~BC771). 이번에는 포사(褒似)라는 여인이 주나라 정계를 흔들어놨다. 은나라 주(紂)왕이 달기에 빠졌듯, 유왕은 포사에 빠져 국정을 멀리했다.

포사는 미인이었지만, 웃음이 없었단다. 근데 유독 봉화를 보고 허겁지겁 달려온 군사(軍師)를 보고는 웃었다. 그 웃음을 보려고 유왕은 '도성에 전쟁이 났으니 빨리 군사를 모아 집결하라'는 뜻으로 거짓 봉화를 올렸다. 군사는 장병들을 이끌고 속아 도성으로 말을 달려 와야 했다.

주나라 유왕(幽王, BC795~BC771)의 여인 포사(褒似).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상징이다. / 바이두

주나라 유왕(幽王, BC795~BC771)의 여인 포사(褒似).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상징이다. / 바이두

그런데 진짜 적이 쳐들어왔다. 봉화를 올렸지만, 이번에는 장수들이 오지 않았다. 두 번 속지 세 번 속냐? 그래서 망했다. 주나라는 동쪽 뤄양(洛陽)으로 천도해 동주(東周, BC770~BC256)시대를 열었지만,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다. 춘추전국시대의 시작이다.

중국 역사에서 왕조의 운명을 바꾼 여인은 한둘이 아니다. 하(夏)나라는 말희(妺嬉) 때문에 망했고, 위에서 봤듯 은(殷)나라는 달기가, 서주(西周)는 포사가 파국을 불렀다. 측천무후는 당나라 이(李)씨 왕조를 위협했고, 가깝게는 서태후(西太后)가 청나라 멸망을 제촉했다.

서백창이 '거센 여자를 들이지 말라'고 그렇게 경고했건만,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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