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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본 세상] (20) '리스크를 높혀 나라를 지켜라!'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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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사는 양평 용문산 숲은 아직 겨울이다. 춥다. 산 눈은 아직도 녹지 않았다. 계곡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도 차갑게만 느껴진다. 메마른 나뭇가지에도 봄은 아직 멀다.

땅 저 아래 어디에선가는 개구리가 겨울잠을 자고 있을 터다. 뱀도 똬리를 틀고 동면하고 있을 테고….

양평 용문산의 새벽. 아직 봄은 멀다. 개구리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이 겨울을 이겨내고 있을 터다. /한우덕

양평 용문산의 새벽. 아직 봄은 멀다. 개구리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이 겨울을 이겨내고 있을 터다. /한우덕

엉뚱한 상상 하나.

어느 용기 있는 개구리 한 마리가 "난 이 겨울과 싸워볼 테야"라고 뛰쳐나왔다. 어떻게 될까. 어이쿠, 즉사다. 금방 얼어 죽고 말 것이다. 위험에 맞서는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겨울잠. 그건 개구리와 뱀이 겨울이라는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그들의 오랜 생존 방식이다. 그들은 그렇게 습관(習慣)처럼 위험을 극복한다.

주역은 이를 '습감(習坎)'이라고 표현한다. 오늘 그 얘기를 풀어보자.

'습감(習坎)'은 주역 28번째 괘 이름이다. 물을 상징하는 감(坎, ☵)이 위아래로 겹쳐졌다(䷜).

'습감(習坎)'은 주역 28번째 괘 이름이다. 물을 상징하는 감(坎, ?)이 위아래로 겹쳐졌다(?). /바이두

'습감(習坎)'은 주역 28번째 괘 이름이다. 물을 상징하는 감(坎, ?)이 위아래로 겹쳐졌다(?). /바이두

물은 만물을 적셔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하지만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장마는 수재(水災)를 불러오고, 수재는 이재민(罹災民)을 낳는다. 이런 물이 감(坎)과 만나면 함정이다. 글자 '坎(감)'은 '흙(土)이 없는 곳(欠)'이라는 뜻이다. 물은 그 빈 곳을 채워 웅덩이를 만든다. 그곳에 빠지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위험하다.

'習(습)'은 중첩의 의미다. 그러니 '습감(習坎)'은 오고 또 오는 위험이다. 21세기 현재 우리의 삶이 그렇듯, 3000년 전 '주역의 시대'에도 리스크가 상존했었나 보다.

위험은 이어서 오고, 또 와 바로 옆에 머문다(來之坎坎, 險且枕). 그 위험에 직면한 개구리의 선택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入于坎窞, 勿用). 위험에 습관화된 것이다.

가사(家事)에도, 기업 경영에도, 나라 다스림에도 리스크는 항상 존재한다. 오고 또 온다. 그게 우리 경쟁 사회의 속성이다. 그러기에 가장은 중심을 잡아야 하고, 기업은 전문 경영인이 필요하다. 국가는 탁월한 정치가가 요구된다. 모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다.

개구리는 겨울잠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사람은 위험에 직면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게 주역 '습감' 괘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다.
주역은 연이어 오는 위험을 '형(亨)'이라고 했다. 리스크가 발전을 가져온다는 얘기다. 어떻게? 괘사(卦辭)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習坎, 有孚維心, 亨, 行有尙'

'어려움에 익숙해졌으니, 믿음이 있어 마음을 단단히 조여 맨다. 그러니 형통하다. 그런 마음으로 행동하니 타인의 우러름을 받는다.'

위험에 처해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 그 위험은 오히려 발전의 토대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行險而不失其信, 維心亨). '습감' 괘에 대한 공자(孔子)의 해석이 그렇다.

주역 '습감' 괘는 리스크의 중요한 속성 하나를 제시한다. '리스크로써 리스크를 막아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바이두

주역 '습감' 괘는 리스크의 중요한 속성 하나를 제시한다. '리스크로써 리스크를 막아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바이두

중국 고전연구의 권위자인 대만사범대학의 정스창(曾仕强) 교수는 "주역 '습감' 괘가 리스크의 중요한 속성 하나를 제시한다"고 말한다. '리스크로써 리스크를 막아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王公設險, 以守其國'

'왕은 위험을 스스로 만듦으로써 나라를 지킨다.'

내게 위험이면 적에게도 위험이다. 적에게 위험이 될 만한 것을 높게 쌓아 올리면, 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훌륭한 방어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 얘기해보자.

반도체를 잡아라!

중국이 삼성 타도를 외쳤다. 자동차도 되고, 철강도 되고, 심지어 AI도 되는데 왜 반도체는 안 된다는 말인가. 산업의 쌀이라는 반도체, 그걸 왜 작디작은 한국에 의존해야 한단 말인가. 반드시 삼성을 꺾을 반도체 공장을 만들어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반도체 공정'을 독려하고 나섰다. 수백 조 원의 총알(자금)을 쏟아부었다. 언제나 늘 그랬듯 기술을 베끼기 위해 검은 손길을 뻗기도 했다. 은밀하게 한국 기술자들을 뽑아갔다.

그들의 '반도체 공정'은 아직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반도체 기술 수준이 삼성의 2016년 수준까지 접근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돈 퍼붓고, 해외 기술 베끼고, 국내 수요 채우고, 그러다 보면 세계적인 기술을 확보하게 된다는 중국 특유의 산업 발전 경로는 반도체 분야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과잉 지원에 따른 부작용이 커 중국 관련 업계는 더 혼란스럽다.

반도체의 문턱은 높았다. 삼성이 쌓은 리스크의 벽이 그만큼 공고했다는 얘기다. 단시간에 뚫릴 벽이 아니다. 삼성의 경쟁력은 중국의 리스크였던 셈이다. '리스크로 리스크를 억제한다'는 주역의 가르침이 현실화되고 있다.

내 회사의 경쟁력과 상대 회사의 위험은 다르지 않다!

개인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공부하고, 기술을 연마하는 것은 남이 넘볼 수 없는 나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함이다. 적국이 결코 넘볼 수 없는 무기 체계를 얼마나 굳게 쌓느냐에 따라 나라의 안보 수준이 결정된다.

'設險守國'

'위험(리스크)을 쌓아 나라를 지켜라!'

개인이나, 기업, 국가가 꼭 명심해야 할 3000년 전 주역의 워딩이다. 리스크는 상존한다. 오고 또 온다. 무작정 회피하기 보다는 이를 자기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주역의 뜻이다.

이곳 양평 용문산에도 봄은 기어이 올 것이다. 개구리는 또 다른 화려한 봄을 준비하고 있을 터다. 위험에 습관처럼 잘 적응하는 자에게 봄은 더 찬란한 법이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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