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송호근의 직격인터뷰

정치권 간섭이 대학 망친다, 조건없는 지원 시급해

중앙일보

입력 2022.01.28 00:42

업데이트 2022.01.2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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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울·고려·연세대 전·현직 총장 3인의 대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한국 대학이 구조개혁이란 시대적 과제에 당면했다. 20세기 산업화시대의 프레임을 어떻게 깰 것인가? 한국을 대표하는 SKY대학 전·현직 총장 3명이 한국을 21세기 문명대변혁의 선도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각오로 대담을 했다. 오세정 현 서울대 총장(오),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염), 김용학 전 연세대 총장(김)이다. 이들은 정치적 간섭과 제도적 규제의 폐단, 대학의 타성을 질타했다.

차기 정부 출범과 관련,총장들은 대학개혁의 어젠더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총장 직선제 폐지와 임기 6~8년 채택, 학과이기주의 일소, 정치권 개입 최소화, 교육부 규제 극소화, 시민단체의 합리성 증진 등을 꼽았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운영비, 규제에 따라 쓰기보다 특색에 맞게 써야 발전 여력 갖춰”
“줄어든 수입 보전해줘야 할 정부, 수익성 자산에 종부세 징세”
“일본은 학생당 150만원 지원, 한국은 연구사업으로 줄세워”

창의력·지식근력 키우려면 ‘학과 칸막이’ 아닌 ‘지식공동체’ 필요
융합지식과 소프트 스킬이 문명대변혁 시대 대학교육의 과제
4050 원하는 새로운 수료증 - 학위과정 개설해 평생교육 해야

학과 칸막이는 끝났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 교수(왼쪽)가 지난 19일 서울 중앙일보 서소문사옥에서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 오세정 서울대 총장, 김용학 전 연세대 총장(왼쪽 둘째부터)과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송호근 포스텍 석좌 교수(왼쪽)가 지난 19일 서울 중앙일보 서소문사옥에서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 오세정 서울대 총장, 김용학 전 연세대 총장(왼쪽 둘째부터)과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송: 21세기 문명대변혁의 시대에 한국 대학이 안고 있는 고질병을 무엇이고, 갈 길은 무엇인가? 세 분의 독자적 경험과 비전을 상기하며 한국대학의 구조개혁에 관해 좋은 말씀 기대합니다.

김: 은행이 사라지더라도 뱅킹은 번성할 것이듯, 대학은 변형·위축돼도 대학교육은 살아있을 겁니다. 인구절벽 때문에 대학 하드웨어는 빠르게 쇠퇴하는 반면 장수혁명, AI혁명 같은 쓰나미에 대학소프트웨어, 즉 교육기능의 수요는 급증할 테죠. 그런 쓰나미를 흡수할 새로운 교육 기능을 갖춰야 합니다.

염: 20세기 대학의 DNA를 바꿔야 합니다. 지식생산은 대학원이 맡고, 학부는 지식창출의 근력·기초체력을 키우는 쪽으로요. 요즘은 전문지식을 얻는 채널이 다양화됐기 때문에 대학이 그걸 못 따라갑니다. 50년 후면 캠퍼스는 관광지로 변하겠죠. 애리조나 주립대학처럼 사이버 다채널로 강의가 이뤄지겠지요. 창의력과 지식근력을 키우려면 학부와 대학원이 붙어있는 현행 시스템을 혁파하고 새로운 ‘지식공동체’를 구상해야 합니다.

오: 지식공동체론에 동의합니다. 특히 대학은 지역사회와의 협업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의 동력이 돼야 합니다. 또 대학에서 지금처럼 분과적 학문에 전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지식을 어떻게 생산하고 활용할 것인가, 집단지성을 높이는 학습기회를 만들어 줘야 해요. 전공은 대학원에 맡기면 됩니다.

김: 학과 칸막이가 지금까지 대학교육의 기본구조였지요. 산업사회의 요청이었는데, 학과와 결별하고 커뮤니티 내지 사회와 접합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여기에 인격적 훈련도 한몫을 해야 합니다. 교육은 목수를 만들기보다 목수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죠. 융합지식과 소프트 스킬, 이게 문명대변혁 시대 대학교육의 과제입니다.

기초체력은 대학, 기술지식 훈련은 기업이

송: 반도체 열풍에 힘입어 요즘 계약학과가 인기인데, 총장님들의 소신은 어떤가요?

염: 독일의 마이스터고(高)처럼 전문기능인을 배양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교양인 배양의 기본 임무를 저버려서는 안되죠. 사회적 수요, 개인적 선호를 고려한다면 계약학과는 다양성 차원에서 동의합니다. 기초체력은 대학이 맡고, 기업은 기술특수적 지식을 훈련하면 됩니다. 기업이 컬리큘럼까지 내세워 대학교육을 대신하겠다는 것은 곤란하지요.

오:대학이 특정기업의 인력 양성소가 돼선 안된다는 철학 때문에 학부에서의 계약학과는 현 학칙상 못하게 돼있는데,국가기간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그래서 이러한 조건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가지고 학내 의견 수렴중이다.

김: 연대도 고민 끝에 계약학과를 수용했는데, 후원기업의 교과과정 개입 금지조항을 달았지요. 재정적인 이점은 분명하고, 경쟁대학 간 계약학과 유무가 일종의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학부-대학원 이원 구조를 삼원구조로

송: 20세기에는 대학이 기업에 지식과 기술을 공급했는데, 이제는 역전됐습니다. 연구기능도 여러 기관으로 분산됐고요. 장수혁명에 대응해 대학교육 기능을 확장한다면 평생학습체제를 구상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 평생교육 전환은 대학의 생존전략입니다. SKY대학도 새로운 형태의 수료증, 학위과정을 개설해야 합니다. 40, 50대가 새로운 지식을 원하고 있잖아요? 학부-대학원의 이원적 구조를 삼원구조로 바꿔야지요.

염: 학사학위가 아니라 영역을 심화시킨 나노 학위, 마이크로 학위,블록체인 학위 같은 것이죠. 아리조나주립대가 하고 있어요. 사립대에는 매우 좋은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니치마켓이 많습니다.

김: 구글학위증도 있어요. 대학 학위와 동일하게 쳐주거든요. 문제는 대학에서 평생교육을 이끌 여력이 없다는 점이죠. 교수들이 여기에 시간을 쏟기가 어렵습니다. 여력만 된다면 해볼 만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강력한 학력주의가 쇠퇴하겠지요. 학력주의는 옛일이고, 요즘은 동일 학력에서도 양극화현상이 심해졌어요. 학력 보상 평균주의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학력 내 편차가 심해지는 현상이 현저합니다.

송: 인구절벽 때문에 대학은 정원을 줄여야 하는데, SKY대학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요?

정원 30% 축소, SKY가 앞장서야

염: 대학들이 전혀 준비가 안 돼 있어요. 입시생이 37만 명으로 줄어들 6년 후를 대비해야죠. SKY대학이 앞장서 30% 줄이고, 당장 곤란하면 2025년까지 10%, 2030년까지 30% 줄인다는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지방대학은 재정에 타격이 크지만, 적어도 SKY대학은 그렇지 않아요.

김: 정원문제는 조심스럽습니다. 환경변화는 분명한데, 세 대학만 그럴 것이 아니라 수도권-지방대학과의 연계정책을 해야 성공합니다.

오: 세 대학 정원축소에 동의합니다만, 수도권대학 역시 같이 동참해야 지방대학이 살아납니다. 망가지는 대학생태계를 서울대가 온통 책임지기 어려우니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야지요. 지방대학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시 40%로 고교정상화 기여못해  

송: 정원문제는 입시와 직결되는데 어떤 구상을 갖고 있나요? ‘정시 40%’ 가이드라인이 논란이 됐는데….

염: 고대는 인재발굴처를 신설해서 면접과 수시로 85%를 뽑았어요. 내신·학종이 공교육 정상화의 길이지요. 교육부도 환영했는데, 대통령의 한마디로 위기를 맞았지요. 정치권이 입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합니다.

김: 연대는 논술을 중시했어요. 고대가 논술을 없애서 우리는 압력을 많이 받았지요. 전반적인 취지에는 동의합니다. 연대는 교사추천으로 100명을 선발하겠다고 했다가 교육부의 저지를 받았어요. 대학자율성을 중시해줘야 합니다. 교육부 기준을 어기면 벌점을 받아요.

오: 교육부의 입시 가이드라인이 너무 촘촘해서 그것을 지켜나가기가 어렵습니다. 정시 40%를 지키지 않으면 교육부와의 관계가 악화되거든요. 총장들의 고민이 여기 있습니다. 학업성과를 보면 수시, 지역균형, 정시 순인데 왜 정시를 늘려야 할까? 정시는 고교정상화에 별로 기여를 하지 못합니다. 학종이 중요하지요. 정시는 20%가 적절합니다.

일몰제 폐지, 지방대 더 어려워져

염: 대학에 주는 교육부 지원금은 OECD평균보다 20~30% 낮고, 초중고교는 그만큼 높아요. 한국 대학은 돈이 없지요, 학비까지 동결했으니까. 일본은 모든 사립대학에 학생당 150만원을 지원합니다. 기시다 총리는 대학 투자기금으로 100조원을 조성한다고 발표했어요. 1년 3조원, 30년간 무상 지원한다는 구상이지요. 한국은 연구사업을 만들어서 줄을 세웁니다.

오: 대학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규제에 따라 쓰기보다는 특색에 맞춰 써야 발전여력을 갖춰요. 지방대학과 사립대가 특히 시급합니다.

김: 정원축소를 단행하는 대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줄어든 수입을 보전해줘야 학교가 돌아가지요. 그런데 최근에는 일몰제를 폐지했어요. 대학이 보유한 수익용 자산에 종부세를 징세했지요. 돈을 더 내야 할 판입니다. 지방 사립대가 더 어려워지겠죠.

총장은 만인의 을

송: ‘총장은 만인의 을(乙)’이라는 말이 있어요. 4년 임기제에 묶여 있는데 총장의 권한을 늘려야 할까요?

염: 권한을 늘리는 것보다 총장 권한을 명확히 확정(define)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학은 ‘조직화된 무정부’라서 대의정치, 책임정치가 이뤄지기 어려워요. 학장은 총장과 대립하는 투사이기를 기대하는데 무슨 일이 잘 되겠어요? 교수 TO 하나도 원만하게 다루지 못합니다. 한국은 총장임기를 ‘4년 중임’으로 아예 못 박았는데, 예외 없이 4년이죠.

김: 왜 ‘계급장 떼고 얘기하자’는 말이 있잖아요? 난 뭐가 있나 하고 생각해보니 뗄 계급장이 없더군요 (웃음).

오: 그런 의미에서 서울대는 종합대학이 아니라 ‘연합대학’입니다. 우리는 학과별 TO라는 인식을 바꾸는 중입니다. 총장 권한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지요. 동경대학은 임기를 6년으로 바꿨어요. 길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만 장기플랜을 세울 수는 있겠지요.

송: 예전에는 총장은 지성계를 대표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경영인으로 인식되고 있지요.

오: 지성인의 대표가 아니라 돈 따오는 사람, 학내 갈등 해소자, 경영자 이미지로 바뀌었죠. 대학의 기업화 추세 때문에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김: 언론이 대학을 부정적으로 봐 온 것도 한몫을 했어요. 감사관이 그러더군요. ‘대학’을 치면 연관어 1위로 ‘비리’가 나온다고.

염: 우리 책임이 크지만 언론이 침소봉대한 면도 많습니다. 연구비 비리가 발생하면 대서특필하고, 뭐라도 터지면 온통 대학책임으로 몰아 이미지에 커다란 상처를 입힌 거죠. 교수평가제도, 연구재단 사업도 고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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