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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대란' 닥치는데…허구한 날 싸우는 정부·낙농단체,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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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치즈 가격 추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우유·치즈 가격 추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낙농산업의 육성을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와 낙농가단체 간의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농식품부가 치솟은 물가를 잡겠다며 우유 등의 가격에 새로운 결정 체계를 도입하기로 하면서다. 각종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이익집단의 불협화음은 항상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서로 ‘성명전’까지 펼치며 갈등이 표면화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정작 ‘밀크 인플레이션’(우유 등의 가격 상승으로 커피·제과·빙과 등 관련 물가가 연쇄적으로 오르는 현상) 대응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낙농진흥회 공공기관 지정 이번 주 결론 

24일 통계청의 소비자물가 통계에 따르면 최근 우유 가격(12월 기준)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6.6% 상승했다. 우유 가격은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0%대 상승률을 유지하다 지난해 말부터 급격히 오르고 있다. 치즈 가격도 7개월간 하락하다 지난달 1.8% 상승 전환했다. 지난해 8월 낙농진흥회의 원유 가격 인상 효과가 연말에 나타나면서 장바구니 부담을 가중하는 양상이다.

현재 우유 가격은 우유의 원재료인 원유(原乳) 가격에 따라 움직인다. 원유 가격은 낙농진흥회가 결정하는데, 그동안은 원유 수요와 공급에 상관없이 낙농가의 생산비와 연동해 인상되는 ‘생산비 연동제’를 적용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시장 원리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지 않아 우유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정부는 현행 원유 가격 결정체계를 우유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소관 부처인 농식품부는 현행 제도 대신 흰 우유용 원유와 치즈 등 가공용 원유의 가격을 차별적으로 조정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흰 우유용 ‘음용유’ 가격을 현재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치즈·아이스크림·분유 등을 위한 ‘가공유’는 지금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그동안 유업체는 흰 우유를 만들든 치즈를 만들든 낙농진흥회가 정한 가격에 일괄적으로 원유를 사야 했다.

정부안에 따르면 낙농가는 가공유용 원유 가격을 지금보다 저렴하게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 정부는 대신 유업체의 원유 구매량을 확대하도록 했다. 정부는 이렇게 하면 낙농가 소득이 현재보다 약 1%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낙농가는 정부의 가격제도 개편 시도에 반대하고 있다. 차등가격제를 도입하려면 농가가 원유를 증산해야 하는데, 생산 시설 확대는 비용과 환경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정부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하기 위해서 낙농진흥회의 공공기관화를 추진하고 있다. 낙농진흥회의 의사결정을 하는 이사회가 생산자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차등가격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낙농진흥회 이사회는 이사 3분의 2 이상이 참석해야 열릴 수 있는데, 이사 15명 중 생산자 측이 7명이라 이들이 반대하면 이사회가 열릴 수 없다. 기획재정부는 오는 28일 공공기관 운영위원회를 개최해 낙농진흥회의 공공기관 지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뉴스1

농식품부는 최근 “낙농가가 정부안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최근 정부안을 설명하기 위해 5개 지역에서 계획한 낙농가 대상 설명회를 낙농단체의 반대로 개최하지 못하면서다. 농식품부는 “낙농가단체의 조직적인 방해로 무산됐다”며 “무산에 대한 책임을 어떤 방식으로 물을 것인지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낙농가를 대표하는 한국낙농육우협회도 이후 성명을 내고 “협회가 조직적으로 방해했다는 농식품부의 주장은 날조”라고 받아쳤다. 협회는 “정부안에 대해 실무협의를 통해 세부실행방안을 마련한 이후 (설명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했지만, 농식품부는 생산자와 실무협의를 한 차례 거친 이후 군사작전을 벌이듯 설명회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생산자단체의 갈등이 지속하면서 밀크 인플레이션 대응은 더 늦어질 전망이다. 낙농업계는 최근 정부의 낙농진흥회 공공기관화에 반대 투쟁을 예고했다. 박홍식 농식품부 축산경영과장은 “낙농가의 생산비에 따라 원유 가격이 인상되는 구조를 개편하면, 낙농가도 생산비 절감 유인이 생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소비자 가격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온라인으로라도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낙농가와의 소통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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