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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문 대통령, 선관위 독립 침해 사과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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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해주 사표 반려로 선관위 집단반발 자초

잘못 인정하고 공정한 인물 후임 지명하길

문재인 대통령의 사표 반려로 위원직을 유지하게 됐던 조해주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이 2900여 선관위 직원들의 거센 반발에 떠밀려 재차 사표를 내고, 순방 중인 대통령이 해외에서 수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상임위원은 3년 임기를 마치면 즉각 선관위를 떠난다는 불문율에 따라 조 위원은 얼마 전 사표를 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관례를 깨고 사표를 반려해 조 위원은 3년간 더 ‘꼼수 연임’을 하게 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문재인 대선 캠프 특보 출신인 조 위원은 지난 3년간 선관위가 불공정 논란에 휘말리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인물로 꼽혀 왔다. 그런 조 위원을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연임시켰으니, 4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를 또다시 ‘관권 선거’로 치르겠다는 의도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중앙일보 보도로 이 사실이 폭로되자 선관위의 존폐를 걱정한 중앙선관위 1~9급 직원 전원이 조 위원에게 용퇴를 촉구하는 입장문을 작성했다.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 대표단도 중앙선관위를 찾아 조 위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선관위 게시판엔 “조 위원의 퇴진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부탁한다”는 호소가 쏟아졌다. 선관위 60년 사상 전대미문의 집단행동이다. 이번 연임 시도가 얼마나 비상식적이었으면 중립성이 생명인 선관위 공무원들이 일치단결해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항거하는 모습을 연출했겠는가. 조 위원도 사퇴 직후 “선관위가 짊어질 편향성 시비와 후배들의 아픔을 더는 외면할 수 없어 완벽히 선관위를 떠난다”는 글을 올렸다. 자신의 사표를 반려한 문 대통령 조치에 문제가 있었음을 자인한 것이다.

조 위원은 선관위를 떠났지만 선관위를 둘러싼 편향 우려는 여전히 심각하다. 야당 몫 선관위원 1석은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임명이 두 달 가까이 지연돼 온 끝에 후보인 문상부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자진 사퇴하고 말았다. 야당 몫의 위원 없이 대선이 치러지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될 우려가 커졌다. 게다가 선관위는 나머지 선관위원 7명 중 6명이 친여 성향이다. 이런 마당에 청와대는 후임 상임위원을 문 대통령이 지명한 기존 선관위원 2명 가운데 한 명으로 채우는 ‘꼼수’를 기획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사실이라면 선관위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선관위는 헌법(114조 1항)에 의해 ‘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위해 설치된 독립기관이다. 문 대통령은 관례를 깨고 상임위원의 사표를 반려해 독립된 헌법기구 선관위의 인사 근간을 흔들었다. 즉각 사과하고 공정한 인물을 후임 상임위원에 지명해 선관위가 차질 없이 3월 대선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선관위 역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존재의 근거임을 다시 한번 유념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