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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중대재해처벌법 필요하지만 현실에 맞게 보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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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사흘 앞둔 24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한양건설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관계자가 일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사흘 앞둔 24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한양건설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관계자가 일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강력한 처벌 중심의 법 시행 예고

실현 가능하도록 기업 애로사항 듣기를

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는 27일부터 시행된다. 지난 11일 발생한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나, 2018년 화력발전소에서 안전사고로 숨진 김용균씨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은 필요한 법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근로자는 828명에 달한다. 이 법에 따르면 앞으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지키지 않아 근로자 등에게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1년 이하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법 시행의 효과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최고안전책임자(CSO) 선임과 안전 전문인력 채용이 이어지고 있다. 건설현장에서는 근로자들의 안전모 착용은 기본이고,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부작용이다. 건설업계에는 처벌에 대한 공포가 퍼지고 있다. 법 규정을 곧이곧대로 지키기엔 비현실적인 조항이 많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적지 않은 중소기업이 전문인력 부족과 안전보건시설 확충 비용 등을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지키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법 적용을 받는 50인 이상 중소제조업 322개사를 대상으로 ‘법 준수 가능 여부’를 묻는 질문에 53.7%가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부담은 크게 나타났다. 50~100인 기업의 경우 60.7%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중소기업중앙회 노동인력위원회는 2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수준은 세계 최고인데 이를 완벽히 준수할 수 있다고 누구 하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국회는 사업주의 고의나 중과실이 없을 때는 면책하는 규정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하다 구속되느니 차라리 사업을 접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목표는 당연한 얘기지만 처벌이 아닌 예방이다. 중대재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게 ‘위험의 외주화’다. 시공사가 공사를 진행하면서 각종 작업에 대해 하청·재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공사 비용의 무리한 삭감 또는 떠넘기기가 발생하고, 이 와중에 현실적으로 규정을 지키지 못해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설현장의 취약한 공사 관행을 그대로 둔 채 처벌만 강화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얘기다. 사고는 사고대로 계속되고, 사법처리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와 국회는 예고된 혼란에 눈을 감고, 법만 만들어 놓으면 할 일을 다한 것처럼 법 뒤에 숨어 있어선 안 된다.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고, 실현 가능하도록 법을 정교하게 보완해야 한다. 지킬 수 없는 법은 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