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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의 시선

20대, 표로만 보이나요? 우리 아들딸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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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2022 대선청년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참여연대에서 이재명·윤석열·심상정·안철수 대선후보에게 청년 정책 질의서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주거·지역 격차·젠더·기후 등 청년 문제에 대한 생각과 정책 비전을 묻는 질의서를 발송했다. 뉴스1

2022 대선청년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참여연대에서 이재명·윤석열·심상정·안철수 대선후보에게 청년 정책 질의서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주거·지역 격차·젠더·기후 등 청년 문제에 대한 생각과 정책 비전을 묻는 질의서를 발송했다. 뉴스1

이성 교제마저 고민하는 '이대녀''이대남'

“남자친구를 만들지 않겠다는 애들도 있어요. 사귈 때는 잘 해주는데 헤어지게 되면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제 주변에도 어떤 친구는 그만 만나자고 했다가 힘들었는데 결국 맞고 나서야 끝났어요.” 20대 여대생들과의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살인 사례까지 전해지는 ‘데이트 폭력’의 공포가 남 얘기 같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아들을 둔 엄마들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돈다. “밤늦게 한잔하자며 원룸을 찾아온 여자 후배와 시간을 보내다 좋아하는 줄 알고 입맞춤을 했는데, 원하지 않은 신체 접촉을 했다고 신고를 당해 결국 유학을 갔다”는 식이다. 이성과의 관계에서 남성이 역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사고가 비친다.

 어쩌다 꽃다운 청춘이 이성 교제를 놓고도 예민하게 됐나. 남성 대학생들에게 물으면 “데이트 폭력은 문제 있는 일부의 얘기”라고 선을 긋는다. 엄마들은 뒤늦게 이성과의 신체 접촉은 조심하라 일러준다고 한다. 미국 초등학교에선 1학년 때부터 양팔을 좌우로 벌리고 원을 그리게 한 후 그 사람만의 공간이니 침범해선 안 된다고 가르친다. 학원 보내기에만 관심을 쏟은 우리 부모가, 내신과 생활기록부 경쟁이 중요한 우리 교육이 성인이 된 아이들의 판단력까지 마비시킨 건 아닐까.

1990년대생 남초…20대 여성 자살률 급증

 대선을 앞두고 이대남(20대 남자),이대녀(20대 여자)에 이목이 쏠린다. 여론조사 향배를 이들이 좌우한다고 호들갑이다. '큰 손'으로 떠오른 20대는 젠더 갈등이 심각한데, 내면에는 쓰라린 현실이 있다. 학자들은 젊은층의 성비 불균형에 주목한다.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보면 2030세대에서 남초(男超) 현상이 발견된다. 지난해 5월 기준 20대 남성은 354만5802명, 20대 여성은 320만8481명이다. 여성을 100으로 볼 때 성비가 남성이 많은 110.5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나서거나 결혼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20대 후반 성비는 112.2나 된다. 30대 초반에서도 108.5로 남성이 많다.

 자연적인 성비가 103~107 정도이니 1990년대 출생자에서 유독 남성이 많다. 학자들은 남아 선호에 따른 임신 중절이 많았을 것이라며 결혼 상대 여성을 만나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작용이 생긴다고 했다. 일자리 경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젊은 남성이 여성 배려 정책에 민감하고 ‘페미 논쟁’이 뜨거운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한 젊은이가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기초생활수급자인 한 젊은이가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젊은 여성들이라고 괜찮은 게 아니다. 20대 여성 자살률이 급증 양상을 보인다. 국회의원실이 공개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응급의료기관 66곳에 온 자살 시도자 중 20%가량이 20대 여성이었다. 2017년 11.4%였던 20대 여성 자살률은 2019년 16.6%로 증가 추세인데, 수치는 더 높지만 늘어나지 않는 남성 자살률과 다르다. 요즘 가정에선 아들딸 구분 없이 잘 키우지만 성인이 되는 단계에 여성이 절감하는 좌절은 여전하고, 다른 젠더에 책임을 돌리는 대신 자신을 탓하며 무너져 내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코로나 영향으로 실직한 이들 가운데 여성, 특히 아이가 있는 이들이 많다는 조사도 나왔다.

 경제적 형편을 걱정하는 젊은이들의 토로에는 성별 구분도 없다. “취직이 어렵지만 직장 잡는다고 서울에서 아파트를 살 수 있나요? 거기에 결혼하고 애까지 낳으면 어떻게 감당하나요.” 20대 청년은 1인 가구가 느는 건 트렌드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현실이라고 했다.

대선후보들 갈라치기 말고 대책 내놓아야

 이런 상황을 이들이 초래한 건 아니다. 어른들이 만들었다. 경제성장기를 누린 어른들은 대체로 직장 생활을 하며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교실에서 엉켜 지내던 옛날과 달리 학원을 오가며 마주치는 일이 잦은 아이들에게 남과 다름을 이해하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더 한심한 것은 대선을 맞아 어른들, 정치인들이 젊은 세대를 성별로 갈라치며 아픔을 악용하는 모습이다.

 여성가족부를 없앤다고만 할 게 아니라 성 평등을 위해 변화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야 할 것 아닌가. 여경 논란이 벌어지면 해외에선 남성 경찰의 체력기준을 낮추면서도 어떻게 업무를 유지하는지 살펴 대안을 내야 할 것 아닌가. 군 복무를 남녀가 다 하는 이스라엘 군대가 이미 전자전부대 위주로 재편돼 성별이 무의미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라도 있는가.

 향후 5년 국정을 맡겠다고 경쟁하는 정치 집단은 젠더 갈등을 줄이고 실질적 도움을 줄 정책을 앞다퉈 내야 할 주체다. 20대는 혹할 공약을 던지고 상처를 헤집어 표만 얻으면 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 아들딸이다. 제1야당 대표인 이준석은 연령으로 가장 가까운데도 이대남 표를 노리며 페미니즘을 ‘복어 요리’에 비유하니 기대할 가치도 없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은 달라야 한다. 정책을 만드는 학자만 수십명씩 있다지 않나. 제발 이제부터라도 지성의 힘을 보여 달라.

김성탁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