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철호 칼럼

“윤석열은 확실히 바뀌었다”고 하는데…

중앙일보

입력 2022.01.19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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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건희씨 녹취록이 의외의 반향을 낳았다. 부메랑을 맞은 좌파 진영은 당황했다. “소문 난 잔치에 핵폭탄이 없었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후보의 왕(王)자 논란과 김씨의 줄리 의혹, 동거 루머를 잠재우는 덤까지 얻었다. 여야의 명암이 엇갈린 비밀은 따로 있다. 그동안 민주당이 김씨를 지나치게 악마화시켰던 자업자득이다. 김씨 스스로도 “제가 지금 거의 악마화 돼 있다. (제가) 아예 안 나오면 국민이 제일 좋아하실 것 같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MBC가 웬만큼 난도질해도 국민이 받을 충격은 제한적이었다. 이런 판에 녹취록을 통해 김씨의 상식적 논리와 멀쩡한 목소리가 전파를 탔으니 역풍이 불 수밖에 없다.

윤 후보가 곧바로 사과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방송 하루 만에 “사적인 대화를 뭐 그렇게 오래 했는지 저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불과 3주 전만 해도 정반대였다. 김씨의 이력 허위 기재 사건이 터지자 “법적으로 문제없다” “사실관계가 확인돼야 사과를 하겠다”고 버티다가 매를 벌었다. 오랜 검찰 체질이 묻어났다.

투쟁만 있고 비전 없는 국민의힘
또 절박감 부족하다는 비난 받아
정치적 상상력 돋보이는 이준석
야전 침대·삼각 김밥·컵라면 …

그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인터뷰에서 “윤석열은 확실히 바뀌었다”고 했다. 요즘 보면 빈말은 아닌 모양이다. 그 변곡점은 올 연초다. 윤 후보는 6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표와 포옹을 하며 다시 손을 잡았다. 그 하루 전인 5일에는 “국민이 기대하셨던 처음 윤석열의 그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아침에는 이 대표의 아이디어였던 지하철역 출근 인사를 했다. 메시지 팀에서 50대 참모들을 모두 내보내고 청년 보좌역들로 물갈이했다. 이후 SNS에 한줄짜리 공약 시리즈와 생활밀착형 ‘심쿵 공약’을 새로 선보였다. 원래 지난해 여름부터 젊은 보좌역들이 준비한 작품이었지만 대선 캠프 내부의 알력으로 묻혔다가 뒤늦게 빛을 본 것이다. 집 나갔던 2030세대가 다시 국민의힘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윤 후보는 고집이 셌다. 주변에선 “정권 교체를 원하는 반응이 50%를 웃도니 어차피 이긴다”며 부추겼다. 한 참모가 내부 회의에서 부인의 허위 이력 사과를 주문하자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한마디로 오만했다. 그런 윤 후보가 바뀐 이유는 간단하다. 지지율이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일 이재명 후보에게 두 자릿수로 뒤지고 단일화를 해도 안철수에게 밀린다는 여론조사가 결정적이었다. 주요 언론들도 “윤 후보 본인의 잘못”이라며 매섭게 비판했다.

지난 6일 청년보좌역 27명과의 간담회는 몰라보게 달라진 장면이었다. 윤 후보는 “주변에 간신들, 아첨꾼들, 기생충들만 가득하다. 그들을 버려라” “청년들은 다른 후보로 교체를 원하고 있다” “왜 이준석 대표와 싸우나. 같이 가야 한다”는 쓴소리를 1시간 동안 묵묵히 들었다. 그제 서울 선대위 출범 때도 마찬가지다. “부인 관리를 잘하라. 배우자 아니면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리스크다”라는 가시 돋친 독설에도 귀를 기울였다. 예전과는 딴판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한다. 정권 교체를 원하는 비중이 55%인데 윤 후보 지지율은 그보다 훨씬 낮은 30~45% 선에 맴돌고 있다. 그 사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지지율은 10~17%의 두 자릿수로 치솟았다. 단순히 반사이익만 챙긴 게 아니다. 안 후보는 선심성 공약에 맞서 “포퓰리즘이란 ‘망국병’과 단호히 싸우겠다”며 이·윤 후보와 각을 세웠다. 연금개혁이란 쓴 약까지 마다치 않으며 미래세대를 효과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대로 가면 안 후보와 단일화 없이는 3월 대선 자체가 위험한 도박이 된다.

요즘 정치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인물이라면 이준석 대표를 꼽고 싶다. 사퇴 압력을 받던 의원 총회 스피치는 압권이었다. 사전 원고 없이 30분간 빼어난 논리와 자신만의 언어로 청중을 설득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7년 전 유승민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에 버금갔다. 이 대표는 두 번의 몽니를 부렸지만 5~10%의 청년 표를 몰고 다니는 정치적 파괴력을 입증했다. 그가 제안한 지하철역 출근 인사, 택배 라이더 체험도 눈길을 끈다. 손 따라 바둑을 두는 식의 낡은 선거 캠페인과 차원이 다르다.

올 들어 윤 후보가 크게 바뀐 건 분명하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고소·고발과 함께 MBC에 몰려가 녹취록 방송을 중단하라며 몸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투쟁만 있지 비전이 없다. 여전히 “좌파 정부의 연장을 원하느냐”는 기계적 심판론에 매달리는 분위기다. 이에 비해 이 대표는 영리하다. 당사에 야전 침대를 갖다 놓고 대선에 집중하겠다는 것부터 신선하다. 따뜻한 집밥 대신 야전 침대에서 편의점 삼각 김밥과 컵라면으로 때우는 절박감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는 야전 침대·삼각 김밥·컵라면이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다. 이번에도 절박감이 떨어진다고 비판받는 국민의힘이 한 번쯤 되새겨 봐야 할 대목이다. 옛말에도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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