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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악행 책임을 남에 미루는 일은 쉽다. 셰익스피어에 공감"

중앙일보

입력

2018년에 이어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 3세 역할을 맡은 배우 황정민. [연합뉴스]

2018년에 이어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 3세 역할을 맡은 배우 황정민. [연합뉴스]

“악행은 내가 저지르고, 통탄할 책임은 남들에게 미루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다. 그게 너무 기막히고, 딱 지금 시대인 것 같다.”

연극 '리차드 3세' 4년만에 재연하는 배우 황정민 #"배우로서 어려운 셰익스피어의 언어에 매혹돼"

배우 황정민이 셰익스피어 연극 ‘리차드 3세’에 출연하면서 “작가가 몇백년 전에 어떻게 이런 걸 썼는지 놀랍다”고 했다. 13일 기자간담회에서 황정민은 리차드 3세의 대사 중 하나를 예로 들었다. “악행은 내가 저지르고 통탄할 책임은 남들에게 미루기 위한 손쉬운 방법. 벌거벗은 악당 몸에 성경에서 훔쳐 온 낡은 명언 조각을 걸쳐주면, 사악한 악마 노릇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에도 성인으로 보인단 말이지. 나는 검은 손이 일을 치르는 동안 하느님께 기도나 하자."

리차드 3세는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형, 조카, 아내, 충신을 고민 없이 살해한다. 굽은 등, 비틀린 손, 절뚝이는 다리로 모두에게 적대감을 품고 맹목적으로 권력을 쟁취한다. 한아름 대본, 서재형 연출의 ‘리차드 3세’에서 황정민은 중간 휴식 없는 100분 동안 쉬는 틈 없이 무대를 장악하며 살인을 저지른다. 칼을 직접 손에 쥐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주변인을 시켜 사람을 죽인다. 황정민은 “그 손쉬운 방법의 악행이 현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그 방법은 몇백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이 대사를 처음 봤을 때 어이가 없었을 정도로 공감이 갔다”고 말했다.

 2018년에 이어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 3세 역할을 맡은 배우 황정민. [연합뉴스]

2018년에 이어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 3세 역할을 맡은 배우 황정민. [연합뉴스]

황정민은 리차드 3세에 대해 “사람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모든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며 “굉장히 심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멀쩡히 잘 해내려고 권모술수에 능하게 됐다”고 해석했다. 그는 특수 분장으로 등에 커다란 혹을 붙였고 팔과 다리의 모습을 바꿔 어두운 악인의 모습을 연기한다. 2018년 초연에 이어 두 번째다.

셰익스피어의 매력이 황정민을 다시 무대에 서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 매력은 의외로 난해함에서 나온다. “보기에도, 듣기에도 쉽지만 하기에는 정말로 어려운 대사들이다. 시적인 표현이 워낙 많고 모든 단어에서 장음과 단음을 공부하고 있어야 관객을 이해시킬 수 있다. 배우의 공부에 정말 좋은 자극이다. 그게 매력이다.” 셰익스피어 언어의 어려움에서 매혹을 찾아낸 그는 “영화와 매체 연기를 하다 보면 말에 대한 중요성 없이 툴툴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엔 연극에서만 할 수 있는 언어의 특징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

어려움의 매력에 끌려 황정민은 초연에 이어 이번 공연에서도 자타공인 ‘연습 벌레’다. 정적인 엘리자베스 왕비 역의 배우 장영남은 황정민을 두고 “오전 10시에 나와 오후 9시까지 끊임없이 연습한다. 다른 사람의 대사를 다 녹음해 와서 연습하더라”고 했다.

2018년 초연은 객석 점유율 98%의 기록과 함께 호평을 받았다. 장황하고 추상적인 셰익스피어 ‘리차드 3세’를 쫀쫀하게 만든 각색, 웃음으로 지나친 긴장을 녹여낸 연출의 힘도 컸다. 서재형 연출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이렇게 정리가 잘 안 된 작품이 없어 도전하고 싶었다. 방대하고 복잡하고 난해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면을 쓰고 열심히 들어가는 장면들, 그리고 유머가 가득한 장면들로 공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서재형의 리차드 3세에서 위트는 악행이 끝에 다다른 순간 터져 나와 악을 평범한 모습으로 위치시킨다.

초연부터 마가렛 왕비로 함께 하며 배우로서 존재감을 드러낸 소리꾼 정은혜, 에드워드 4세로 새로 합류한 윤서현 배우가 함께한다. 다음 달 1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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