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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이 뭐길래…두 오케스트라의 팽팽한 신경전

중앙일보

입력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홈페이지 캡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홈페이지 캡처.

“‘국립’의 조건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KBS교향악단의 단원들로 된 노조가 7일 발표한 성명서 중 일부다. 이들은 “최근 서울의 한 공연장 상주단체인 오케스트라를 ‘국립 교향악단’으로 명칭 변경하는 의견조회 서면이 돌고 있다”며 “과연 해당 오케스트라가 ‘국립’의 명성에 어울릴만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문체부 산하 코리안 심포니, '국립'으로 명칭변경 추진 #1969~81년 '국립교향악단'이었던 KBS교향악단 반발

이름을 바꾸려는 곳은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이하 코리안심포니). 문화체육관광부의 산하 기관으로 전체 예산 중 70%인 60억원 정도를 매년 국비 지원받는다.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의 공연에 참여하며 연간 100여회 무대에 서는 오케스트라다.

문체부의 담당자는 “정부 예산이 계속 지원된 곳이기 때문에 위상에 맞는 명칭을 위해 변경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 코리안심포니’라는 이름에서는 공공 예술단체라는 성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7~8년 전부터 명칭 변경 제안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문체부는 코리안심포니의 이사회 의결을 통해 올 상반기 중 이름을 바꿀 예정이다.

KBS교향악단이 코리안심포니의 국립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우선 역사성과 명분이다. KBS교향악단은 1956년 서울방송관현악단으로 출범했지만 69년 교향악단 운영권이 국립극장으로 옮겨가면서 국립교향악단으로 바뀌었다. 81년 운영권이 KBS로 이관될 때까지 ‘국립’ 명칭을 유지했다.

KBS교향악단 노조 측은 “대통령 해외 순방, 국빈 방한, 올림픽 등 각종 국가 기념식에 KBS교향악단이 함께 했다”며 “국가대표 교향악단은 장소를 가지리 않고 희로애락을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운수노조 KBS교향악단 지회의 조성호 지회장은 12일 중앙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우리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뿌리를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며 “KBS교향악단은 지금도 ‘국립 교향악단’이라는 도장이 찍힌 악보를 쓴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KBS교향악단이 ‘국립’ 명칭을 사용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적다는 점이다. KBS교향악단은 현재 KBS로부터 연간 108억원 지원금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2012년 재단법인으로 출범하면서 연간 지원금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코리안심포니의 한 관계자는 “정부 기금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오케스트라인데 옛 명분만 가지고 다른 오케스트라의 국립화를 방해하는 격”이라고 했다.

KBS교향악단 홈페이지캡처.

KBS교향악단 홈페이지캡처.

다만 KBS의 교향악단 지원이 2025년까지로 한정된 만큼 그 후 KBS교향악단의 위치는 불투명하다. 지난해 5월 당시 KBS교향악단의 박정옥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본사와 협상을 통해 지원금을 늘리고, 티켓 판매와 후원도 늘리는 방안을 새롭게 짜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코리안심포니의 이름이 '국립'으로 바뀌면 정부 지원도 늘어날 전망이다. 문체부 측은 “재정 지원 등도 확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옛 정동극장이 지난해 ‘국립정동극장’으로 명칭을 변경한 경우와 같다. 1995년 국립중앙극장 분관으로 설립된 이 극장은 이름에 ‘국립’을 추가하고 재건축, 예술단 출범을 확정했다.

문체부와 코리안심포니는 ‘국립 교향악단’뿐 아니라 ‘국립 심포니’ ‘국립 오케스트라’ 등을 염두에 두고 변경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KBS교향악단의 반발이 관건이다. KBS교향악단 노조와 사무국은 12일 기자 회견을 예정했다가 하루 전 취소했다. “정확히 의견 통일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다만 조성호 지회장은 “국립 전환 논의의 장을 확대하고 거기에 KBS교향악단을 중요한 지위로 포함해야 한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했다.

음악계의 한 원로는 “옛 연혁을 가지고 따지는 일은 불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코리안심포니, KBS교향악단은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더불어 규모와 연주력 등에서 한국 빅3 오케스트라다. 그는 “국립 교향악단이 된다면 다른 두 교향악단과 차별화되는 역할과 목적을 무엇으로 할지 분명히 구상해야 한다. 이 점에 대한 논의가 우선이다”라고 했다. 유럽ㆍ북미의 나라와 도시처럼 정부, 방송국, 지역이 주도하는 오케스트라로 각각 특성과 체제를 갖춰 발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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