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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의 퍼스펙티브

끝나지 않는 코로나 전쟁…소모전으론 이길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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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팬데믹 2년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일본의 코로나19 상황이 롤러코스터다. 지난해 8월 1만8000명까지 올랐던 하루 확진자 수가 11월 들어 150명 수준으로 급감하더니 최근 6000~8000명 수준으로 다시 치솟았다. 그러자 국내 언론에서 “J방역이 흔들린다” 같은 기사가 등장했다. 그러나 속단하긴 이르다. 확진자 수는 급증했지만, 사망자는 아직 하루 1~2명 수준일 정도로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다.

사실 방역 성적만 놓고 보면 K방역과 J방역 중 어디가 우수한지 비교는 부질없어 보인다. 현재까지 인구 100만명당 확진자 수는 한국 1만3000명, 일본 1만4000명 수준이다. 치명률은 한국 0.9%, 일본 1.0%다. 한국이 조금 낫지만, 크게 보면 거기서 거기다. 일본이 6차 유행 초입에 들어선 듯하지만, 한국도 곧 오미크론 변이가 번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주요 산업국가와 비교하면 두 나라 다 선방했다는 사실이다.

백신패스 거부감, 강압 방역 염증
검사·추적·치료 기반 ‘K방역’ 한계
오미크론 대비해 방역 새판 짜야
사회적 비용 고려한 ‘뉴노멀’ 필요

일본의 완화 전략, 한국의 퇴치 전략  

이현상의 퍼스펙티브

이현상의 퍼스펙티브

다만 방역의 사회적 비용은 따져봐야 한다. 지난해 말 출간된 『K-방역은 없다』의 공저자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방역 전략은 확연히 달랐다. 장 교수는 “K방역은 퇴치 전략, J방역은 완화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은 사태 발생 초기 선제적 대량 PCR 검사로 확진자를 ‘색출’하는 전략을 썼다. 반면 일본은 대량검사가 아닌 ‘최적검사’, 즉 유증상자나 중증환자에게 검사를 집중하는 전략을 폈다. 한정된 의료자원을 중증환자 관리와 치료에 집중함으로써 의료 체계의 붕괴를 막자는 의도였다. 사회적 이동 줄이기와 백신 확보 같은 장기 대응 전략도 병행했다.

한국의 대량검사는 ‘검사(Testing)-추적(Tracing)-치료(Treatment)’, 이른바 ‘3T 전략’의 기반이 됐다. 바로 K방역의 핵심이다. 이런 전략은 초기엔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의료체계의 과도한 부담, 인권 및 사생활 침해, 재정 악화 같은 그늘이 따르며 장기 지속성에 의문부호가 붙기 시작했다. 장 교수는 “실제 주요 산업 민주국가들이 선택한 방역전략은 퇴치 전략보다는 완화 전략으로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목되는 ‘오미크론 디커플링’

K방역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은 오미크론 유행을 앞두고 짙어지고 있다. 정부도 오미크론에 대비해 PCR 검사 기준을 높이는 등 방역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다행히 오미크론은 전염성은 높지만 독성은 낮다는 점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미크론 변이가 폐보다는 상기도(코에서 구강·식도까지)에서 주로 번식해 감염률은 높지만, 치명률과 위중증률은 낮다”고 보도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오미크론 변이로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의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세계적 오미크론 확산 와중에서도 오히려 방역을 늦추는 국가들이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은 4차 접종에 나서면서도 자국민들의 오미크론 확산 국가에 대한 여행금지 조치를 풀었다. 백신을 접종한 외국인의 입국도 전면 허용했다. 샤론 알로이-프레이스 보건부 공중보건과장은 “초기 데이터 상으로 감염자 1000명당 입원환자 수는 7~8명, 중증 악화자는 2명 정도”라며 “델타 때 감염자 1000명당 최소 10명씩 중증에 빠졌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라고 설명했다.

인구 1000만명에 2차 접종률은 89%로 우리와 비슷한 포르투갈 사례도 참고할만하다. 포르투갈은 신규 확진자가 4만명에 이르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학생들의 등교와 나이트클럽 재개장을 허용하는 등 방역을 완화했다. 코스타 총리는 “오미크론 증상이 덜 심각하다는 건 명백하다. 입원 및 중증 환자, 사망자가 전보다 훨씬 적다”고 말했다. 실제로 포르투갈의 최근 하루 사망자 수는 20명 내외로 작년 1월 정점(하루 300명) 때보다 훨씬 적다. 섣부른 안심은 금물이지만 ‘오미크론 축복설’이 점점 힘을 얻는 상황이다.

갈등의 중심에 선 방역패스

현재의 방역 방식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은 점점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의료체계는 물론 경제·재정에서도 지속 가능한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기본권과 공익의 충돌이 잦아지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한다. 정부가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는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가 대표적 사례다. 방역패스에는 결국 ‘더 큰 공익’을 위해서는 ‘작은 기본권’은 제약할 수 있다는 논리가 깔렸다. 하지만 정부는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방역패스 효력정지 신청 심문에서 이 제도로 지키고자 하는 ‘공익’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소아·청소년 방역패스는 더 큰 논란거리다. 정부는 미접종 소아·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는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최은화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팀이 이달 초 대한의학회지(JKMS)에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10월초까지 보고된 18세 미만 확진자 3만9146명 중 위중증으로 발전한 사례는 8명이었다. 0.02%의 확률이다. 7명은 비만, 1명은 과체중이었다. 모두 증상 발현 후 1~8일 이내 폐렴 진단을 받고 증상이 며칠간 진행됐으나, 5~32일 만에 호전됐다. 성인 감염자의 위중증 비율(2.5%), 치명률(0.9%)보다 현저히 낮은 위험이다.

결국 어른들을 위해 정작 청소년 본인들에게는 큰 이득이 없는 백신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도덕적 의문이 들만하다. 질병관리청 예방접종전문위원회 자문단에서도 청소년 백신 패스의 타당성에 대한 이견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설득 대신 겁박을 앞세운다. “앞으로 오미크론 유행이 현실화될 경우 청소년이 진원지가 될지 모른다.”(10일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

환상으로 끝난 집단면역론

정부의 방역 손길은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해 10월 초 방역패스 도입과 관련해 “미접종자에 대한 차별·소외가 발생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막상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자 “생명권보다 중요한 기본권이 어딨느냐”며 법원을 압박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지난해 9월 “청소년에 대한 자율 접종 분위기를 만들겠다”더니 “12~17세 접종을 ‘강력하게’ 권고드린다”로 바뀌었다.

그 배경에는 환상으로 끝나버린 ‘집단 면역론’이 있다. 질병청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지난해 10월 “접종 완료율이 85%가 되면 집단면역은 대략 80%에 이르고, 이렇게 되면 이론적으로 델타 변이조차 마스크 없이, 집합금지 없이, 영업금지·제한 없이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설명이 있은 지 보름 뒤 시작된 ‘위드 코로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접종 후 4개월이 지나면 방어력이 확 떨어지는 코로나19 백신의 한계에다 델타 변이 특성까지 겹쳤다. 병상 확보와 의료체계 정비 같은 정부 준비는 부족했다.

방역과 개인 권리는 갈등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갈등을 줄이는 책임은 정부에 있다. 일방적 방역 드라이브에 알레르기 및 약물 민감 환자, 종교적·의학적 신념자 등 개인이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이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과학적 근거를 찾아다니고 있다. 최근 백신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 씨의 유튜브 영상은 조회 수 140만에 육박한다. 한때 강제 삭제 조치를 당한 뒤 복구됐으나 그 바람에 화제성은 더 커졌다. 백신 거부자들의 의문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답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신념은 더 굳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성공 방식 집착 버려야

의료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더 과감하게 지속가능한 방역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대우 중앙대 약학과 교수는 “오미크론 감염을 용인하는 ‘위드 코로나’ 방향으로 가되 60대 이상 고령층과 기저 질환자 중심의 위험관리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조심스럽다. 설 교수도 국내 오미크론 변이의 점유율이 75% 수준까지 오르고 위중화율과 치명률이 델타 변이보다 30% 수준으로 낮다는 것이 확인돼야 한다는 전제를 깔았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감염자가 보고된 지 만 2년이 됐다. 바이러스는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지만, 조금씩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공포와 희망이 여전히 교차한다. 인류가 코로나19 공포에서 벗어나려면 최소 2~3년은 걸린다는 전망도 나온다. 소모전으론 한계가 있다. 지속 가능한 방역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한때 자랑하기 바빴던 K방역 모델이 이젠 벽에 부딪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개인의 인내와 자영업자의 희생을 언제까지 강요할 수도 없다. 전체주의 색깔이 짙은 방역 방식에 국민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 과거 성공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용기부터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