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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아파트 내부부터 무너진듯…연쇄붕괴, 삼풍백화점 때와 비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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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6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광주광역시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의 붕괴사고 당일(11일) 강풍으로 인해 타워크레인 작업이 중단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붕괴 건물에서 작업했던 타워크레인 기사는 건물 내부부터 무너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건설업계는 이번 사고의 원인이 ‘인재’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39층 아파트의 38층부터 23층까지 벽과 슬래브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연쇄 붕괴’가 일어났는데, 무너져 내린 양상이 “1995년 붕괴한 삼풍백화점 때와 비슷하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잇따른다. 삼풍백화점도 최상층인 5층이 붕괴하면서 충격하중을 받아 지하 4층까지 무너져내렸다.

붕괴사고가 발생한 광주시 신축 아파트 건물(201동) 공사에 투입된 타워크레인 기사 A씨는 12일 “오전 8시 출근해 자재 등을 나르는 작업을 했고 오전 10시30분에 강풍으로 작업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이곳에 설치된 타워크레인은 140여m 높이로 일반적으로 풍속이 초속 15m를 넘기면 작업이 중단된다는 게 A씨 설명이다. 붕괴 건물에는 타워크레인이 외벽에 지탱한 채 위태롭게 서 있다. 타워크레인이 매달려 있는 모습 때문에 풍압이 타워크레인에 작용하면서 뜯겨 나가 사고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데 대해 A씨는 “강풍만으로 타워크레인이 무너질 순 없다”고 했다. 그는 “사고 현장을 보면 외벽은 그대로 남아 있고 내부가 무너져 있다”며 “건물이 무너진 모습을 보면 외벽 안쪽으로 잔해물이 쏟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무너진 38~23층, 얼어붙은 콘크리트가 방아쇠 당긴 듯

광주 39층 아파트 ‘붕괴의 재구성’.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광주 39층 아파트 ‘붕괴의 재구성’.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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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는 철근을 세우고 거푸집을 만들어 콘크리트를 붓는 전통적인 ‘철근콘크리트 공법(RC·Reinforced Concrete)’을 쓴다. 벽과 바닥이 철근부터 콘크리트까지 한몸처럼 붙어 있기 때문에 벽 또는 슬라브 일부만 붕괴하는 일은 드물다는 지적이다. 콘크리트 구조 전문가인 박홍근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설계부터 시공까지 단계별로 안전도를 굉장히 높여놨음에도 이런 연쇄 붕괴가 발생했다는 것은 여러 중요한 하자가 중첩돼 나타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콘크리트 시공상의 문제가 먼저 거론된다. 동계 공사로, 영하의 기온이 이어지는 가운데 콘크리트가 제대로 굳지 않고 얼어붙었는데도 공사를 이어갔을 가능성이다.

통상 콘크리트는 영상 5도 이상의 기온에서만 타설하고 굳혀야 한다. 또 겨울철에는 콘크리트가 잘 마르지 않아 2주가량 양생을 거쳐야 한다. 기온이 그 이하로 떨어질 경우 콘크리트가 굳지 않고 얼어붙는 것을 막기 위해 양생하는 층마다 난로를 쓰는 식으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콘크리트는 한번 얼면 푸석푸석해져서 강도가 떨어진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가을 입주가 건설사에 치명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겨울 골조공사를 강행해야 하는 탓”이라며 “게다가 내·외부 마감이나 조경공사가 점점 중요해지고, 시간이 걸리다 보니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골조공사를 쫓기듯 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사고 후 건설현장 주변에서는 “닷새마다 1층을 쌓아올린 것으로 보였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콘크리트 재료 자체의 문제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겨울철에 시공하지 않은, 양생이 끝난 하부층까지 무너져내렸기 때문이다. 홍건호 호서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크레인이 물건을 나르다 거푸집을 쳤다 해도 부딪친 부분은 파손이 일어날 수 있어도 이번 사태처럼 십수개 층이 연쇄적으로 붕괴하지 않는다”며 “골재 품질이나 콘크리트 제조상의 하자 등 전반적으로 콘크리트 재료 강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콘크리트와 더불어 철근 설치(배근) 문제도 거론된다. 최근 들어 건설현장에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공장에서 철근을 조립하고 현장에서 설치만 하는 ‘철근 선조립’ 공법을 많이 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장에서 일정 길이를 제작해 와서 현장에서 이어가는데 맞춤형이 아니다 보니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며 “이번 사태의 경우 바닥과 벽체의 철근 이음새를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박홍근 교수는 “결국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려면 콘크리트 샘플을 구해 강도 조사를 하고, 철근 직경이나 배근 상태 등을 다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사고가 난 201동 타설은 최소 12~18일가량 충분한 양생 기간을 거쳤고, 필요한 강도가 확보되기 충분한 기간”이라며 “공기가 지연돼 서둘러 공사했다는 일부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사고 원인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건설사고조사위원회를 운영한다고 12일 밝혔다. 이날 현장을 방문한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관리책임 부실 등 위법 사항은 무관용 원칙으로 엄중 처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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