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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ID" 유엔서 北규탄한 6개국…이 성명에 또 한국은 빠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주도로 유엔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 성명이 나왔지만, 정작 북한의 가장 큰 위협에 직면해 있는 한국은 이에 참여하지 않았다. ‘북한과의 대화 재개 동력 유지’가 이유다. 하지만 북한은 보란 듯이 성명이 나온 직후 또 미사일을 발사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가 10일(현지시간) 유엔 6개국을 대표해 북한 탄도미사일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유엔 웹 티비 캡쳐.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가 10일(현지시간) 유엔 6개국을 대표해 북한 탄도미사일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유엔 웹 티비 캡쳐.

CVID 다시 꺼내 든 美

이날 성명은 미국이 주도했다. 일본, 영국, 프랑스, 알바니아, 아일랜드 등 모두 6개국 공동 명의였다. 지난 5일 북한이 극초음속미사일이라고 주장하는 미사일을 발사한 것과 관련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비공개 회의를 열기 직전 성명이 나왔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는 10일 오후(현지시간)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우리의 목표는 완전하고 증명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고 명시했다. CVID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돼온 북한의 비핵화 목표를 규정하는 표현으로, 검증(V)과 불가역성(I) 등의 단어가 포함돼 북한이 극도로 꺼려하는 용어다.

정부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서 CVID가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CD)로 비핵화 표현을 바꾼 이유다. 트럼프 미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도 지난해 4월 대북정책 리뷰 뒤 공식 용어를 CVID가 아닌 완전한 비핵화로 정했다. 미국이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수용한 것이라 정부는 이를 대미 외교의 성과처럼 내세웠다.   

하지만 토머스-그린필드 대사가 이날 성명에서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 뿐 아니라 CVID를 다시 꺼내든 것은 미국이 그간 한국을 배려해 표현을 달리 한 것 뿐이지 실제 원칙 자체는 CVID에서 달라진 적이 없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지난해 6월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이 합의한 공동성명에도 CVID가 명시됐다. 나토 회원국만 참여하는 성명이었다. 한국이 없는 미국 주도의 북핵 규탄 성명에서는 CVID가 되살아난 것이다.

북한 국방과학원이 지난 5일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6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 국방과학원이 지난 5일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6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日 함께하고 韓 빠지고

한국은 이번 성명에서도 빠졌다. 그렇다고 나토 성명 때처럼 한국이 참여 자격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6개국 중 일본은 안보리 이사국이 아닌데도 성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날 성명의 참여 범위를 안보리 이사국으로만 한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일본은 지난달 미국을 비롯한 7개국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안보리 차원의 공개 토의를 제안하는 성명을 발표했을 때도 동참했다. 당시에도 한국은 없었다.

북한이 지난 5일 발사한 미사일과 11일 발사한 미사일은 모두 비행거리 약 700km로 추정된다. 한국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처럼 가장 직접적 위협을 받으면서도 정부는 국제사회의 북한 미사일 규탄에는 이름도 올리지 않은 셈이다. 정부가 북한을 자극할만한 행보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의 태도를 취하다 보니 국제사회의 정당한 우려 제기에도 동참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안의 무게를 고려했을 때 불참 결정은 유엔대표부 차원이 아니라 외교부 본부에서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이 공동성명에 동참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다양한 요소를 고려했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와 대화 재개를 위한 모멘텀(동력) 유지 필요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종합적으로 대응해 나간다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청와대도 같은 날 오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를 열고 이날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다. 앞서 지난 5일 미사일에 대해 청와대는 '유감'이라는 표현 없이 "우려한다"는 입장만 밝혔다. 지난해 9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반발 이후 정부가 자제하고 있는 "도발"이라는 표현은 이날도 등장하지 않았다.

북한, 올들어 두번째 미사일 발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한, 올들어 두번째 미사일 발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편 성명에서 6개국은 "북한은 극초음속미사일 등 신기술을 추구하고 있다고 발표하며 불법무기 개발 의지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군은 지난 7일 브리핑을 자처해 "북한이 5일 발사한 미사일은 북한 매체의 주장과 달리 극초음속 미사일이 아니라 일반 탄도 미사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 성명에서 극초음속미사일의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둔 것이다. 미 국방부 역시 북한 미사일의 세부 사항과 관련해 "평가 중"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게다가 북한이 11일 발사한 미사일은 군 당국 역시 최대속도 마하10 내외, 비행거리 700km 이상으로 분석했다. 극초음속미사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군 역시 기술 진전을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5일 발사한 ‘탄도미사일’보다는 진전된 것으로 평가된다”며 기존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도발 당사자인 북한은 거듭 미사일 성능을 과시하는데, 위협받는 당사자인 한국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축소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 미사일 발사 일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북한 미사일 발사 일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北 무기 수출 우려" 강조

이날 성명엔 "북한의 무기가 전 세계의 불법 무기 고객과 매매상들에게 수출될 수 있다"는 경고도 담겼다.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북한의 무기 개발이 국제적인 비확산 의무 위반이라는 보다 확장된 개념까지 적용한 것이다.

물론 이런 인식이 미국의 추가적인 독자 제재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북한이 신형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도 추가 제재 카드는 꺼내지 않았다.

현재 국제사회에는 이미 가장 높은 강도의 대북 제재 체계가 마련돼 있는 만큼 기존의 제재를 철저히 준수, 빈틈 없이 운영하는 게 더욱 효율적이라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이날 성명에도 "모든 유엔 회원국이 대북 제재의 의무를 다 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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