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검열한 독재정권도, 편집과정 들여다보진 않았다"

중앙일보

입력 2022.01.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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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월 10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출근하고 있다. 뉴스1

1월 10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무차별 통신정보 조회에 따른 불법사찰 논란과 관련해 법학계에서 “공수처가 독자적인 판단으로 벌인 일인지, 배후가 있는 건지 밝혀야 한다”라는 주장이 나온다.

대표적 헌법학자인 장영수(62)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0일 중앙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이같은 의견을 밝혔다. “오는 3월에 있을 대선과 관련 있다면 더욱 심각성을 더한다”면서다. 공수처가 지난해 1월 21일 출범 이후 ‘살아 있는 권력’의 중대 부패범죄에 대해선 뭉개거나 검찰 등에 떠넘긴 반면, 상대적으로 비중이 크게 떨어지는 몇 가지 사건에 유별나게 수사력을 집중하며 저인망식으로 취재기자 등의 통신정보를 조회한 배경이 의문이고 이를 파헤쳐야 한다는 이야기다. 공수처는 이날까지 기자 176명과 그의 가족, 국민의힘 의원 91명, 윤석열 팬카페 회원 5명 등을 포함해 총 332명(445건)에 대해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집계된다.

“공수처, 산 권력 중대 부패범죄는 뭉개거나 검찰에 떠넘기고…”

공수처는 지난해 3월 이성윤 서울고검장 등이 포함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와 이에 대한 ‘수사 무마’ 의혹에 대해 같은 달 “수사 인력이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라는 이유로 검찰로 되돌려 보냈다. 검찰이 이규원 부부장검사와 이성윤 서울고검장 등을 재판에 넘기자 6월 연루된 검사들에 대한 사건을 다시 가져온 뒤 6개월 넘게 뭉개고 있다.

또 지난해 3월 검찰로부터 넘겨받은 ‘청와대발 기획 사정(司正)’ 의혹 일부에 대해선 4월 수사에 착수하고선 8개월가량 뭉개다 12월 결론을 내지 않고 검찰로 재이첩했다. “의혹의 나머지 부분을 수사한 검찰이 합일적으로 최종 처분하는 게 좋아 보인다”는 이유를 댔다.

대신 공수처가 수사력을 쏟아부은 건 산 권력이 아닌 윤석열 전 검찰총장(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관련 수사였다. 고발 사주 의혹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 91명 등에 대한 통신 가입자 신상정보를 마구잡이로 조회했다.

더 심각한 건 불법 출금 수사 무마 의혹 사건의 피고인인 이성윤 고검장과 관련해 공수처가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 오히려 김진욱 공수처장의 ‘이 고검장 관용차 에스코트 CCTV’ 영상을 보도한 TV조선 기자,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를 강제 수사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착·발신 전화통화 상대방이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있는 다른 참여자의 전화번호·ID 등을 파악하고 통신 시점, 빈도 등도 들여다봤다. 이후엔 동료 기자 수십 명과 기자의 가정주부인 어머니 등에 대한 신상정보를 무차별 수집하고, 중앙일보 편집국 단체대화방의 취재·편집·보도 과정을 체크하기까지 해 불법 사찰 논란에 불을 댕겼다.
(2022년 10월 10일 중앙일보 「[단독]공수처 尹팬카페 털고, 중앙일보 편집국 단톡방 뒤졌다」 참고)

이성윤 서울고검장. 뉴시스

이성윤 서울고검장. 뉴시스

공수처, 편집국 의사결정 단톡방 들여다봐 “독재정권보다 심해”

이에 대해 “과거 독재 정권보다 더 심한 게 아니냐”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미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재 정권은 신문이 나가기 직전에 검열하는 정도만 했지, 편집 과정 전반을 들여다보지는 않았다”라고 밝혔다. 공수처가 편집회의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언론이 제대로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런 식의 수사를 허용하면 공수처가 범위를 무한정 넓혀 언론뿐만 아니라 온 국민을 수사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지난해 12월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찰과 경찰이 공수처보다 훨씬 더 많이 통신자료(통신가입자 신상정보)를 조회하는데 왜 우리만 비판하느냐”라고 항변한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에 잘못이 있을 때 바로잡으라고 만든 게 공수처인데 검찰 등이 잘못한다고 따라 하겠다는 뜻인가”라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국민의 인권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맞는지 비교하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막무가내로 신상정보(통신자료) 조회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자 등의 통화나 카카오톡 대화 상대방 등을 파악해 취재 경위를 엿보는 통신사실확인자료 조회가 큰 문제이기 때문에 본질을 벗어났다”라는 지적도 한다.

공수처 인력·예산 늘리자는 輿…학계 “중립성 확보 우선”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7일 “공수처의 수사력을 키우기 위해 인력과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서경대 교수)은 “정치적 중립성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는 공수처장 임명 구조를 개선하는 게 우선이다”라고 지적했다. 공수처법 원안에선 공수처장 추천위 의결 정족수가 ‘7명 가운데 6명 이상’이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개정안에선 ‘3분의 2 이상(5명 이상)’으로 완화돼 야당의 비토권이 무력화됐다. 정 교수는 “야당 추천으로 대통령이 공수처장을 임명하면 공수처의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사람에 대해 단기간 여러 번씩 반복적으로 통신자료를 조회한 걸 보면 수사 전문성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라며 “전문성 제고와 함께 통신자료 조회 시 일정 기간 후 당사자에게 통보되도록 하는 등의 제도 개선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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