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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공수처 尹팬카페 털고, 중앙일보 편집국 단톡방 뒤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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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4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1월 4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수사를 명분으로 중앙일보의 취재·편집·보도 관련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편집국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들여다 본 정황이 확인됐다.

공수처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팬카페 회원인 50대 가정주부와 윤 후보 측근인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의 아내·자녀에 대한 통신자료(가입자 신상정보 등)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서다. 공수처의 무차별 민간인 사찰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공수처, 기자 카톡 전용폰 조회…편집국 단톡방 사찰 정황

9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 수사과는 지난해 8월 4일 중앙일보 디지털 속보 취재 부서인 EYE팀 A기자가 업무용 카카오톡에만 쓰는 알뜰폰에 대해 통신자료(고객명,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주소, 가입일)를 조회했다. 공수처는 해당 알뜰폰 통신사업자에게 “‘사건번호 2021년 공제 4호’에 대한 수사 목적”이라는 사유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공제 4호’는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사건번호다.

A기자는 지난해 5월 중앙일보가 단독 보도한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취재를 위해 검찰 관계자들과 연락을 주고 받은 사실이 전혀 없으며, 공소장 내용 보도에 관여한 바도 없었다.

A기자는 대신 업무용 알뜰폰으로 편집국장, 부국장을 비롯해 편집·보도 권한을 가진 간부와 법조 취재를 담당한 사회1팀 취재기자들을 포함해 70여 명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일상적인 취재·편집·보도 협의 등 의사소통을 했을 뿐이다. 이 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수사와 관련 있는 접점은 이 단체 대화방이 유일하다. A기자처럼 각종 편집국 대화방에 참여했다가 공수처 수사과로부터 신상정보를 털린 기자만 현재까지 20명이 넘는다. 이 때문에 공수처가 수사를 빌미로 중앙일보 편집국의 취재·보도 과정을 불법 사찰하며 헌법상 언론 자유의 핵심인 편집권을 정면으로 침해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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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선 공수처가 지난해 5월 중순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단독 보도한 본지 사회1팀 기자에 대해 8월 법원의 통신영장(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요청서)을 발부받아 이동통신사로부터 착·발신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확보한 것과 별도로 카카오톡에서도 대화방 가입자 전화번호·ID를 포함해 통신내역을 확보한 것으로 분석한다.

카카오톡은 수사기관의 개별 가입자 신상정보(통신자료) 제공 요청에는 응하지 않지만 법원이 발부한 통신영장을 제출할 경우 대상자의 카톡 활동 내역을 포함해 가입한 단체 대화방에서 어떤 참여자(전화번호·ID)가, 언제 메시지를 올리고, 총 몇 회의 활동을 했는지 등이 담긴 로그 기록을 제공한다고 한다.

이후 공수처는 해당 로그 기록을 바탕으로 해당 단체 대화방에 참여한 A기자를 포함해 중앙일보 기자들의 신상정보를 통신사에 요청해 광범위하게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공수처는 이 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보도한 사회1팀 기자의 동료 8명과 가정주부인 어머니의 통신자료를 수차례씩 반복 조회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김종민 “언론사 편집권 정면 침해”, 장영수 “독재정권보다 심해”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출신인 김종민 변호사는 중앙일보 편집국 업무용 단체 대화방 사찰 의혹에 대해 “전형적인 언론 불법사찰”이라며 “취재·보도 전 과정이 이뤄지는 업무용 단톡방까지 들여다본 건 수사를 빙자해 특정 언론사의 편집권을 정면으로 침해한 불법 행위”라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적으로 표현하면 과거 독재 정권보다 더 심한 게 아니냐고 할 수 있다”라며 “독재 정권은 신문이 나가기 직전에 검열하는 정도만 했지, 편집 과정 전반을 들여다보지는 않았다”라고 밝혔다. 장 교수는 “공수처가 편집회의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언론이 제대로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겠나”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카카오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요청할 때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나 파일명 등에 관한 정보는 제공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공수처는 “개별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기가 어렵다”는 기존 입장만 반복해 밝혔다.

근본적으로 공수처가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으로 성명불상 검사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공범이 될 수 없는 기자를 강제 수사한 것부터 불법 표적 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소장은 1차 공판에서 공개가 예정돼 있기 때문에 공무상비밀로 취급할 수 없고 그래서 애초에 수사에 착수할 건이 아니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공수처, 윤석열 팬클럽 50대 주부와 한동훈 처·자녀도 뒤졌다

공수처는 별도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검찰총장에 재직하던 당시의 ‘고발사주’ 의혹(공제 13호)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윤 후보 팬클럽 네이버카페 일반인 회원들을 불법 사찰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 가운데 50대 가정주부도 포함돼 있다.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공수처는 지난해 10월 5일 서울 종로구에 사는 50대 가정주부 김모씨의 휴대전화 가입자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가입일, 해지일 등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김씨는 중앙일보에 “윤석열 후보 등은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고 연락한 적도 없다”며 “나는 평범한 가정주부인데 고위공직자범죄를 수사하는 공수처가 통신자료를 조회했다고 하니 너무 황당하고 무섭다”고 말했다. 다만 2020년 8월부터 윤석열 후보의 팬클럽 네이버 카페인 「22C 대한민국과 윤석열」에서 활동 중이라고 한다. 이 팬클럽 카페에선 주부 김씨를 포함해 최소 3명이 공수처로부터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부 김씨는 윤석열 후보 측근인 한동훈 부원장의 팬클럽 네이버 카페인 「위드후니 (with후니)(한동훈 팬클럽)」에서 활동 중이기도 해 한 부원장 팬클럽 회원에 대한 불법 사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공수처 수사3부는 주부 김씨와 같은 시점인 지난해 10월 한동훈 부원장 본인과 더불어 그의 변호사 아내, 미성년자 자녀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고 한다. 한 부원장의 가족까지 조회한 배경을 두고 법조계에선 “한 부원장의 전화통화 착·발신 상대방 가입자 전화번호 등을 조회한 뒤 마구잡이로 상대방의 신상 정보까지 턴 게 아니냐”라는 관측이 나온다.

2019년 9월 25일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 그 뒤를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 따르고 있다. 뉴스1

2019년 9월 25일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 그 뒤를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 따르고 있다. 뉴스1

한동훈 “이렇게 막 나가는 수사기관 처음…선량한 국민 겁주기”

이날 한동훈 부원장은 입장문을 내고 “오래 수사를 해왔지만 수사기관이 이렇게 인권이나 헌법 무서운 줄 모르고 막 나가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라며 “정상적인 수사방식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떤 절차를 거쳐 이런 일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윤석열·한동훈 팬클럽 회원들에 대한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와 관련해서 한 부원장은 “수사대상이 고위공직자로 엄격히 한정된 공수처가 동호회 활동을 하는 순수 민간인들을 상대로 무차별 통신조회를 하는 건 선량한 국민을 겁주고 불안하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공수처는 신생팀이니 이해해주고 응원해줘야 한다”며 공수처를 감싸는 발언을 한 데 대해 한동훈 부원장은 “신생팀이면 승부조작하거나 금지약물에 걸려도 되는 건가”라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보는데도”라고 반박했다.

이날 현재까지 공수처에 통신자료 조회를 당한 기자 수는 185명(기자의 가족 9명 포함)인 것으로 집계된다. 총 조회 건수는 290건이다. 여기에 국민의힘 의원 97명, 윤석열 후보 부부, 한국형사소송법학회 집행부·회원 24명 등을 포함하면 피해자 수는 320명(433건)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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