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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기고] 과학으로 본 후쿠시마 시니시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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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는 시니시즘의 작가였다. 그의 수필 ‘겸손한 제안(A modest proposal)’에서 그는 아일랜드 빈민층 아이들이 부모나 국가에 부담이 되지 않고 공공사회에 유익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12만 명의 아이들 가운데 10만 명을 지주들의 식품으로 사용하고 2만 명은 번식용으로 키우자고 주장했다. 사실 이 글은 실제로 그렇게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굶주리는 아일랜드 서민들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해주는 현실을 비꼬기 위한 풍자였다.

그런 그의 의도를 알고 난 후에도 섬뜩함은 남는다. 이성적으로 오해가 풀려도 감성적으로 풀리지 않은 상태로 남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이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관한 선동에도 동일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수소폭발로 원자로를 내포하는 건물의 외벽이 떨어지는 모습이 중계됐다. 원전 내부에서 사고는 진행되고 있는데 지켜보는 것밖에 달리 손을 쓸 수 없는 무력감도 경험했다. TV를 통해 원전 전문가들은 상황을 예측하고 보도했다.

이후에도 간간이 섬뜩한 소식이 전해졌다. 방사성물질로 인한 괴생명체가 발견되고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가 캘리포니아에 도달했다, 일본에서 방사능 농도가 높은 핫스폿이 발견됐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100만t을 초과했다는 얘기들이었다.

후쿠시마에서 쓰나미로 약 2만 명이 사망했지만, 방사선으로 인한 사망자는 없었다. 또 괴생명체는 방사선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원래 존재하는 종임을 과학자들이 밝혔다. 핫스폿은 빗물 등이 모이는 곳으로 부분적으로 방사능 농도가 높을 뿐 절대량이 미미하다는 것도 밝혀졌으며, 후쿠시마에 저장된 물은 ‘오염수’를 고성능필터로 거르기 때문에 삼중수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방사성농도가 배출 기준치 이하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캘리포니아 해안에 도달했다던 방사선량도 시뮬레이션 결과일 뿐 거의 측정이 안 될 만큼의 극미량임도 밝혀졌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다. 이성적으로 이해가 돼도 감성적으로는 섬뜩함이 남는 것이다. 그래서 저장수를 방출하겠다고 하면 감정이 먼저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후쿠시마에서 배출되는 물은 ‘오염수’가 아니고 정화된 처리수다. 동경전력은 매주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의 양과 농도를 규제기관에 보고하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업로드한다. 접속해 확인할 수도 있다.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의 처리 계획과 관련해 다섯 가지 방안을 연구했고 이를 국제 저널에 게재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미션팀을 요청해 공개적인 자문을 받고 있다. 일본 주재 외국 대사관의 과학관들도 초청해 설명회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일본 정부가 방류 방침을 공표한 지 수개월이 됐다. 아직 방류하지 않지만 조만간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금기어’가 있다. 절대 어떤 의견도 말하면 안 되는 말들이 있다는 것도 민주사회에서 이상한 야만이다. 후쿠시마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도 이런 글을 쓰는 것은 과학적으로 옳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 총회에서 우리나라 대표가 후쿠시마 원전 저장수 방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을 때 거의 대부분의 나라는 동조하지 않았다. 동조하는 경우에도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감정적인 것이다. 필자는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서 비이성적으로 비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 후쿠시마 시니시즘에 이용당해 우리 국민이 더 이상 선동가들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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