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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떡볶이집이 3000만원" 임대료 6배 대관령휴게소 비밀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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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옛 대관령휴게소. 36㎡(약 11평) 남짓한 분식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63)씨 부부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10년 넘게 떡볶이와 어묵을 팔아온 이 점포를, 코로나19를 비롯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유지해왔는데, 갑자기 임대료까지 크게 올라서다.

이씨는 “최고가 경쟁 입찰 때문에 1년에 1000여만 원이던 임대료가 올해 2960만 원으로 뛰었다”며 “코로나로 영세상인들의 임대료를 감면해주는 곳도 많은데 외려 임대료가 급등한 건 부당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코로나로 인해 가뜩이나 수입이 반 토막 났는데, 장사해서 번 돈 대부분을 임대료로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떡볶이를 팔아서 3000만 원에 달하는 임대료 낼 수 있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죽지 못해 버텼더니 이제 와서 내쫓느냐’ 

지난달 29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옛 대관령휴게소 앞을 지나는 행인의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달 29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옛 대관령휴게소 앞을 지나는 행인의 모습. 박진호 기자

대관령휴게소에 입점해 장사하는 영세상인들은 대부분 비슷한 처지다. 휴게소 내 개인이 운영하는 점포 9곳의 임대료가 올해부터 많게는 6배나 높아졌다. 도대체 상인들은 왜 임대료 폭탄을 맞게 된 걸까.

대관령휴게소는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길목에 위치한 휴게소다. 2001년 이 구간을 직선화한 새 도로가 놓이면서 휴게소 앞을 지나는 도로가 지방도로가 됐다. 들르는 손님도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눈꽃 산행 1번지라 불리는 선자령 출발지점이고, 대관령 양떼 목장과도 가까워 꽤 지명도가 있는 곳이다.

휴게소 자체는 강원도 소유다. 현재 평창군이 위임을 받아 유지·관리 및 운영을 하고 있다. 지난해 3월까지는 다시 대관령마을영농조합법인(마을법인)에 운영을 맡겼다. 상인들은 마을법인에 매년 800~1000만 원의 임대료를 내며 영업을 해왔다.

그런데 지난해 4월 평창군시설관리공단을 출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운영권을 회수한 공단은 공유재산법에 따라 경쟁 입찰을 통해 낙찰자를 선정하겠다고 선언했다.

공유재산법에 맞춰 최고가 경쟁 입찰 진행 

지난달 29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옛 대관령휴게소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업주가 눈을 쓸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달 29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옛 대관령휴게소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업주가 눈을 쓸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9개월간의 유예기간이 끝나가던 지난해 말, 휴게소 안팎에선 “가게 입찰을 받기 위해 OO가 높은 금액을 쓴다”라는 식의 소문이 급속하게 퍼졌다. 최고가 낙찰 방식으로 바뀐 상황에서 소문은 입주 상인들의 불안을 키웠다.

2009년부터 131㎡(약 39평) 규모의 카페를 운영해 온 배모(39)씨는 “경쟁 입찰에 4000만~5000만 원을 써내려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돌아 카페를 지키기 위해 5000만 원이 넘는 금액을 썼다”며 “카페를 오픈할 당시 1억 원이나 되는 돈을 시설 투자에 썼는데 이렇게 뺏길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900만 원 조금 넘는 수준이었던 배씨의 임대료는 올해 6배로 뛰어 5380만 원을 내야 한다. 다른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입찰에서 떨어지면 많게는 1억 원 가까이 투자한 시설비를 돌려받을 수도 없는 만큼 높은 입찰가를 쓸 수 밖에 없었다.

수익금에 맞춘 적정 임대료 썼다 점포 뺏겨

지난달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옛 대관령휴게소 입점 상인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걸어 놓은 모습. [사진 대관령휴게소 상인연합회]

지난달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옛 대관령휴게소 입점 상인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걸어 놓은 모습. [사진 대관령휴게소 상인연합회]

실제 이번 경쟁입찰에서 점포 두 곳이 기존에 내던 금액과 비슷한 금액을 써냈다가 입찰에서 떨어져 당장 가게를 비워줘야 할 처지가 됐다. 휴게소 내 잡화점을 운영해 온 이모(55·여)씨는 “입찰가보다 높은 금액을 적어내면 아무리 열심히 팔아도 남는 게 없어 생계유지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며 “이번에 낙찰을 받지 못하면서 1000만 원가량의 시설 투자비도 날리게 됐다”고 말했다.

현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대관령면 점포의 경우 1층 기준 평당 임대료는 월 5만~8만 원 수준이다. 위치나 규모 등에 따라 다르지만 11평을 기준으로 할 때 1년 임대료는 660만~1056만 원, 39평 기준 2340만~3744만 원을 내고 있다. 현지 부동산 관계자는 “아무리 위치가 좋더라도 1년 임대료가 5000만 원을 넘는 건 너무 과하다”고 말했다.

시설공단 "투명한 관리 위해 경쟁 입찰 불가피"

지난달 29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옛 대관령휴게소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달 29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옛 대관령휴게소 모습. 박진호 기자

평창군시설관리공단 측은 “지난해 4월 출범 후 곧바로 경쟁 입찰을 하지 않고 상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12월 말까지 9개월간 유예기간을 줬다”고 설명했다. 이 기간 상인들은 점포의 면적에 따라 임대료를 냈다고 한다.

상인들은 그 뒤로도 사용 허가 기간을 연장해 경쟁 입찰 시기를 더 늦춰 달라고 요청했다. 공유재산법상 천재지변이나 재난으로 피해를 본 경우 사용 허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조항을 ‘코로나19 상황’에 적용해 달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평창군시설관리공단 측은 거절했다. 공단 측은 “천재지변이나 재난으로 영업하지 못한 경우나 지방자치단체의 귀책사유로 재산 사용에 제한을 받은 경우에만 허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며 “그동안 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연장할 수 없다”며 입찰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한왕기 평창군수는 “공공재산을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시설관리공단을 만들었고, 법상 수의계약이 불가능해 공개경쟁 입찰을 한 것”이라며 “기존 상인 외에도 입찰에 응한 사람들이 있어 임대료를 낮출 수 없다”고 말했다.

'착한 임대료' 강조하면서 공공에선 '적법'만 되풀이

지난달 29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옛 대관령휴게소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달 29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옛 대관령휴게소 모습. 박진호 기자

현재 코로나19 장기화로 소상공인들이 어려워지자 점포 임대료를 자발적으로 인하해주는 ‘착한 임대인 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정부도 착한 임대인을 지원하기 위해 임대료 인하액의 일정 비율을 세액에서 공제해주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이처럼 민간에는 착한 임대인이 되달라고 강조하면서 공공기관은 법대로 할테니 나거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주장만 되풀이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공유재산을 활용해 공단이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인 만큼 상생협력지원제도 등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지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희순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경쟁 입찰이 이미 끝났는데, 다시 정해진 임대료를 낮추면 참여자들의 민원 제기로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며 “공단과 사용계약을 맺은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영업손실에 대한 부분을 보존해 해주는 등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조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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