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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차 덮친 시뻘건 불길에 공포 질렸다…250억 들인 '극한체험'[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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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당시 불탄 전동차 "안타깝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설치된 재난체험 재현 모습. 전동차를 타면 바나나 껍질을 이용해 만든 연기(수증기)가 가득해지고, 전동차 밖으로 불길(그래픽)이 치솟는다. 사진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설치된 재난체험 재현 모습. 전동차를 타면 바나나 껍질을 이용해 만든 연기(수증기)가 가득해지고, 전동차 밖으로 불길(그래픽)이 치솟는다. 사진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지하철 1호선 1079호 전동차가 역으로 진입하는 순간 전동차 경로석에 앉아있던 50대 중반의 남성이 불을 질렀다. 방화범이 지른 불은 열차 내부 부속물 등으로 옮겨붙으면서 12량의 객차를 태웠다. 192명의 안타까운 생명을 앗아간 대구지하철 참사다.

사건 발생 18여년이 흐른 지난달 28일 대구시 팔공산 자락에 있는 한 건물.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뼈대만 남고 타버린 1079호 불탄 전동차가 건물 한쪽에 전시돼 있었다. 이를 보던 한 시민은 “불탄 전동차를 보니 참사의 끔찍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안타깝고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이날 취재진이 찾은 곳은 대구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진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다. 지하철 화재뿐 아니라, 지진·차량전복 등 각종 재난 사고를 경험하고 이에 맞는 생존·대처법을 익히도록 한 재난체험 시설이다.

바나나 껍질 수증기…연기처럼 가득 들어차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불탄 전동차.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내에 전시돼 있다. 김윤호 기자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불탄 전동차.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내에 전시돼 있다. 김윤호 기자

현실적인 재난체험 시설을 갖춘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전동차를 타면 바나나 껍질로 만든 연기(수증기)가 가득해지고, 전동차 밖으로 불길(그래픽)이 치솟는다. 김윤호 기자

현실적인 재난체험 시설을 갖춘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전동차를 타면 바나나 껍질로 만든 연기(수증기)가 가득해지고, 전동차 밖으로 불길(그래픽)이 치솟는다. 김윤호 기자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2016·2017년 경북 경주·포항 지진 등 뼈아픈 사고를 경험한 탓일까. 대구시민안전테마크의 체험은 단순 오락형이 아니다. 3시간 코스로 차량 전복·집안 거실 화재 상황 등 다양한 현실적인 재난 체험을 할 수 있다.

이날도 안전테마파크를 찾은 체험객들은 1관에 만들어진 전동차 안에 긴장한 표정으로 탑승해 있었다. 잠시 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전동차가 정지하면 대피하십시오"라는 다급한 목소리의 안내방송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이후 전동차 창문 밖으로 시뻘건 불길이 솟아오르더니 차량 내부가 연기로 가득 찼다.

불이 꺼진 전동차 안에 앉아있던 체험객들의 얼굴엔 공포가 가득했다. 불길은 그래픽으로, 연기는 바나나 껍질을 이용해 만든 수증기인데도 화재 참사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내서다.

이후 체험객들은 소방관의 안내를 받으며 전동차 출입문 비상 장치를 조작해 탈출했다. 이어 어둠 속에서 지하철역 한쪽 벽에 붙은 화살표 유도 표시를 따라 역사를 빠져나갔다. 한 체험객은 "불길과 연기, 암흑. 실제 재난 상황이 아닌 것을 알았는데도 아찔하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쿵쿵 소리 후 지진…담벼락도 와르르

현실적인 재난체험 시설을 갖춘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가정집 방으로 꾸민 지진 체험 시설. 김윤호 기자

현실적인 재난체험 시설을 갖춘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가정집 방으로 꾸민 지진 체험 시설. 김윤호 기자

비슷한 시각 가정집 방으로 꾸민 지진 체험시설. "지진 체험을 시작한다"는 안내와 함께 갑자기 30여㎡ 크기의 방안에 있던 식탁이 마구 흔들렸다.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요란하게 움직이더니 가정집 방 전체가 좌우로 흔들렸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고 속이 울렁거릴 만큼의 지진 진동이 몸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진 규모 6.0의 진동을 느낀 체험객들은 몸을 잔뜩 웅크린 뒤 문을 열고 밖으로 탈출했다. 하지만 이번엔 지진으로 골목 벽이 '우르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졌다. 허재혁 교관은 "지진 체험은 규모 3~7까지 느껴볼 수 있다. 지진을 미리 경험하면, 실제 상황 발생 시 식탁 아래에서 들어가거나 낙하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 것 같은 생존 기술을 익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180도 차량 전복…벤츠 승용차가 뒤집어져 

현실적인 재난체험 시설을 갖춘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차량 전복 사고 체험 시설. 김윤호 기자

현실적인 재난체험 시설을 갖춘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차량 전복 사고 체험 시설. 김윤호 기자

벤츠 승용차가 확 뒤집어지는 아찔한 교통사고도 체험할 수 있다. 방문객들은 벤츠 차량에 탑승한 상태로 가상의 사고를 경험한다. 안전 교관은 차량 유리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3D 영상으로 사고 상황을 체험객들에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외부에서 이 영상에 맞춰 차량을 움직인다. 180도 각도로 차량이 뒤집어지기도 한다. 한 체험객은 "차량이 막 요동을 치고, 눈으로 실제 사고가 발생하는 상황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며 “차량이 전복되기 직전엔 옆에 탄 아이의 몸을 붙잡아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소화기를 들고 불을 꺼보는 소화기 체험장도 있다. 집이나 사무실에 늘 보이는 소화기지만, 실제 사용 기회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착안한 체험시설이다. 심폐 소생술을 경험해보는 소생술 체험, 각종 재난 관련 영상을 관람하는 4D 영상 체험관도 갖춰져 있다. 집안에 불이 나 연기로 가득 찬 상황을 만든 뒤 이를 탈출하는 생존 체험, 아파트 같은 고층 건물에 설치된 피난 기구인 '완강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가는 완강기 탈출 체험도 경험할 수 있다.

대구 도심을 오가는 실제 크기의 모노레일 열차도 체험객들을 맞는다. 공중으로 5m 높이에 설치된 모노레일에서 체험객들은 화재 등에 따른 비상 탈출법을 배운다. 공중 레일에서 지상으로 펼친 일종의 비닐 미끄럼틀인 '스파이럴 슈트'를 타볼 수 있다. 남재구 소방장은 "코로나19 확산세에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지만, 재난을 체험하기 위해 시설을 찾는 발길이 멈추지 않고 있다"고 했다.

'다크 투어리즘', 재난체험까지…올해만 6만명 찾아 

현실적인 재난체험 시설을 갖춘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사진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현실적인 재난체험 시설을 갖춘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사진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는 사업비 250억 원을 들여 2008년 12월 5843㎡ 크기로 개관했다. 2013년 11월에는 592㎡ 크기의 두 번째 체험관(사업비 53억원)을 추가로 개관해 현재 1관과 2관으로 나눠 운영 중이다.

이곳은 전국에서 체험객이 몰려든다. 코로나19 확산세에도 올 1월부터 11월까지 6만2356명이 시설을 찾았다. 코로나 확산세가 심각했던 지난해에도 1만4458명이 생존·대처법 등을 익히고 돌아갔다. 코로나 확산 전인 2019년과 2018년엔 각각 16만2760명과 17만6070명이 방문했다. 2008년 12월 개관 후부터 지난달까지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찾은 전체 체험객은 외국인을 포함해 178만1730명에 이른다.

이광성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관장은 "서울과 부산 등에 소방당국에서 운영하는 재난 체험시설이 있지만,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는 다크투어리즘 공간에다 지하철역, 전동차, 모노레일, 지진 등 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하다"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난체험 시설이 되도록 다양한 생존·대처법 등을 발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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