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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중국 거래 시 주의 사항 1호는 ‘루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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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중국 시장은 매력적이다. 세계 최대 인구를 가졌고 소비 수준은 계속 높아지고 있으니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조심할 게 있다. 불매운동이라는 함정이 그것이다. 중국에서 불매운동을 당하는 데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크게 네 가지로 첫 번째는 국가 간 관계다. 중국과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생기는 일을 가리킨다. 과거 일본 기업이 많이 당했다. 중국 내 반일(反日) 감정이 고조될 때마다 홍역을 치렀다. 우리도 뼈저린 경험이 있다. 롯데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 시장에서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다.

찢어진 눈이 중국인 외모 비하로 굳어진 건 영국 작가 색스 로머가 1912년부터 쓰기 시작한 작품 ‘Dr. Fu Manchu(傅滿洲)’의 주인공 푸만추가 가늘게 찢어진 눈을 가진 데서 시작됐다는 설명이 유력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찢어진 눈이 중국인 외모 비하로 굳어진 건 영국 작가 색스 로머가 1912년부터 쓰기 시작한 작품 ‘Dr. Fu Manchu(傅滿洲)’의 주인공 푸만추가 가늘게 찢어진 눈을 가진 데서 시작됐다는 설명이 유력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두 번째는 중국이 금과옥조처럼 외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했다며 당하는 경우다.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베르사체는 2019년 홍콩과 마카오를 국가로 표시한 티셔츠를 제작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또 미국 패션 브랜드 코치는 웹사이트 등에 홍콩과 대만을 중국과 별개의 나라로 표기했다가 중국에서 불매 리스트에 올랐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디올은 대만이 표시되지 않은 중국 지도를 이용했다가 항의를 받기도 했다. “중국은 조금도 작아질 수 없다(中國一點都不能少)”는 이유에서다.
세 번째는 인권 등 가치관 관련 문제에서 중국과 대립적인 입장을 취했다가 공격을 받는 경우다. ‘홍콩 시위 사태’와 ‘신장 인권 문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 2019년 홍콩 시위가 한창일 때 미 NBA 휴스턴 로키츠의 단장 대릴 모레이가 트위터에 “자유를 위한 싸움, 홍콩을 지지한다”는 글을 올렸다가 중국 기업의 스폰서 중단, 중국 TV의 경기 중계 거부, 중국 농구협회와의 교류 중지 등 잇단 공격을 받았다. 의류 및 스포츠 브랜드인 H&M과 나이키 등은 지난해 신장에서 생산한 면화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중국의 격렬한 불매운동에 직면해 매출이 급감했다.

이탈리아의 돌체앤가바나는 찢어진 눈을 가진 모델이 젓가락으로 피자를 집는 장면을 연출했다가 중국에서 중화를 욕보였다는 거센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이탈리아의 돌체앤가바나는 찢어진 눈을 가진 모델이 젓가락으로 피자를 집는 장면을 연출했다가 중국에서 중화를 욕보였다는 거센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네 번째는 중국인 외모 비하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다. 최근 가장 많이 이슈가 되고 있다. 어떤 게 중국인 외모 비하에 해당하나. 중국에서 ‘미미옌(眯眯眼)’이라고 말하는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이 대표적인 케이스로 거론된다. 찢어진 눈이 중국인 외모 비하로 굳어진 건 영국 작가 색스로머가 1912년부터 쓰기 시작한 작품 『Dr. Fu Manchu(傅滿洲)』의 주인공 푸만추가 가늘게 찢어진 눈을 가진 데서 시작됐다는 설명이 유력하다. 영국 귀족과 중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푸만추는 악당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또 광대뼈가 튀어나오거나 주근깨 많은 얼굴도 중국인 비하로 여겨진다. 이탈리아의 돌체앤가바나와 프랑스의 디올은 찢어진 눈의 여성 모델을 기용했다가, 스페인의 ZARA는 주근깨 많은 중국 모델을 썼다가 중국에서 비난의 십자포화에 서야 했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매운동의 배경을 설명하는 한 단어가 있다. 바로 ‘루화(辱華)’다. ‘중화를 욕보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 중국의 영토를 충분하게 표시하지 않는 것, 중국의 가치관과 대립적인 입장에 서는 것, 중국인의 신체적 특징을 조롱하는 것 등이 모두 중국과 중국인, 중화를 모욕하는 것에 해당한다는 논리 구조를 갖는다. 물론 외국기업은 의도적으로 중화를 욕보일 뜻이 없었다고 항변한다. 단순 실수를 주장한다.

중국 사진작가 천만의 작품. 찢어진 눈의 여성 모델이 디올 가방을 들고 있다. 천만은 서구인의 고정관념에 영합해 중국인의 외모를 비하했다는 거센 비난을 들었다. [중국 인민망 캡처]

중국 사진작가 천만의 작품. 찢어진 눈의 여성 모델이 디올 가방을 들고 있다. 천만은 서구인의 고정관념에 영합해 중국인의 외모를 비하했다는 거센 비난을 들었다. [중국 인민망 캡처]

그렇지만 중국은 ‘욕(辱)을 했느냐 안 했느냐’를 판단하는 건 ‘화(華)’에 해당하는 중국인이라고 말한다. 말하는 이가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해도 듣는 이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럼 이후 이런 사태는 대개 어떻게 정리되나. 보통의 경우 외국기업이 문제의 광고를 내리고 깊은 사과의 뜻을 표해 중국의 민심을 달래는 선에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한 방편이다. 불매운동의 정도와 기간에 따라 받게 되는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
한데 최근 중국에서 새로운 ‘루화’ 사태가 뜨고 있다. 과거 중국을 욕보이는 건 대부분 서방 기업으로 이들이 불매운동의 타깃이었는데 요즘은 중국 기업이나 중국 제품, 중국인 등이 ‘루화’의 새로운 표적이 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사진작가 천만(陳漫)은 디올 가방을 든 중국 여성의 사진을 찍은 일로 중국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아야 했다. 모델 여성의 찢어진 눈이 부각되며 이승인지 아니면 저승인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연출돼 중국인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고 동양인에 대한 서양인의 고정관념을 확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달 중국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슝스사오녠’은 주요 등장 인물이 찢어진 눈 등을 가졌다는 이유로 중국인 외모 비하 논란에 휩싸이며 흥행에 실패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지난달 중국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슝스사오녠’은 주요 등장 인물이 찢어진 눈 등을 가졌다는 이유로 중국인 외모 비하 논란에 휩싸이며 흥행에 실패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천만은 “외세에 빌붙어 아첨한다(崇洋媚外)”는 비난 여론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어 겨울철을 맞아 제작된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 ‘슝스사오녠(雄獅少年, 수사자 소년)’이 중국인 외모 비하 논란에 섰다. 주요 등장인물 중 찢어진 눈을 가졌거나 사팔뜨기, 미간이 넓은 눈을 가진 소년 등이 있었는데 중국인을 비하했다는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당초 상영 열흘 뒤면 15억 위안(약 3756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는 10분의 1인 1억 5000만 위안에 그치며 흥행에 실패했다. 이어 지난달 26일엔 더 놀라운 ‘루화’ 사태가 터졌다.
중국인의 대표적 간식 브랜드인 ‘싼즈쑹수(三只松鼠,세 마리 다람쥐)’가 찢어진 눈의 여성 모델을 등장시켰다는 이유로 ‘루화’ 파문에 휩싸인 것이다. 특히 문제의 여성 모델 차이냥냥(菜孃孃)이 “내 눈이 작아서 중국인이 될 수 없단 말인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건 일종의 병적인 행태”라고 반발하며 문제가 더욱 커졌다. 일부 중국 네티즌은 눈이 작은 자신의 사진을 인터넷 공간에 올리며 “국가에 매우 미안하다”는 글로 차이냥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건 이 광고가 2년 전 것이란 점이다.

중국의 대표 간식 브랜드 ‘싼즈쑹수’는 눈이 찢어진 모델 차이냥냥을 썼다가 중국인 외모를 비하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중국 웨이보 캡처]

중국의 대표 간식 브랜드 ‘싼즈쑹수’는 눈이 찢어진 모델 차이냥냥을 썼다가 중국인 외모를 비하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중국 웨이보 캡처]

이는 무얼 말하나. 최근 이런 광고가 올라와 문제가 된 게 아니라 중국의 일부 네티즌이 누가 중국을 욕보이고 있는가 하는 ‘루화’의 공격 대상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열심히 찾고 있다는 걸 설명한다. 이는 요즈음 중국 사회가 고발이 난무했던 문화대혁명 당시의 분위기와 비슷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학생이 스승을 고발하고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며 하극상(下剋上)의 절정을 이뤘던 문혁의 내음이 짙게 풍긴다는 점이다. 실제로 학생이 교사를 고발한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달 14일 알려진 쑹겅이(宋庚一) 사건이다.
상하이 진단(震旦)학원 교사 쑹겅이는 수업 시간에 난징(南京)대학살 문제와 관련해 세 가지 관점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진다. 1) 일본이 난징에서 반(反)인류 범죄를 저질렀다 2) 당시 중국이 피해자 조사를 철저하게 하지 못해 일본 우익세력이 사망자 수와 관련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3) 복수보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생각해야 한다 등이다. 한데 이를 한 학생이 중국 당국에 쑹겅이가 마치 난징대학살의 ‘30만 사망’을 부정한 것처럼 고발했다. 쑹은 바로 해직됐고 쑹의 입장을 옹호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후난(湖南)성 교사 리톈톈(李田田)은 임신 상태에서 정신병원으로 끌려가야 했다.

중국 후난성 교사 리톈톈은 난징대학살 강의와 관련해 학생에게 고발당한 상하이 진단학원 강사 쑹겅이를 변호하는 글을 올렸다가 임신 상태에서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는 변을 당해야 했다. [홍콩 명보 캡처]

중국 후난성 교사 리톈톈은 난징대학살 강의와 관련해 학생에게 고발당한 상하이 진단학원 강사 쑹겅이를 변호하는 글을 올렸다가 임신 상태에서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는 변을 당해야 했다. [홍콩 명보 캡처]

이런 모든 사태엔 도대체 뭐가 ‘루화’인가 하는 판단의 문제가 자리한다. 지난달 26일 마오쩌둥(毛澤東)의 128회 생일에 터진 ‘소시지계란볶음밥’ 사건도 마찬가지다. 중국 쓰촨(四川)일보는 웨이보 계정에 ‘소시지계란볶음밥’ 관련 사진과 글을 올렸다가 혼쭐이 났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미군의 폭격으로 숨진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이 볶음밥을 만들려다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쓰촨일보가마오의 생일에 마오안잉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볶음밥을 거론해 마오안잉을 욕보였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중국에선 ‘루화’라는 지뢰를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문제는 ‘루화’를 찾는 중국인의 신경이 갈수록 예민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이 예정된 20차 당 대회가 가까워질수록 이런 분위기는 계속 지속되며 더욱 날카로워지는 추세다. 중국 소비자를 상대해야 하는 기업이라면 또는 중국과 거래해야 하는 곳이라면 ‘루화’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루화’ 여부에 신경 쓴다는 게 자칫 중국 눈치 보기로 이어지며 행여 자기검열까지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 적잖이 저어된다.

중국 시장에서 불매운동 당하는 네 가지 경우 #중국과 관계 틀어지거나 ‘하나의 중국’ 위배 #가치관 대립과 중국인 외모 비하했다는 이유로 #중화를 욕보인다는 ‘루화’가 공통으로 작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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