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여성가족부, 폐지보다는 성평등 부처로 거듭나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여성가족부. [뉴시스]

여성가족부. [뉴시스]

윤미향·박원순 사건 소극 대응, 위기 자초

윤석열, 폐지 공약했으나 현실적 대안 아냐

여성가족부의 영문 이름은 ‘Ministry of Gender Equality & Family’다. ‘성평등가족부’가 대외적인 공식 명칭이란 이야기다. 다른 선진국들도 대부분 ‘성평등부’로 쓴다. 스웨덴은 2010년 고용부 산하 성평등 차관으로 통합했다. 그런데 우리만 유독 ‘여성부’란 표현을 고집한다.

성평등 업무를 다루는 정부의 공식 기구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98년 2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다. 2001년 1월 ‘여성부’로 발전했고, 한명숙이 초대 장관을 맡았다. 당시엔 성평등이 여권신장과 동의어로 여겨졌다. 여기에 여성운동에 힘썼던 고 이희호 여사의 상징성까지 더해져 ‘여성부’란 명칭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 20대 남성들은 오히려 ‘역차별’을 주장한다. 남성 기득권을 누린 것은 아버지 세대인데, 그때를 기준으로 생겨난 법과 제도가 ‘이대남’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할당제와 남성복무제 등이 대표적이다. 남녀가 이미 평등해졌으므로 여성을 우대하거나 남성에게만 의무를 부여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물론 30대 이후 유리천장은 아직 존재한다. 출산을 기점으로 여성의 육아 부담이 늘고,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사회 환경은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평등이 곧 여권신장이었던 20여 년 전과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적어도 20대가 경험하는 생활세계 안에서 과거와 같은 남녀 차별은 찾아보기 어렵다.

윤석열 후보가 지난 7일 SNS에 올린 메시지. [SNS 캡처]

윤석열 후보가 지난 7일 SNS에 올린 메시지. [SNS 캡처]

그러므로 정부의 역할이 여권신장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첨예한 젠더 갈등까지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여가부는 뭘 했나.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로 시작된 윤미향의 정의기억연대 사태에선 마치 여성단체를 위한 부처인 양 행동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때는 피해자를 보듬지 못하고 권력형 성범죄에 눈감는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그렇다 보니 정치권은 이대남 표심을 잡겠다며 여가부를 종종 먹잇감으로 삼는다. 윤석열 후보가 이준석 대표를 끌어안으며 내건 ‘여가부 폐지’ 공약이 대표적이다. 당초 양성평등가족부 개편을 약속했던 그가 ‘폐지’로 돌아선 것은 젠더 갈등의 올바른 해결 방안이 아니다. 윤 후보가 이 문제에 진심이라면, 없앨 게 아니라 ‘성평등’ 부처라는 제자리를 찾아주는 게 옳다.

마침 이재명 후보도 (성)평등가족부 개편을 고민 중이라니 두 사람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보면 어떨까. 누가 됐든 차기 정부에선 ‘여성’이란 부처 명칭이 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권은 달라진 시대 환경에 걸맞은 사회적 요구를 수렴해 대안을 내놔야 한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처럼 할당이 필요한 조직에는 특정 성별이 60% 이상 치우치지 않게 규정하는 평등한 방식이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