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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조코비치도 '백신 장벽' 못 넘었다…쫓겨나는 미접종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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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남자 테니스 세계 1위 노박 조코비치(35·세르비아)가 코로나19 백신을 안 맞았단 이유로 호주로부터 ‘문전박대’ 수모를 당했다. “백신 미접종자는 우리 국경을 넘을 수 없다”는 호주 정부의 서슬에 시즌 우승 상금 110억원(2021년 기준)의 스포츠 스타가 추방 위기에 몰리자 세계 각국의 ‘백신 접종 강제’ 정책이 주목 받고 있다.

'백신 반대론자' 조코비치, 입국 거부 결정 뒤집기 힘들듯 

7일 노박 조코비치가 억류된 호주 멜버른 호텔 앞에서 그를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 모습. [AP=연합뉴스]

7일 노박 조코비치가 억류된 호주 멜버른 호텔 앞에서 그를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 모습. [AP=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AP 등 외신에 따르면 조코비치 법무팀은 호주 출입국 관리소의 입국 비자 취소 결정에 대해 호주 연방 법원에 긴급 금지 명령을 신청했다. 오는 10일 판결이 나올 때까지 조코비치는 멜버른 난민 수용시설로 쓰이는 호텔에서 억류된다. 조코비치는 오는 17일 개막하는 호주오픈 출전을 위해 지난 5일 밤 멜버른 공항에 도착했지만 입국하지 못했다. 호주 정부의 엄격한 백신 미접종자 입국 금지 정책에 발목이 잡혔다.

소문난 백신 접종 반대론자인 조코비치는 2020년 6월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회복됐다. 8일 CNN에 따르면 조코비치는 지난달 16일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나타냈다. 발열 등 증상은 없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백신 면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오픈 조직위원회는 앞서 대회 공지를 하면서 ‘백신 2회 접종’을 참가 조건으로 적시했지만, 예외를 뒀다. 백신 접종의 심각한 부작용, 6개월 이내 코로나19 감염 등 의료적 사유가 있다면 조직위의 별도 승인을 거쳐 참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조코비치의 ‘백신 면제권’은 출입국 관리소의 비자 심사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조코비치 사례로 인해 백신 접종 면제권을 가지고 호주오픈에 참가한 다른 관계자들도 전수 조사되고 있다. 7일 영국 가디언은 "호주국경수비대(ABF)가 호주오픈 때문에 입국한 사람 중 조코비치처럼 입국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정보를 확보했고 이를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이미 입국한 이들도 출국조치 당할 수 있다. 메리 크로크 시드니대 법학과 교수는 호주 NCA 뉴스와이어와 인터뷰에서 "조코비치의 (백신 면제권)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했다.

프랑스 방역패스 강화…이탈리아 50세 이상 접종 의무화

지난달 30일 프랑스 낭트 코로나19 백신 센터에서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0일 프랑스 낭트 코로나19 백신 센터에서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코비치의 불운은 호주 정부가 지난달 15일부터 입국 요건을 강화한 데서 비롯됐다. 최근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호주는 현재 12세 미만 어린이와 백신 면제권을 받은 사람 외에 백신 미접종자의 입국을 불허하고 있다. 호주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오미크론 쓰나미에 맞서 백신 접종을 최우선 방책으로 내세우고 부스터샷(추가접종)을 독려하는 추세다.

백신 접종을 유도하기 위해 방역패스 적용도 강화하고 있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식당과 문화·체육시설, 교통수단 등 공공시설 이용 때 방역패스를 의무화한다. 특히 그전까진 백신 접종 증명자, 코로나19 감염 회복자, 코로나19 검사 음성 확인자 등을 전부 포괄하던 데서 음성 확인자를 제외하는 추세다. 즉 백신을 맞았거나 감염에서 회복됐다 해도 일정 기간만 방역패스 대상자란 얘기다. 이탈리아는 시행됐고, 프랑스는 이달 중 도입될 예정이다.

일부 나라는 백신 의무화 정책을 내놨다. 의료 종사자·군인·공무원·교사 등 특정 직업군에만 적용되던 백신 의무화가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난 5일 50세 이상 전 국민에게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다. 그리스는 오는 16일부터 60세 이상, 오스트리아는 다음달 1일부터는 14세 이상 대상으로 백신을 반드시 맞도록 했다. 독일도 2~3월 사이에 백신 의무 접종을 하려고 한다. AFP에 따르면 에콰도르는 지난달 23일 세계 최초로 5세 이상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다.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바티칸 등은 이미 지난해에 접종을 의무화했다.

백신 미접종에 대한 제재도 강화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백신 접종 명령을 2번 거절하면 3600유로(약 500만원), 백신 접종 명령 거부 후 다른 사람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면 7200유로(약 1000만원) 벌금이 부과된다. 프랑스는 위조 백신패스를 소지하면 징역 5년, 벌금 7만5000유로(약 1억원)가 부과될 예정이다. "백신 미접종자들을 화나게 하고 싶다"는 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신념이다.

'백신 의무화' 꺼내는 이유, 빠른 대응처럼 보여  

백신 병을 들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백신 병을 들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그럼에도 백신 강제를 인권 침해로 보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 이들 비판처럼 백신 접종을 과학·의료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5일 TV 연설에서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 집 밖에서 돌아다니면 경찰이 체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그는 지난해에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은 감옥에 보내거나 동물용 구충제를 주사하겠다는 등 막말을 쏟아내며 ‘철권통치’에 백신을 결부시켰다.

옥스포드 백신 그룹 연구원인 사만다 밴더슬롯은 BBC와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은 '백신 의무 접종'이라는 아이디어를 좋아한다. 코로나19 확산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과학적 연구결과가 엄연한데도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대하는 식으로 정치 세력을 불리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연방 공무원 백신 접종 의무화 방안을 공공연히 조롱하면서 ‘반 바이든 진영’을 끌어모았다. 정작 그는 지난달 부스터샷 접종 사실을 공개해 지지자들로부터 야유를 받기도 했다.

호주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신세의 조코비치는 오는 5월 열리는 메이저 대회 프랑스오픈 참가도 어려울 수 있다. 프랑스오픈 조직위원회가 아직 참가 선수에 대한 코로나19 정책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공식 홈페이지에는 "프랑스오픈 행사에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거가 필요하다"고 올라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조코비치를 비롯한 백신 반대론자 스타 선수들이 점점 멸시당하고 있다"고 짚었다. 조코비치 억류 사태를 지켜본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36·스페인)은 이렇게 말했다. "백신을 맞으라고 장려하거나 권고할 생각은 없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규칙이라는 것이 있다. 백신 접종 거부는 자유지만, 그에 따른 결과는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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