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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관 인사 법대로'가 알박기?…"대선 3일전 사장 꽂을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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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통령 선거가 불과 두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지만, 임기 3년이 보장된 공공기관 기관장 인선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임기 말 임명한 기관장은 차기 정부에서 대부분의 임기를 보낸다. 정부 정책 수행을 뒷받침하는 공공기관장이 차기 정부와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선 3일 전 만료 인사도 진행

정권교체기 기관장이 바뀌는 주요 공공기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권교체기 기관장이 바뀌는 주요 공공기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공기업인 한국공항공사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한국마사회는 사장 인선 절차를 진행하거나 진행할 예정이다. 모두 기관장의 권한이 큰 곳으로 평가받는다. ‘폭언 논란’으로 사장을 해임한 한국마사회를 빼고, 두 기관은 임기 만료에 따라 후임 인사를 찾고 있다. 손창완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지난달 13일 임기가 이미 끝났고, 문대림 JDC 사장은 오는 3월 6일 임기를 종료할 예정이다. 두 사람 모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출신으로 임명 당시 낙하산 논란이 있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운영법 시행령은 임기 만료 2개월 전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임기 만료 전까지 복수 후보를 추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절차에 따라 인선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공항공사는 최근 사장 공모 절차까지 진행해 후보 5명을 기재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추천했다.

문재인 정부가 기관장을 임명한다면, 두 기관장은 대부분의 임기를 차기 정부서 보내야 한다. 특히 JDC 사장 임기는 대선일(3월 9일) 3일 전인 오는 3월 6일이다. 절차대로라면 대선 직전 임명할 가능성도 있다.

공기업 80% 차기 정부서 임기 더 남아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 인사는 통상 정권 말에는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관례다. 해당 기관장이 차기 정부 국정 철학과 맞지 않는다면, 정책 수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서다. 예를 들어 탄소 중립과 탈원전 같은 에너지 정책은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같은 에너지 공기업의 협조 없이는 추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공기업 사장 대다수는 차기 정부에서 임기가 더 많아 남아 있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 자료를 집계한 결과 36개 공기업 중 29개(80.5%)가 다음 정부에서 임기를 절반 이상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임 사장을 찾고 있는 앞선 3개 기관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32개(88.8%)로 늘어난다.

공기업 사장 임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공기업 사장 임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대표적으로 발전 5사(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와 한국전력은 대선이 1년 남짓 남은 지난해 4월과 6월에 각각 후임 사장을 임명했다. 이들은 3년 임기 중 약 2년을 차기 정부서 보낸다. 특히 검사 출신인 김영문 한국동서발전 사장은 관세청장에 이어 직무 관련성이 적은 발전사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낙하산 인사 논란이 있었다.

공기업뿐 아니라 준정부기관 등 다른 공공기관으로 범위를 넓히면 임기 말 속칭 ‘알박기’ 인사 사례는 더 많다. 복지부는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에 강도태 전 보건복지부 차관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위원장에 민주당 비례대표 출신인 박은수 전 국회의원을 임명했다. 차기 대통령 취임까지 5개월 남짓 남아, 관례대로면 대행체제를 유지하다 새 정부가 후임을 정하는 게 보통이지만 임명을 강행했다. 문성유 전 사장이 지난해 10월 사임하면서 공석이 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과 오는 3월 3일 임기를 만료하는 한국농어촌공사 사장도 추가 인선을 진행할 계획이다.

“임기 말 인사는 보은성”

정부는 문재인 정권 초기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관련자가 처벌까지 받은 만큼 공공기관 인사를 법에 따라 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또 법상 보장한 공공기관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임기에 따라 기관장을 임명하고 이를 보장하는 게 맞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전문가는 임기 말 공공기관 인사는 공공기관 독립성보다는 보은성에 더 가깝다고 비판한다. 차기 정부서 제대로 된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결국 자리 나눠주기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제대로 된 전문 인사라면 정상적 직무 수행이 불확실한 임기 말 기관장 자리를 맡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원래는 대부분 공석으로 비워 두고 차기 정부로 임명을 미루는 게 그동안 관행이었다”면서 “정권이 6개월도 남지 않는 시점에 기관장을 임명하려는 것은 결국 ‘내 사람 자리 하나 더 챙겨주기’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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