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백성호의 현문우답

"군자 뽑나, 소인 뽑나" 주역대가 대산 옹 '세가지'만 보라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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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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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때마다 내게 연락이 온다. 연락 와도 나는 봐주지 않는다.”

올해 95세인 대산(大山) 김석진 옹은 ‘주역(周易)의 대가’로 통한다. 당대 주역의 일인자로 ‘이주역’이라 불리었던 야산(也山) 이달(李達, 1889~1958) 선생의 수제자다. 김 옹은 30년 넘게 주역을 가르쳐왔다. 전국을 돌면서 가르친 제자만 무려 1만 명이 넘는다.

김 옹은 “주역은 점치는 책이 아니다. 지혜를 얻고, 삶의 방법을 얻는 책이다”고 말한다. 주역은 ‘결정론적 운명론’을 말하지 않는다. 주역(周易)의 ‘역’은 ‘바꿀 역(易)’자다. 매 순간 끊임없이 변해서 돌아가는 세상과 우주를 담는다. 주역은 그 속에서 건강한 균형을 찾기 위한 삶의 값진 조언이다. 아무리 나쁜 운도 운용하기에 따라 변한다. 그뿐만 아니다. 주역에는 노력할 때 하늘이 도와주는 ‘자천우지(自天祐之)’가 있다.

공자는 대나무 조각에 글을 써서 가죽끈으로 엮어 놓은 『주역』을 무척 사랑했다. 오죽하면 죽간(竹簡)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읽었다고 한다. 김 옹은 “공자께서 그만큼 주역을 아끼고 많이 연구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주역의 대가 김성진 옹이 4일 서울 풍납동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주역의 대가 김성진 옹이 4일 서울 풍납동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 있는 자택에서 대산 선생을 만났다. 올해 우리나라는 대통령 선거와 코로나 사태 등 큰 변화의 도가니에 있다. 새해 벽두에 마주한 그에게 ‘2022년 임인년(壬寅年)의 주역적 전망’을 물었다.

올 한 해는 어떻게 보나.
“올해는 ‘천화동인(天火同人)’에서 ‘택화혁(澤火革)’으로 변하는 괘가 나왔다. 이건 점을 쳐서 나온 게 아니다.  임인년은 60년마다 돌아온다. 60간지에 의해 60년 전에 이미 정해져 있던 괘를 지금 말하는 거다. 다만 그걸 풀어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읽어내는 깊이가 달라진다. 임인년은 천화동인 괘다.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주역에 이미 나와 있는 괘다.”

주역의 괘에는 체(體)와 용(用)이 있다. 체가 몸뚱이라면 용은 팔다리다. 체가 찰흙이라면 용은 찰흙으로 만든 형상이다. 체가 바탕이라면 용은 변화에 해당한다. 김 옹은 올해의 체는 천화동인이고, 용은 택화혁이라고 했다.

뜻밖이다. 대장동 사건에서 ‘천화동인 화천대유’라는 말이 많이 회자됐다. 그런데 올해가 천화동인의 괘다. 천화동인, 무슨 뜻인가.
“하늘 천, 불 화다. 하늘 괘와 불 괘가 만난다. 여기서 핵심은 ‘동인(同人)’이다. 동인이 뭔가. ‘사람이 같이한다’는 걸 뜻한다. 그럼 무엇을 같이 하겠나.”
인터뷰 도중에 주역 관련 서적에서 '천화동인'을 찾아봤다. 60간지에 의해 60년 전에 이미 2022년 임인년은 '천화동인'의 괘로 정해져 있다고 했다. 강정현 기자

인터뷰 도중에 주역 관련 서적에서 '천화동인'을 찾아봤다. 60간지에 의해 60년 전에 이미 2022년 임인년은 '천화동인'의 괘로 정해져 있다고 했다. 강정현 기자

무엇을 같이 하는 건가.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선거에서 이합집산으로 동인하고, 모두 유유상종으로 동인한다. 또 코로나 정국에서도 동인한다. 코로나에 막혀서 같이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동인하게 된다. 유세장에서도 서로 만나게 된다.”

김 옹은 작년 1월에 코로나 사태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지극정성으로 임하라고 했다. 옛날식으로 말하면 신하와 백성이 한마음 한뜻으로 임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하반기에는 일터로 돌아가지만 광주리가 비어 있었다. 올해는 다르다. 코로나로 못 만났던 사람들이 만나게 된다. 동인을 한다.”

사람들끼리 만나고 모이는 게 동인인가.
“단순한 만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주역의 동인은 뜻이 더 깊다. 제대로 된 동인을 하려면 뒤에서 몰래 쑥덕쑥덕해선 안 된다. 바깥의 들로 나가서, 탁 트인 공간에서, 공개된 자리에서 함께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동인이다. 그런 동인을 하려면 강을 건너야 한다.”
어떤 강을 건너야 하나.
“동인(同人)은 통합(統合)이란 뜻이 숨어 있다. 앞이 강으로 막혀 있다. 그럼 건널 수가 없다. 만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강 건너 사람을 보고만 있으면 안 된다. 내가 건너가고, 저쪽에서 건너와야 한다. 그게 탁 트인 들에서 만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소소하고 자잘하게 만나는 게 아니라 큰 틀에서 만나야 한다. 그게 동인의 진정한 의미다.”
김석진 옹은 "강이 막혀 있으면 건너가야 한다. 강 건너 사람을 보고만 있으면 안 된다. 이쪽에서 건너가고, 저쪽에서 건너와서 만나야 한다. 그걸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자기들끼리 뒤에서 야합하면 큰 재앙이 따른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김석진 옹은 "강이 막혀 있으면 건너가야 한다. 강 건너 사람을 보고만 있으면 안 된다. 이쪽에서 건너가고, 저쪽에서 건너와서 만나야 한다. 그걸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자기들끼리 뒤에서 야합하면 큰 재앙이 따른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김 옹은 “진정한 동인에는 이섭대천(利涉大川)이 있다. 큰 내를 건너가야 이롭다는 뜻이다. 여기서 ‘섭(涉)’자에 주목해야 한다. 단순한 도강(渡江), 도해(渡海)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건널 섭자에는 섭외하다, 교섭한다는 뜻이 있다. 그냥 건너는 게 아니라 교섭해서 마음을 터놓고 만나야 한다. 그래야 동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임인년 괘의 몸통인 ‘천화동인’을 설명한 김 옹은 이어서 팔다리에 해당하는 ‘택화혁(澤火革)’ 괘를 풀어냈다. 동인에서 혁괘가 나온 것은 임의로 고른 게 아니라 주역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핵심은 ‘혁(革)’자다. 바꾸다, 개혁하다, 혁명하다는 뜻이다. 올해는 선거로 대통령이 바뀐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나. 택화혁 괘에는 그런 선택의 갈림길이 있다.”

어떤 갈림길인가.
“택화혁 괘에는 ‘군자(君子)는 표변(豹變)이요, 소인(小人)은 혁면(革面)이다’는 대목이 나온다. 군자는 표범처럼 바꾸는데, 소인은 겉모습만 바꾼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군자를 뽑을 건가, 소인을 뽑을 건가의 문제다.”
표범처럼 바꾼다는 게 무슨 뜻인가.
“표범이 털갈이를 할 때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 갈아버린다. 겨울이 오면 춥다. 그래서 표범은 털갈이를 한다. 자신의 묵은 털을 다 뽑아내는 거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런데 그걸 통해 스스로 진정한 변화를 이룬다. 그래서 진정한 군자는 표변(豹變)을 한다. 진실로 속마음까지 다 바꾸는 거다. 그게 군자다.”
그럼 소인은 어떤 사람인가.
“속은 바꾸지 않고 화장만 바꾼다. 낯빛만 고친다. 그래 놓고서 다 바꾸었다고 말한다. 딴마음을 먹기 쉽다. 그게 혁면(革面)이다. 대통령이 되려고 겉모습만 잘하는 척, 남한테 잘 보이려고만 한다. 혁(革)괘의 진정한 바꿈은 그런 바꿈이 아니다. 때마침 올해 대선이 있으니 우리가 그런 국운을 맞고 있다. 그러니 국민이 선택을 잘해야 한다.”
 김석진 옹은 "표변과 혁면 중에 주역이 요구하는 건 표변이 아니겠나. 하늘이 요구하는 건 표변이 아니겠나. 혁괘는 진정한 바꿈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김석진 옹은 "표변과 혁면 중에 주역이 요구하는 건 표변이 아니겠나. 하늘이 요구하는 건 표변이 아니겠나. 혁괘는 진정한 바꿈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김 옹은 “이게 간단한 말이지만 여기에 이치가 다 들어 있다”고 했다. “대통령 선거를 하는데 누구를 뽑을 건가. 조금이라도 군자에 가까운 사람을 뽑아야 한다. 거짓말하는 사람, 얼굴만 바꾸는 사람, 속이는 사람, 좋게만 보이려 하는 사람, 바꾼다고 해놓고 안 바꾸는 사람. 그런 혁면(革面)만 하는 대통령이 나오느냐, 아니면 표변(豹變)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나오느냐. 우리가 그런 기로에 서 있다.”

혁면과 표변, 누가 어느 쪽인지 어떻게 구분하나.
“공개적인 사람, 진정성 있는 사람, 본인이 모범을 보이는 사람. 이 정도 덕목은 있어야 국민이 선택할 때, 저 사람이 군자다 소인이다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지 않겠나. 좋은 사람 뽑아야지, 그렇지 않은 사람 뽑으면 되겠나.”

이어서 김 옹은 표변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강조했다. “주역은 휘겸(撝謙)과 노겸(勞謙)을 강조한다. 휘겸은 엄지손가락 휘자에 겸손할 겸자다. 엄지손가락은 최고다. 나머지 네 손가락을 어루만지고 다스릴 수 있다. 그런데 네 손가락으로 엄지를 감싸보라. 그럼 엄지가 네 손가락 밑으로 들어간다. 표변의 지도자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하늘로 삼아야 한다. 그게 휘겸의 지도자다.”

노겸의 지도자는 뭔가.
“수고로워도 겸손한 거다. 자기가 공을 세웠어도 국민에게 돌리는 겸손함이다. 휘겸의 정치와 노겸의 정치. 이 두 가지를 갖추면 된다.”
김석진 옹은 "지도자는 표범이 털을 바꾸듯이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진정성 있게 바꾸어야 한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지도자의 덕목이 없다"고 강조했다. 강정현 기자

김석진 옹은 "지도자는 표범이 털을 바꾸듯이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진정성 있게 바꾸어야 한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지도자의 덕목이 없다"고 강조했다. 강정현 기자

마지막으로 김 옹은 차기 대통령이 해야 할 최우선 과제를 꼽았다. “유가의 정치철학을 담은 홍범(洪範)에는 여덟 가지 정치가 등장한다. 그중에서 맨 첫 번째가 일왈식(一曰食)이다. 식(食)이 뭔가. 민생이고 경제다. 무엇보다 사람이 먹고살도록 해야 정치를 잘하는 거다. 다시 말해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 여기에서 주역이 경고하는 바도 있다. 재물을 분명히 다스리고, 말을 거짓 없이 바르게 하고, 백성(국민)이 재물에 대한 비행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야만 정의롭게 된다고 했다. 차기 지도자는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미래를 준비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혁괘의 시대 정신이다. 대통령이 됐는데 때가 바뀌는 걸 모르고 시대 정신이 없으면 곤란하지 않나.”

◇대산(大山) 김석진=1927년생이다. 어릴 적 사서삼경을 뗐다. 19세 때 전북 완주의 대둔산으로 야산 이달 선생을 찾아갔다. 주역을 통달한 야산을 당시 사람들은 “이주역”이라 불렀다. 스승 야산에게서 주역을 배운 대산은 서울ㆍ인천ㆍ대전ㆍ청주ㆍ진천ㆍ춘천ㆍ제주 등 전국을 돌며 20년 가까이 주역 강의를 했다. 그 와중에 단 한 차례 결강도 없었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대면 강의를 쉬는 대신, 한국홍역학연합회(회장 이찬구)에서 ‘대산 주역 강의’를 유투브에 매주 올리고 있다.

※‘백성호의 현문우답(賢問愚答)’은 칼럼과 인터뷰, 여러 종교 기사를 아우르며 2007년부터 연재 중인 코너명입니다. 사람은 물음을 통해 진리를 찾아갑니다. 그러니 세상에 어리석은 물음은 없다고 봅니다. 모든 물음은 현문(賢問)입니다. 거기서 길어올린 모든 답도 정답이라 못박아 버리면 우리의 물음은 멈추고 맙니다. 우답(愚答)이라서 우답이 아니라 물음을 멈추지 않기 위한 우답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현문우답입니다. 인터뷰에서 묻는 이와 답하는 이를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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