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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명 vs +9만명…취업시장 ‘문송’ 갈수록 심해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수도권 4년제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3년째 입사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B씨(30). 수십 차례 입사시험에서 낙방한 그는 최근 정보기술(IT) 개발자 등 이공계 전공자를 우선적으로 채용하는 취업 공고를 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다. 그는 “국비 지원 교육이나 취업 연계 프로그램에는 IT·프로그래밍 등 이공계 직무가 많아 문과 직무 경력을 쌓을 기회도 적다”고 하소연했다.

전공계열별 취업 난이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공계열별 취업 난이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과계열 전공자의 취업 절벽이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다. 4일 통계청의 ‘전공계열별 경제활동인구’ 자료에 따르면 12개 주요 전공 가운데 지난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2019년 상반기 대비 취업자 수가 줄어든 전공은  ▶인문학 ▶사회과학·언론정보학 ▶경영·행정·법학 등 3개였다. 대표적인 문과계열로 분류되는 전공이다. 인문학 전공 취업자는 지난해 1분기 2년 새 2.4%(2만7700명) 줄었고, 사회과학·언론·정보학은 1.5%(8600명), 경영·행정·법학은 0.1%(1600명) 각각 감소했다. 반면에 ▶교육 ▶예술 ▶자연과학·수학·통계학 ▶정보통신기술 ▶공학·제조·건설 ▶농림어업·수의학 ▶보건 ▶복지 ▶서비스 등 나머지 9개 전공은 모두 취업자 수가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경제활동 확산으로 IT 인력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면서 정보통신기술 전공 취업자가 2년 새 24%(9만800명)나 늘었다. 고령화 등에 따른 복지 확대로 복지 전공 취업자도 19.1%(8만6200명) 증가했다. 공학·제조·건설 전공 취업자는 0.4%(1만3200명) 늘어 상대적으로 증가 폭이 작았지만, 고용률은 81.9%로 12개 전공 가운데 가장 높았다.

정연우 인크루트 홍보팀장은 “디지털 역량이 필수 스펙으로 자리 잡다 보니 문과 전공자는 IT 자격증이나 코딩을 가르치는 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문과-이공계 간 고용 격차는 코로나19로 취업 한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열린 채용시장에선 이공계열 전공자에게 주로 자리가 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기업은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고, 비대면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IT·소프트웨어(SW) 인재 찾기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전공계열별 취업자 증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공계열별 취업자 증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기존 전통 산업에서도 IT 활용이 늘고, 플랫폼을 개발·운영할 인력이 많이 필요해진 점도 문과 전공자의 설 자리를 좁히고 있다. 문과 전공자의 보루로 여겨졌던 은행권 공채가 줄어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지난해 정기공채 규모는 1382명으로 2018년(2584명)과 2019년(2158명)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기술 분야 제조 대기업의 마케팅·영업 인력도 이공계 출신이 많아지는 추세다. 첨단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이해가 필수적인 데다, 이왕이면 웹 개발 등이 가능한 인재를 뽑으려고 해서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인사·마케팅 분야에서 데이터를 활용하고, 회계·재무 분야에선 SW 사용이 일반화하는 등 인문계 전공의 전유물이었던 분야에서도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공계 인력의 활용 폭이 예전보다 넓어지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네이버의 한 취업 정보 카페에 “문과 출신에 자격증도 따고 취업을 준비했는데 결국 경력과 학력 다 버리고 이공계 현장직으로 취업했다”는 내용의 게시글에는 ‘문송(‘문과라서 죄송’이라는 뜻)하면 희망이 없나요’ 등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학 교육에서 학생이 전공을 넘나들면서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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