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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현곤 칼럼

우리는 이재명·윤석열을 너무 모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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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현곤 기자 중앙일보 편집인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역대 직선제 대통령은 친숙한 인물들이다. 국민이 오랫동안 됨됨이를 살피고, ‘이만하면 대통령으로 괜찮겠다’ 싶어 선택했다. 잘 안다고 뽑았는데도 대통령이 되는 순간 달라졌다. 바뀐 모습에 다들 깜짝 놀랐다. 노무현의 불안정, 이명박의 독선, 박근혜의 불통, 문재인의 아집은 상상 이상이었다. “권력을 잡으면 뇌가 바뀌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

예전 대통령에 비하면 우리는 이재명·윤석열 대선후보를 너무 모른다.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바뀔지 가늠이 안 된다. 놀랄 일만 남은 셈이다. 두 후보가 널리 알려진 게 몇 년이 채 안 됐다. 국민의 눈에 비친 이재명은 세금을 쓰면서 자기 돈처럼 생색내고, 튀어보려 애쓰는 출세욕 강한 지자체장이었다. 윤석열은 예리한 칼을 휘두르며, 피의자를 감옥에 넣는 재주가 비상한 특수통 검사였다. 이미지만 강했지, 실체는 잘 몰랐다.

잘 알고 뽑은 대통령도 달라지는데
이·윤 권력 쥐면 어떨지 가늠 안 돼
의혹·잡음 쏟아지자 국민은 난감
도박하는 심정으로 투표해야 하나

그러다 대통령 후보가 되고,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일이 쏟아졌다. 겁이 덜컥 난다. 엄청난 권력을 지닌 대통령을 이들에게 맡겨도 되나. 의구심이 비호감으로 자랐다. 유권자의 56%는 ‘대선후보 교체가 필요하다’고 답했다(한길리서치 12.25~27 조사). 양측은 제 발등 찍는 줄도 모르고, 서로의 약점을 캐며 비호감을 부추겼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나섰다. “네거티브 전쟁을 그만하고, 민생과 경제의 앞날에 몰두해야 한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적당히 덮으면 되는 걸까. 모르고 넘어가는 것과 알고도 용인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다른 선택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국민은 난감하다. 이재명은 대장동 비리와 정말 관계가 없나. 직접 설계하고, 서명했는데 책임이 없는 걸까. 측근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을 “측근이 아니다”고 했다. 아들 도박에 선을 긋는다며 “아들은 남”이라는 해괴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가천대 석사논문에 대해 “표절을 인정한다. 내 인생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니 제발 취소해 달라고 학교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표절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다. 외려 필요 없다고 큰소리친다. 천연덕스럽게 둘러대는 그를 믿어도 되나.

윤석열은 처와 처가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김종인은 “대통령을 뽑는 거지 대통령 부인을 뽑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옹색한 논리다. 굳이 수신제가(修身齊家)를 꺼내지 않더라도 과거 정권에서 가족 등 주변 때문에 국정이 엉망이 되고, 대통령의 끝이 불행했다. 김건희 허위 경력 논란에 대해선 ‘뭐가 문제냐’는 오만한 정서가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너무 늦게 사과했다.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움직이면 감동이 적다. 사과라기보다는 ‘남편 잘 봐 달라’는 넋두리로 들렸다.

두 후보의 국정철학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재명은 포용국가, 윤석열은 공정경제를 내걸었지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연금개혁, 노동개혁, 규제 철폐 등에 대해선 침묵한다. 노동조합 만나면 친노동, 기업인 만나면 친기업을 외친다. 납세자에겐 ‘세금 깎아주겠다’, 취약계층에겐 ‘재정지원 늘리겠다’고 한다. 비전은 없고, 얄팍한 셈법에 따라 표 구걸에 매달리는 것이다.

이재명은 문재인 정부와 거리를 두며 ‘아니면 말고’ 식으로 현란하게 정책을 바꾸고 있다. 2년 전 “공시가격 현실화”를 주장했던 그가 이번에는 “전면 재검토”를 제안했다. 1년 전 “원전은 시한폭탄”이라고 했다가 최근 “탈원전 대신 감원전”을 내세웠다. 도대체 어디까지 진심이고, 어디부터 국면 모면용 말장난인지 분간이 안 된다.

윤석열은 국정의 큰 그림이 없다. “같잖다”“미쳤다” 같은 거친 말과 “정권 교체를 하겠다”는 구호만 난무한다. 선거캠프는 인산인해라는데, 싸움박질만 계속되고 뭐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의 실언 릴레이를 보면 실수라기보다는 소양 부족으로 보인다. 토론을 기피하는 것도 의심을 증폭시킨다. 자신이 없으면 피하게 된다. 그게 쌓이면 불통이 된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박근혜·문재인 정부 10년 동안 질리도록 지켜봤다.

새해에는 어떤 나라가 될까. 국민은 불안하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대장동 등장인물 같은 저질 패거리가 여기저기 설치며 국정농단을 하는 건 아닐까. 국민 입막음용으로 돈을 마구 뿌리며 중남미 포퓰리즘 국가의 전철을 밟는 건 아닐까.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 냉혹한 심복을 앞세워 검찰 공화국을 만드는 건 아닐까. 선거캠프에 모여든 ‘파리떼’에 논공행상하며 5년 내내 자기들끼리 잘 먹고 잘사는 건 아닐까. 제왕적 대통령 밑에서 살고 있는 우리로선 상상만 해도 몸서리처지는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두 후보는 대통령 후보다운, 나라의 지도자다운 품격을 보여줬으면 한다. 정직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의혹에 대해 진솔하게 밝히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질 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어떤 일은 하겠다, 어떤 일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뭐가 뭔지 모른 채 마치 도박하는 심정으로 투표장에 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