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택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현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조선 제23대 왕 순조(재위 1800~1834)가 어느 날 밤 달을 구경하다가 선전관(경호원)에게 말한다. “냉면을 시켜라.” 조선 말기 문신인 이유원이 쓴 『임하필기』에 담긴 내용이다. 앞서 조선 후기 학자인 황윤석(1729~1791)이 쓴 『이재난고』에는 “과거 시험을 본 다음 날 점심엔 평양냉면을 시켜먹었다”는 내용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택배(배달)가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국내 택배산업이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다. 한진택배가 92년 ‘파발마’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본격적으로 택배사업을 선언했다. 93년 대한통운, 94년 현대로지엠, 99년 CJ CLS가 잇달아 택배시장에 진입했다. 택배업체는 빠르게 늘어 2005년 62개까지 증가했다. 이미 포화였고, 과당 경쟁이 벌어졌다. 경쟁에서 밀린 업체는 사라지거나 흡수됐고 현재 21개가 남았다.

눈에 띄는 것은 택배 운임의 변화다. 90년대 초 택배 운임은 평균 6500원이었다. 짜장면이 1000원, 지하철요금이 300원이던 시절이다. 과당 경쟁은 평균 운임을 2221원(지난해 말 기준)까지 낮췄다. 짜장면값이 5배 뛰는 사이 택배 운임은 되레 66% 깎였다.

택배 운임 하락은 배송 수수료 하락으로 이어진다. 배송한 물량만큼 수수료를 받는 택배 기사는 결국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해야 한다. 여기에 속도 경쟁까지 붙었다. 당일 배송·새벽 배송·빠른 배송…. 택배기사는 ‘많은 물량을 더 빠르게’ 배송하기 위해 식사를 거르고 휴식하지 못한다. 교통법규를 위반하게 되고 과로사까지 발생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주요 택배업체 기사 10명 중 7.5명은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근무(성수기 기준)한다.

새해에도 코로나19는 여전히 위협적이다. 비대면 시대에 택배는 방역의 1등 공신이다. 1인당(경제활동인구) 연간 택배 이용 횟수는 지난 1년 새 22% 증가한 122건이다. 사실상 공공재 영역이다.

지난달 28일부터 전국택배노동조합 CJ대한통운 본부가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1년 새 6번째 파업이다. 이 때문에 하루 평균 50만여 개 택배 배송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파업의 근본 원인을 들여다보면 결국 ‘택배사→대리점→택배기사’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정부가 내세우는 K방역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구경만 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