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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언론사찰에 "공범이면 가능"…법조계 "위헌적 검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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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언론 사찰’ 논란의 핵심은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아닌 민간인을 뒷조사했다는 것이다. 특히 고위공직자 범죄를 수사하긴커녕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고위공직자 비리 의혹을 보도한 기자의 취재원을 캐려는 행위의 반(反)헌법성·불법성이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내음성통화 내역 조회 자료를 보이며 발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내음성통화 내역 조회 자료를 보이며 발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공수처는 이성윤 고검장의 공소장 내용과 관용차 에스코트 폐쇄회로(CC)TV 영상을 각각 보도한 중앙일보와 TV조선 기자들을 상대로 착·발신 통신내역을 확인한 뒤 해당 기자와 통화한 친지 등 일반인은 물론 업무 목적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참여한 다수 동료 기자까지 무차별적으로 통신자료(가입자 신상정보)를 조회했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을 성명불상 검찰 공무원의 공무상비밀누설 공범으로 보고 법원으로부터 통신영장까지 발부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에 따르면, 검사가 수사 목적의 정보 수집을 위해 통신자료제공을 요청할 수 있는 통신자료는 이용자의 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전화번호·아이디(ID)·가입일·해지일 등이다. 모두 개인의 중요한 신상정보 중 일부다. 수사기관이 일정 기간 특정인의 착·발신 통신내역(상대 전화번호와 통화시간 등)과 발신 기지국 위치정보를 확인하려면 통신비밀보호법상 관할 법원의 통신사실 확인자료 요청허가(통신영장)를 받아야 한다.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공수처 등 수사기관에선 범죄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으면 제공받은 통신자료는 폐기한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을 믿더라도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는 수사 관행이 옳다고 보긴 어렵다. 그간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소수의견이 나오거나, 대법원에서 수사기관 권한 남용에 따른 이용자의 개인정보 관련 기본권 침해 가능성을 제기한 건 그래서다.

더 큰 문제는 전·현직 기자 최소 4명(중앙일보 1명, TV조선 2명,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 대한 통신영장을 발부받아 이들의 통신내역을 들여다봤다는 의혹이다. 중앙일보 기자는 이성윤 고검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을 취재하면서 수원지검이 지난 5월 이 고검장을 기소한 공소사실 가운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TV조선 기자들은 이 고검장이 지난 3월 김진욱 공수처장의 관용차량 에스코트를 받아 공수처로 향한 뒤 면담 조사 후 조서도 남기지 않았다는 이른바 ‘황제 조사’ 의혹을 보도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30일 서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공수처 해체 촉구' 손팻말을 들고 의원총회를 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30일 서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공수처 해체 촉구' 손팻말을 들고 의원총회를 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공소사실 보도는 공소장 유출 의혹으로 이어져 공수처가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성명불상의 검찰 공무원을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하지만 공무상비밀누설죄(형법 127조)는 공무원이 직무상 비밀을 누설할 때 처벌하는 신분범죄여서 누설 상대방을 처벌할 수 없다. 고위공직자 비리를 취재·보도한 기자를 상대로 제보자를 캐기 위해 통신 상대방의 신원을 무차별 조회한 데 대해 헌법 21조(언론자유)가 금지한 ‘언론 검열’일 뿐 아니라 헌법 17조(사생활)·18조(통신비밀)를 침해한 ‘불법 사찰’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TV조선 기자들의 경우 공수처가 정식 입건한 사건과 연관성이 확인된 게 없다. ‘이성윤 황제 조사’ 의혹 관련 보도 이후 공수처가 첩보에 따른 내사를 벌였다는 것만 드러나 있다. 그러나 공수처는 두 건의 보도에 대한 취재원을 파겠다며 해당 기자와 회사 동료 및 다른 언론사 기자들의 신원정보까지 무차별 조회했다. 수사는 물론 취재와도 무관한 기자의 어머니와 배우자·동생·친구 등 일반인의 통신자료도 함께 조회했다. 한 법조인은 “두 사건 모두 현직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고위공직자 관련 특혜·비리를 보도한 기자들에 대한 명백한 보복·표적 수사로 보여 불법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공수처의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공수처의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김진욱 공수처장은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현안질의에서 “검찰과 경찰도 (통신자료 제공요청을) 많이 하는데 왜 공수처만 갖고 사찰이라고 하느냐”며 “(제공 요청을 한 건) 신상도 아니고 통신내역도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일부 기자를 상대로 통신영장을 받아 통화내역과 카카오톡 대화방까지 사찰한 이유에 대해 “수사 중”이란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그는 야당의 추궁이 거듭되자 “기자도 (고위공직자범죄의) 공범이 될 수 있다. 참고인도 법원에서 필요성과 상당성이 있으면 (통신영장을) 발부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 현직 부장판사는 “수사 관행이 이런 식이면 누가 공직자나 기자와 연락을 주고받으려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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