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할머니와 손녀 치여 숨졌다…고령운전자 이번엔 편의점 돌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80대 남성이 운전하던 그랜저 승용차가 지난 22일 오후 1시 10분쯤 부산 수영구 수영팔도시장 입구에서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은 후 인근 야쿠르트 전동카트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인근을 지나던 60대 여성과 18개월 된 그의 손녀도 목숨을 잃었다. 사진 부산경찰청

80대 남성이 운전하던 그랜저 승용차가 지난 22일 오후 1시 10분쯤 부산 수영구 수영팔도시장 입구에서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은 후 인근 야쿠르트 전동카트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인근을 지나던 60대 여성과 18개월 된 그의 손녀도 목숨을 잃었다. 사진 부산경찰청

고령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인명피해를 내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오는 2025년 우리나라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로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고령 운전자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행자 치고 편의점 돌진도…잇단 고령 운전사고

28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도로에서 A씨(72)가 몰던 승용차는 주차장을 빠져 나오다 갑자기 건너편 편의점으로 돌진했다. 보행자 두 명이 건물 앞을 지나간 직후라 자칫하면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 사고로 30대 편의점 업주는 코뼈 골절 등의 부상을 입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차량 급발진으로 사고가 났다”고 진술했다.

고령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낸 경우는 최근에도 있었다. 지난 22일 오후 부산 한 재래시장 입구에선 80대 B씨가 운전하던 차량이 빠른 속도로 달리다 인근을 지나던 60대 여성과 18개월 된 그의 손녀를 충격했다. 이 사고로 피해자들은 모두 숨졌다. B씨는 “갑자기 차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며 급발진을 주장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지난 2019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내 행사장에서 도로교통공단 부스를 찾은 어르신들이 고령 운전자 인지능력 자가진단을 체험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9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내 행사장에서 도로교통공단 부스를 찾은 어르신들이 고령 운전자 인지능력 자가진단을 체험하고 있다. 중앙포토

적성검사·면허반납 시행…실효성은 ‘글쎄’ 

고령 운전자들의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 분석시스템(TAAS)의 65년 이상 운전자 교통사고 현황에 따르면 ▶2015년 2만3063건 ▶2016년 2만4429건 ▶2017년 2만6713건 ▶2018년 3만12건 ▶2019년 3만3239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에도 3만1072건으로 3만건을 넘었다.

고령 운전자는 신체 기능이나 인지·반응 속도가 떨어져 교통사고 위험이 크다는 게 통념이다. 이에 정부는 2019년부터 65세 이상은 5년마다 적성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75세 이상은 3년 마다 적성검사와 함께 교통안전교육을 받게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주행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령 운전자가 자발적으로 운전 면허증을 반납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일정 연령이 돼 면허를 반납하면 10만원 상당의 인센티브를 주는 식이다. 하지만 지자체별 참여율은 1~3%에 그칠 정도로 저조하다. 정경일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운전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건 어려운 데 반해 대가는 미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인센티브의 경우 점진적 상향을 통해 사회적 합의점을 찾거나 노인들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방안이 도움이 될 것”이라며 “면허 갱신 측면에선 적성검사 시기 간격을 줄이고 실질적 도로주행 능력을 주기적으로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운전능력 저하자, 2025년부턴 조건부 운전면허 발급” 

정부는 운전능력 저하자나 고위험군 운전자를 대상으로 오는 2025년부턴 ‘조건부 운전면허제’를 발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개인의 운전능력을 평가한 뒤 ▶야간·고속도로 운전금지 ▶최고속도 제한 ▶첨단 안전장치 부착 등의 조건을 달아 운전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찰청은 36억원 가량의 예산을 투입해 가상현실(VR) 기반의 운전 적합성 평가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경찰청 관계자는 “정상적 수준의 운전이 어렵지만 면허 취소엔 해당하지 않는 분들이 일정 범위 내에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객관적 운전능력 평가 도구를 연구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는 운전 능력이 떨어지거나 운전 결격 사유에 해당하면 무조건 면허를 취소하고 있지만 취소 대상자 중엔 조건부 면허 부과 대상이 있을 것”이라며 “대중교통 등 기반 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농촌 거주자 등의 이동권을 확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