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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선화장 후장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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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화장(火葬)시설은 1902년 서울 광희문 밖에 들어선 신당리 화장장이었다. 일본인 거류민단이 조선 한성부로부터 땅을 받아 일본식으로 건립했다. 매장이 보편적이던 조선 사람들에게 화장장은 기피시설이었다. 조선총독부는 화장장 주위에 높이 6척(약 180㎝) 이상의 담장을 설치하도록 하는 등의 규제를 마련했으나 연기와 악취 민원은 끊이지 않았다.

 1980년대 공해방지 설비를 갖춘 ‘무연 무취’ 신형 화장로 도입으로 굴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매장 중심의 유교 문화권에서 여전히 화장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달라진 계기는 수해였다. 1998년 여름 집중호우로 수도권에서만 일주일 만에 8000기가 넘는 묘가 유실됐다. 시신이 강화도까지 떠내려가거나, 조상의 유골을 수습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그해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이 "묘지로 뒤덮인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론대로 “나를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만들어 사회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화장문화에 시동을 걸었다. 각계 인사의 화장 서약이 이어졌다.

1998년 기사 아카이브

 1990년대 초반 10%대에 그쳤던 화장률은 꾸준히 올라 지난해 역대 최고치(89.9%)를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의 화장시설, 일본의 화장장』(2020) 보고서를 쓴 박태호 '장례와 화장문화연구포럼' 공동대표는 “화장이 양적으로는 팽창했지만, 행정편의주의에 가로막혀 문화도 의식도 사람도 사라졌다”면서 “코로나19로 문화 빈곤이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코로나 사망자는 곧바로 화장해야 장례 지원비를 지급하는 식으로 ‘선화장 후장례’를 사실상 강제했다. 사망 즉시 밀봉한 시신은 해질녘 화장장으로 향한다. 일반 화장이 모두 끝나야 순서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고인의 얼굴도 못 보고 작별한다.

 미국·영국 등에선 장례 과정에서 산 사람과의 거리두기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장갑과 가운 등 보호장구만 착용한다면 가족이 직접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해도 무방하다. 호흡기 감염병인 코로나가 시신을 통해 전파될 가능성은 희박해서다. 우리 정부는 최근에야 장례 지침을 개정 중이라고 밝혔다. 코로나 사망자와 유족도 존엄하게 이별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