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공수처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인재는 즐비했다. 전직 대검 중수부장 두 명에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장, 국민권익위 사무처장 역임자까지. 내로라하는 수사 경력자들이 초대 공수처장 후보 명단에 올랐다. 하지만 낙점을 받은 이는 3개월이 수사 경력의 전부인 현 공수처장이었다. 단지 검찰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작금의 공수처가 자초한 비난과 수모의 첫 단추는 그때 꿰어졌다. 공수처가 악의가 있어 무차별적 언론 사찰에 나섰다고 보진 않는다. 다만 실력이 매우 부족했을 뿐이다. 공소장 내용의 보도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를 범죄로 의심하고 손댄 정무적 판단 착오가 시발점이었을 게다. 그런데 증거는 나오지 않고, 다각도로 실체를 파고 들만한 수사력이나 노하우도 없다 보니 차츰 이성이 마비된 듯하다. 공황 상태에 빠져 저인망식으로 마구 뒤지다 보니 가정주부의 통신자료까지 조회하는 참극으로 이어진 것이리라.

기술자는 환부만 도려낸다. 그걸 가장 잘하는 건 미우나 고우나 검찰 특수통이다. 환부를 아예 못 본 척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조금 덜 도려내거나 조금 더 도려내는 정도의 편차 안에서 정교하게 메스를 놀려왔다. 공수처처럼 칼을 제어하지 못해 오장육부를 도려내고도 병인(病因)조차 찾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진 않았다.

검찰 밥을 먹은 이들 중에도 친여 성향이거나, 감투만 씌워주면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이 될 무골호인이 적지 않다. 그중 하나를 골랐다면 지금 같은 망신살을 자초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무조건 비검찰’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을 고수하면서 현 공수처장을 앉혔고, 설상가상으로 그 역시 단 1분의 수사 경험도 없는 차장을 뽑았다. 그들은 자복한 대로 아마추어 공수처를 만들어 결국 사달을 냈다.

공수처를 1년 만에 폐지할 게 아니라면 대안은 지휘부 교체밖에 없다. 산파였던 법무부 장관은 “좀 더 기다려보자”고 하지만 이들이 시간의 조력을 받아 자연 숙성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적임자들로 수뇌부를 다시 꾸려 재출발하는 게 공수처가 살고, 진정한 ‘검찰 개혁’ 목표도 이룰 수 있는 길이다. 오래전 서초동을 떠난 기자의 통신자료까지 조회하는 노고를 마다치 않으면서 모처럼 현장의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 공수처에 사례하는 뜻에서 마지막 고언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