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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1세대 포크 대부 양병집 별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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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를 풍미한 저항 포크 가수 양병집씨. 2003년10월20일 중앙일보와 만난 모습이다. 변선구 기자

1960~70년대를 풍미한 저항 포크 가수 양병집씨. 2003년10월20일 중앙일보와 만난 모습이다. 변선구 기자

김민기‧한대수와 함께 1970년대 3대 저항가수로 꼽히는 1세대 포크 가수 양병집(본명 양준집)씨가 별세했다.  향년 70세.

2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고인은 친분이 있던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와 24일 단골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카페 주인이 경찰에 신고했고,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학창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고인은 서라벌예대 작곡과에 입학했지만 부친의 반대로 대학을 중퇴하고 증권회사에 입사했다. 입사 1년여 만인 1972년 동생 양경집의 이름으로 포크 대회에 참가해 3위로 입상했다. 당시 밥 딜런의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올 라잇’(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에 직접 한국말 가사를 붙여 부른 ‘역’(逆)은 이후 김광석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라는 제목으로 다시 부르는 등 고인의 대표곡이 됐다. 양병집이란 예명은 시상식에서 주최 측이 이름을 잘못 부른 데에서 따왔다.

1974년 1집 앨범 ‘넋두리’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다. ‘서울하늘’, 구전민요에 바탕한 ‘타박네’ 등 세태 풍자적 노랫말과 소탈한 가락으로 사랑받았다. 미국 민요 ‘윕 포 제이미’(Weep for Jamie)를 개사해 월남 파병, 민주화 항쟁, 산업 전선 속의 젊은이를 애도한 ‘잃어버린 전설’등은 독재 정권 하에서 금지곡과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기도 했다.

1980년대 양병집 활동 모습. [중앙포토]

1980년대 양병집 활동 모습. [중앙포토]

고인이 1980년대 초 서울 이화여대 인근에서 운영한 음악 카페 ‘모노’에서는 밴드 들국화가 결성되기도 했다. 이후 호주로 이민을 갔던 고인은 1999년 한국에 돌아와 꾸준히 음악 활동을 했다. 2016년엔 들국화 원년 기타리스트 조덕환과 협업한 새 앨범 ‘흔치 않은 노래들’을 내기도 했다. 지난달 30일엔 자신의 음악 여정을 풀어낸 자전적 소설 『밥 딜런을 만난 사나이』(북랩)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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