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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특정기자 표적? 수사 무관 외교전문가·기자도 통신조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수사 중인 사건과 전혀 무관한 중앙일보 외교 담당 기자와 민간 외교안보 전문가를 상대로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모두 이성윤 서울고검장에 대한 공수처의 ‘관용차 에스코트 조사’ 논란을 보도한 TV조선 기자와 통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공수처가 자신의 기관에 불리한 보도를 한 기자를 표적으로 수사하면서 수사와는 무관한 이들까지 무차별적인 통신 조회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법조계에서 제기됐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20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20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20일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과는 지난 8월 6일 본지 외교 담당 기자에 대한 통신자료(가입자명·주민등록번호·이동전화번호·주소·가입일·해지일)를 통신사로부터 받았다. 또 민간 외교안보연구소 연구위원을 상대로도 같은 공문을 통해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공수처가 검찰과 법원, 공수처를 취재하는 법조 기자들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취재를 담당하는 정치부 기자들을 조회한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공수처의 수사와 무관한 외교 분야 기자 및 전문가를 대상으로도 통신자료를 조회한 게 추가로 드러난 것이다.

본지 외교 담당 기자 및 연구위원은 공수처의 ‘에스코트 조사’ 논란을 취재해 보도한 TV조선 법조팀 기자와 해당 보도 이후 통화를 한 적이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수처는 해당 기자의 가족들의 통신 자료도 조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공수처가 해당 기자를 상대로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휴대전화 착·발신 통화 내역을 확보해 훑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통신사업법상 수사기관이 통신사에 직접 요청할 수 있는 단순 통신자료 조회와 달리 착·발신 통화내역 및 위치정보 등은 통신비밀보호법 13조의 ‘범죄수사를 위한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에 해당해 관할 법원의 사전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수처가 특정 기자에 대한 통화내역에 대한 영장을 발부받은 뒤 통화 상대방을 추적하려고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보인다”며 “통신 관련 영장은 구속‧압수‧금융 등의 영장에 비해 비교적 쉽게 나오는 경향이 있어 과거부터 수사 기관이 통신 영장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선진 수사 기관을 표방한 공수처가 이런 전례를 따르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사 기자는 공수처법상 제2조에 열거된 수사 대상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검·판사, 경무관 이상 경찰, 3급 이상 공무원 등 고위공직자가 공수처 수사 대상이다. 공수처도 앞서 법조 출입 기자들에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가 논란이 되자 “주요 사건 관계인이 기자들과 통화가 잦다 보니 기자들이 통신자료 조회 대상에 포함된 것일 뿐 기자로 신원이 확인되면 수사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런데 특정 기자 본인을 사건 관계인으로 보고 영장을 발부받아 통화내역을 확보하고 해당 기자와 통화한 상대방까지 신원을 확인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공수처는 이에 대해 ‘적법한 수사 절차’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적법하게 절차를 진행하였고, 개별 사건의 구체적 수사 내용에 대해선 확인해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당 TV조선 기자는 본지에 “제 통신 내역을 공수처가 봤다는 의심이 점차 사실이 돼 가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며 “공수처가 적법 절차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사실을 빨리 알려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인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이날 김진욱 공수처장을 직권남용‧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이 단체는 “김 처장이 언론사 전·현직 기자와 김경율 회계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김준우 전 사무차장 등의 통신 자료를 무차별적으로 조회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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