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추억의 길거리 간식, 그 많던 붕어빵·호떡 어디로 갔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15일 오후 2시30분 노원역 앞 노점상 6곳이 장사를 하지 않고 문을 닫아 놨다. 양수민 기자

지난 15일 오후 2시30분 노원역 앞 노점상 6곳이 장사를 하지 않고 문을 닫아 놨다. 양수민 기자

지난 15일 오후 서울 노원역 앞. 분홍색으로 칠한 노점 6곳은 모두 셔터가 내려가 있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겨울이면 붕어빵과 풀빵 등 겨울 간식을 팔던 곳이다. 인근에서 다른 노점을 운영하는 정모(52)씨는 “원래 저 노점들에서 작은 간식을 팔았는데 벌이가 안 되니 지금은 문을 닫고 쉬고 있다”며 “저녁에 한 곳 정도만 문을 열고, 5곳은 아예 장사를 접었다”고 전했다.

노점 위치 공유 앱·커뮤니티 등장

거리에서 겨울 간식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붕어빵·호떡 등을 팔던 노점이 높은 재료비 부담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요 감소까지 겹쳐 장사를 그만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을 닫지 않은 일부 노점은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 이런 노점 수가 줄어들다 보니 소비자끼리 노점 위치를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커뮤니티까지 생겨났다.

서울 노원구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김회숙씨는 올해 7년 만에 붕어빵 가격을 올렸다.

서울 노원구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김회숙씨는 올해 7년 만에 붕어빵 가격을 올렸다.

서울 상계동에서 붕어빵을 파는 이용자(61)씨는 “같은 양의 재료를 사는데도 지난해보다 20~30%는 더 든다”며 “재료비랑 가스비를 빼면 1000원을 팔았을 때 남는 게 300원 정도밖에 안 된다”고 토로했다. 서울 마들역 앞에서 아내와 함께 계란빵 장사를 하는 정재유(65)씨도 “장사할 맛이 안 난다”며 “부부가 함께 하루 9시간을 쉬지 않고 일해도 순수익은 10만원이 간당간당하다”고 말했다. 시급으로 따지면 인당 5500원 수준이다.

붕어빵·호떡 등을 반죽할 때 사용하는 밀가루는 물론 팥·식용유 등 식재료 가격이 모두 올랐다. 상인들은 “1~2년 새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반응이다. 서울 노원구에서 노점을 하는 김회숙(60)씨는 “어쩔 수 없이 올해 7년 만에 붕어빵 가격을 올렸다”고 했다.

값 오른 붉은 팥, 치솟은 LPG가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값 오른 붉은 팥, 치솟은 LPG가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실제 식용유 업계에 따르면 업소용 식용유 한 통(18L)의 납품 가격은 최근 4만원을 넘겼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2만원대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붕어빵 앙금을 만들 때 쓰는 수입산 붉은 팥(40㎏) 도매가격은 25만8800원으로 지난해 같은 날보다 13.9% 올랐다. 같은 양의 팥은 2년 전엔 17만6200원이었다.

노점 특성상 조리를 위해 필요한 LPG(프로판) 가격도 부담이다. 지난해 2만원 후반대였던 20㎏ 가스 가격은 노원구는 약 3만7000원, 중구·종로구 일대는 4만5000원으로 1.5배 가까이 올랐다. 서울 종로에서 호떡을 파는 양오승(64)씨는 “LPG 가격이 너무 올라 가스를 새로 주문하는 날은 얼마를 팔든 적자”라며 “가격표 바꿀 돈(약 20만원)도 아까워 호떡값 올리는 걸 미룰 정도”라고 말했다. 양씨는 20㎏짜리 LPG 한 통은 3일 정도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19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올해 12월 LPG 판매소의 프로판 가격은 ㎏당 2410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1865원)보다 29.2% 올랐다. 석유 등 에너지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급등하면서 국내 LPG 판매 가격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줄어든 유동인구도 노점상이 감소한 이유 중 하나다. 양씨는 “이제 좀 풀리나 기대했는데 확진자가 7000명을 넘어가니까 눈에 띄게 지나다니는 사람이 줄었다”고 말했다. 계란빵을 파는 정씨 역시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최근엔 매출이 절반도 안 된다”며 “어차피 밤에는 사람이 없으니 문 닫는 시간도 오후 8시로 당겼다”고 했다.

군밤·어묵·토스트 노점도 사라져

군밤·군고구마·어묵·다코야키·토스트 등 간식을 파는 노점도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서울시에 따르면 거리가게(노점)는 지난 9월 5873개로 2016년(7718개)보다 1845개(23.9%) 줄었다. 노원역 앞에 위치한 노점처럼 영업은 하지 않으면서도 폐점 신고를 하지 않은 곳은 통계에 드러나지 않아 ‘사실상 폐업’ 상태의 노점은 이보다 더 많다.

줄어드는 서울의 노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줄어드는 서울의 노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조항아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사무처장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장사하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쪽 노점은 코로나 이후 30~40%가 문을 닫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노점에 붕어빵 재료를 납품하는 임정산(54)씨도 “재작년보다 붕어빵 체인이 50% 넘게 줄었다. 공장 생산량도 반 토막이 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겨울이 왔는데도 추억의 간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탓에 노점 위치를 공유하는 앱까지 생겼다. 노점 위치를 알려주는 ‘가슴속 3천원’ 앱은 올해 2월 출시 이후 다운로드 횟수가 5만 건이 넘었다. 앱 이용자가 붕어빵·호떡 등을 판매하는 노점 위치를 직접 등록하면, 다른 이용자가 지도를 보고 이를 찾을 수 있다.

취업준비생 정재훤(25)씨는 “앱을 보니 집 근처에는 붕어빵을 파는 곳이 없어 사 먹으려고 옆 동네까지 왔다”며 “최근에도 폐업하는 곳이 많은지 앱에는 표시가 돼 있는데 막상 가보면 문을 닫은 노점도 많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