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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돌연 "세금 깎겠다"…文정부 부동산 정책에 각 세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 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 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의 단초 중 하나는 세금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1977년 모든 거래에 세금 10%를 부과하는 부가가치세를 도입했다. 매출의 10분의 1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상인들이 즉각 반발했다. 이듬해 부가세가 물건 값에 반영되고 오일쇼크까지 겹쳐 물가상승률은 14.5%까지 올랐다. 불만은 전 국민으로 번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78년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승리하는 이변이 펼쳐진다. 이듬해 부마항쟁이 일어나는데, “부가세 폐지”가 구호로 나왔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회고록에서 “부가세에 대한 나빠진 여론이 시위를 자극했다”고 썼다. 1979년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방아쇠를 당기는데, 그는 동기로 “부마항쟁에서 드러난 광범위한 민심이반”을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5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김혜정 부분회장으로부터 요구사항을 전달받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5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김혜정 부분회장으로부터 요구사항을 전달받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1년여만에 입장 바꿔 "양도세 유예 논의"

정치사의 큰 변곡의 순간에 조세 제도의 변화가 있었다. 민심과 세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여서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세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부동산세를 중심으로 “깎아주겠다”는 경쟁이다. 야당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고리로 감세를 약속하며 표심을 공략해왔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여당은 기존 입장까지 바꿔가며 감세 경쟁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14일 밝혔다. 지난해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다며 양도세 중과를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야당 동의 없이 일방 처리했지만, 1년여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지난해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으로서 소득세법 개정안을 ‘기립 표결’로 처리한 윤후덕 민주당 의원까지 “중과 유예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민주당 입장이 갑자기 바뀐 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2일 “(양도세를) 1년 한시적으로 중과세를 유예 하는 게 꼭 필요하다”고 말한 뒤부터다. 이 후보는 상속 주택 등의 경우 종합부동산세를 완화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은 종부세 기준이 되는 주택 공시가격 인상 속도를 낮추는 방안 등을 포함해 폭넓게 부동산세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실 이 후보는 당내 경선 때만 해도 증세를 주장했다. 그는 “(부동산) 양도세, 보유세 실효세율은 터무니없이 낮다”고 주장했고, 국토보유세(기본소득토지세) 도입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이 후보는 “국토보유세를 반대하는 것은 악성 언론과 부패 정치 세력에 놀아나는 바보짓”이라고까지 말했다. 당시 당내에선 “증세론를 지지하는 당내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5일 오후 서울 성동구 가온한부모복지협회를 방문해 한부모가정에게 보낼 물품을 포장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5일 오후 서울 성동구 가온한부모복지협회를 방문해 한부모가정에게 보낼 물품을 포장하고 있다. 뉴스1

반대 여론 많자 "안 한다"

하지만 본선이 시작되고 자신의 공약에 반대 여론이 더 크자 기조가 바뀌었다. 먼저 국토보유세에 대해서도 “국민이 반대하면 안 한다”며 한 발 물러섰다. 최근엔 양도세에 대해서도 완화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은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각을 세우는 것이 이 후보 입장에서는 ‘좋은 장사’라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은 후보는 선거전 초반부터 부동산세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종부세로 대표되는 보유세와 양도세 세율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의지 등을 수차례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공략하면서 감세라는 득표에 유리한 포인트를 동시에 공략한 것이다. 윤 후보는 지난달 페이스북에 “부동산 정책 실패는 정부가 저질러놓고… 국민이 건강보험료 폭탄을 맞아야 하냐”며 준조세 성격의 건보료 개편 가능성도 언급했다.

사실 증세가 정치적으로 불리하다는 걸 잘 아는 이 중 한 명이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세제 개편을 통한 증세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선거 앞두고 세금 올린다고 하면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가세를 도입할 당시 강력 반대하는 보고서를 올린 이도 당시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던 김 위원장이다. 국민의힘 선대위 관계자는 “경제 정책에서는 윤 후보에게 김 위원장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제20대 대통령 후보가 지난 10월 2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나 차담을 나누고 있다. 오른쪽은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제20대 대통령 후보가 지난 10월 2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나 차담을 나누고 있다. 오른쪽은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 연합뉴스

靑 "양도세 유예 반대"

여당의 감세 경쟁이 계속될 지는 미지수다. 이재명 후보의 주장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세제를 사실상 무너뜨리는 것이어서 당내 친문(친 문재인)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15일 라디오에 출연해 양도세 유예 주장을 한 이 후보를 향해 “매우 예민하고 중요한 정책을 흔들어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선후보라 할지라도 당내 의견 수렴을 먼저 거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불편한 의중을 당에 전달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14일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찾아 다주택자 양도세 유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정부가 중과세 유예에 반대하는 건 부동산 가격이 안정세로 접어드는 과정인데 이런 시점에서 정책의 연속성을 훼손하는 건 시장 안정성 측면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앞서 지난 2일에도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인하에 대해 "다음 정부에서 검토할 문제"(박수현 국민소통수석)라고 선을 그었다. 향후 문재인 대통령과 이 후보의 갈등 요인으로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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