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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제20대 대통령의 첫 100일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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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9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21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안내 책자를 전달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9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21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안내 책자를 전달하고 있다. [뉴시스]

내년 5월 10일 새 대통령이 취임한다. 현재 여론으로 봐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둘 중 한 명이 그 주인공이 된다. 이런 상황을 전제한다면 두 후보는 대통령 취임 직후 100일 동안 처리할 핵심 과제를 지금 내놓아야 한다. 이 과제는 미리 마련해 두지 않으면 실행할 기회조차 없다. 예정에 없던 선거를 치르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취임 이후 뒤늦게 국정과제를 제시했지만, 이미 70여 일이 흘러간 뒤였다.

국민에게 핵심 정책 미리 제시하고 #정부 출범 직후 집행해야 성과 올려 #노태우·김영삼의 성패가 반면교사

우리는 그 후유증을 4년 내내 겪고 있다. 여론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 추진된 정책이 큰 혼란과 부작용을 일으켰다. 그중 상당수 정책은 국민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진영 논리에 맞춰졌다. 탈원전부터 급격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최저임금 과속 인상, 비정규직 제로 정책, 획일적 52시간제 도입까지 수많은 정책이 일방적으로 강행됐다. 국민은 당장 비싼 전기부터 비싼 집값과 전·월세로 고통받고, 경제적 약자는 알바 기회조차 얻기 어렵고 소득이 줄어 투잡을 뛰는 세상이 됐다.

이런 문제가 바로 취임 초 100일 과제를 지금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선거를 치르는 3월 9일까지는 두 달이 조금 더 남았다. 그 안에 국민에게 설명하고 여론을 통해 치열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또 우왕좌왕하고 정책 효과도 살리지 못해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전철을 밟게 된다. 최근 이재명 후보가 음식점 총량제 등 어설픈 정책을 불쑥 꺼냈다가 싸늘한 여론 때문에 줄줄이 철회한 것도 국민적 합의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국민이 반대하면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계속 말을 바꾸고 있어서 국민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후보는 기업의 자율을 보장하고 시장원리를 중시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나 역시 취임 직후 무엇부터 하겠다는 계획은 아직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1987년 이후 대통령이 5년마다 바뀐 지 벌써 7번째에 이르면서 국민이 지켜봐 왔지만, 임기 초 속도전을 펴지 못하면 금세 시간이 지나가 이렇다 할 성과를 내기 어렵다.

노태우 대통령은 집권 초기 소나기 퍼붓듯 정책을 쏟아냈다. 공약대로 200만 호 신도시 건설을 비롯해 이동통신 민영화, 인천공항·경부고속철도 사업을 빠르게 추진했다. 북방외교에도 전력해 중국과 소련을 비롯해 공산권 국가와 줄줄이 수교해 해외 시장을 확장했다. 노 대통령 재임 중 한 해 임금이 20% 오르고 마이카 시대가 열렸으며, KTX로 전국 일일생활권을 여는 토대를 만들었다. ‘물태우’라는 이미지와 달리 황소처럼 핵심 과제에 정면승부를 걸었다.

그의 후임자 김영삼 대통령은 출발은 좋았다. 경제 체질을 개선한다면서 ‘신경제 5개년 계획’을 내놓고 첫 100일 실행계획까지 세웠으나 용두사미로 끝났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워 하나회를 해체하고 중앙청을 부숴버려 국민적 열광을 받았다. 쿠데타에 대한 단죄로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면서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그러는 사이 경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급기야 나라 곳간이 텅텅 빈 것도 모른 채 외환위기를 당한 치욕의 정부가 되었다.

노태우·김영삼 두 대통령의 엇갈린 성패는 제20대 대통령에게 살아 있는 교훈이다. 적어도 국민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정책은 곤란하다. 5년 동안 나라와 국민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교육·공공·기업·부동산 정책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고, 100일 과제를 밝혀야 한다.

임기가 있는 대통령제는 초기 100일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미국에서도 100일 과제가 역대 미국 대통령의 단골 정책인 까닭이다. 국민에게 공감을 얻고 집행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후보 캠프는 중구난방을 멈추고 조속히 100일 계획을 제시해 국민의 검증을 받도록 해야 한다. 조만간 100일 계획을 국민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