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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민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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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성훈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지난달 미 CNBC 베이징 주재기자와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 특파원을 만나 반가웠는지 자신이 비무장 지대에 취재 갔던 얘기를 꺼냈다. 인상적인 건 이어진 질문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자국에 미사일을 겨눈 북한을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는지?” 나는 “위협적이지만 늘 맞닥뜨린 현실인 탓인지 밖에서 보는 것보단 덜한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일이 떠오른 건 ‘민주 정상회의’를 둘러싼 미·중간 ‘썰전’ 때문이다. 지난 10일 막을 내린 회의를 앞두고 중국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한껏 비꼬았다. 중국 중심의 아전인수격 비판으로 볼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당연시 여겼던 우리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중국 국무원은 미국 주도 ‘민주 정상회의’를 앞둔 지난 3일 ‘중국적 민주’라는 백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중국신문망]

중국 국무원은 미국 주도 ‘민주 정상회의’를 앞둔 지난 3일 ‘중국적 민주’라는 백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중국신문망]

중국의 주장은 뭘까. 지난 3일 국무원이 발표한 ‘중국: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백서에서 중국은 “미국이 자신을 민주주의의 등대로 자처하지만 국민에 의해 선출됐다는 정치인은 기실 이익단체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한다. “선거에서 많은 공약을 한 정치인들은 당선 이후 이를 이행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고 정치적 논쟁과 분열된 정부로 인해 코로나19 사망률은 최악”이라고 비판했다. 불평등은 갈수록 커지고 사회적 혼란만 늘어난 것이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냐는 것이다.

며칠 뒤 중국 인민대는 ‘미국 민주주의에 던지는 10가지 질문’을 발표하며 미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이렇게 압축했다. “‘민주’(民主)라는 미국의 현실에는 실제 전혀 다른 6개의 주(主)가 있다. ‘전주’(錢主·moneycracy), ‘총주’(銃主·guncracy), ‘백주’(白主·whitecracy), ‘매주’(媒主·mediacracy), ‘군주’(軍主·militarycracy), 그리고 ‘약주’(藥主·drugcracy)다.”

반대로 중국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는 “국민과 당원이 법을 위반한 대의원을 곧바로 해임할 수 있고, 당의 지도력은 혼란을 막고 사회 안정과 발전이란 목적을 근본적으로 견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서구식 민주주의와 정반대”라고 주장했다.

물론 언론 자유 순위 177위(국경없는 기자회, 2021), 정부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중국은 이번에도 민주주의의 요체인 ‘집회·결사·언론의 자유’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의 고충과 비판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이를 수용해 개선해 갈 수 있는 ‘민주적’ 시스템인 우리 사회는 왜 문제가 더 빠르게 개선되지 않는 걸까.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데 왜 다수가 불만인 사회가 되는 걸까. 체제를 떠나 “국민이 불행한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인가”라는 중국의 지적을 한 번쯤 곱씹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