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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커플 인정한 도쿄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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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어제 뭐 먹었어?(きのう何食べた)’라는 영화가 있다. 올가을 일본에서 개봉해 흥행수익 10억엔(약 103억원)을 돌파하며 성공을 거뒀다.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가 원작. 2019년 TV드라마로 만들어져 화제가 됐고, 영화는 그 속편 격이다. 제목 그대로 주인공들이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에 집중하는, ‘고독한 미식가’ 류의 요리 드라마다.

특별한 건 두 주인공이 40대 성소수자란 점이다. 작은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시로(니시지마 히데토시)와 미용사 겐지(우치노 세이요)는 게이 커플로 수년째 함께 살고 있다. 요리가 취미인 시로는 매일 퇴근길에 직접 장을 봐 두 사람이 함께 먹을 음식을 만든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게 싫어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히지 않는 시로, 그리고 아들이 게이임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부모님 등의 에피소드가 나오지만 나머지는 그저 평범하다. 각자 일하고 함께 밥 먹고, 서로 다른 성격에 티격태격하고, 종종 노후를 걱정하는 중년 커플이다.

중년 게이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 영화 ‘어제 뭐 먹었어?’의 한 장면. [사진 TV도쿄]

중년 게이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 영화 ‘어제 뭐 먹었어?’의 한 장면. [사진 TV도쿄]

인권 문제에서 한국보다 결코 낫다고 하기 어려운 일본이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에 있어선 확실히 차이가 난다. 몇 년 전 열풍을 일으킨 ‘아재스 러브(おっさんずラブ)’라는 드라마는 한국인 입장에선 “이런 내용을 지상파에서 방송할 수 있다고?” 싶었다. 온갖 버라이어티에 출연 중인 마쓰코 디럭스 등 성소수자 연예인도 적지 않다. 그런 면에서 8일 도쿄(東京)도가 성소수자 커플을 인정하는 ‘동성 파트너십 제도’를 내년부터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건 ‘이제서야’라는 느낌마저 준다.

‘동성 파트너십’은 성소수자 커플에게 법적으로 결혼한 부부와 같은 권리를 주는 제도다. 이미 일본 지자체 중 오사카(大阪)부, 이바라키(茨城)현 등 5개 도도부현(都道府県)이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고, 도쿄도가 합류하면서 전국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지만, 올해 3월에는 삿포로지방법원에서 “동성 간 결혼 금지는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제도 도입을 앞두고 도쿄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시민의 70% 이상이 긍정적인 입장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선 관련 논의가 멈춰 있다.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은 물론 수많은 ‘다름’에 따른 차별을 없애자는 ‘차별금지법’마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차별을 없애는 데 어떤 합의가 필요한 것일까.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콘텐트를 수없이 만들어내는 한국에서 ‘어제 뭐 먹었어?’ 같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