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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중국 허난성 디지털 감시가 잃게 될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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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스무 해도 더 된 이전 중국 베이징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던 시절 이야기다. 하루는 친분이 있는 일본 특파원의 사무실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 일본 기자로부터 “너도 똑같은 놈이다”라는 알 수 없는 욕까지 먹었다. 영문을 모르고 쫓겨났는데 한참 후에 그로부터 “미안하다”는 전화가 왔다. 당시엔 자신이 너무 흥분해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에 따르면 그가 소속한 베이징 지국이 당시 연금 상태에 있던 중국 정치 원로와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이게 중국 당국에 들통이 나 감시를 받는 상황이었다.

중국 베이징 시내 한 도로에 설치된 CCTV 모습. 중국의 감시 카메라 수는 2018년 2억 개에서 올해 5억 6000만 개로 늘었다. [로이터 = 연합뉴스]

중국 베이징 시내 한 도로에 설치된 CCTV 모습. 중국의 감시 카메라 수는 2018년 2억 개에서 올해 5억 6000만 개로 늘었다. [로이터 = 연합뉴스]

시쳇말로 요주의 인물로 찍혀 감시를 받게 됐는데 그 감시의 강도가 하루하루 다르게 조여오는데 견디기 어려웠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한마디로 정서가 극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당시 중국 원로까지 미치는 그의 중국 네트워킹을 부러워하던 내게 그는 내 중국 거주 증명서 어디를 보면 무슨 표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그는 그것이 내가 중국 어디에서든 숙박하게 돼 그 증명서를 제출하면 이 표시를 본 숙박업체는 바로 나를 중국 당국에 신고하게 하는 마크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는지는 지금까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최근 중국 허난(河南)성 정부가 첨단 안면인식기술을 이용해 외신 기자를 관리하려는 조치는 적지 않은 우려를 자아낸다.

지난 7월 말 중국 허난성을 강타한 역대급 폭우로 성도인 정저우 시내 곳곳이 물에 잠겼다. [AFP=연합뉴스]

지난 7월 말 중국 허난성을 강타한 역대급 폭우로 성도인 정저우 시내 곳곳이 물에 잠겼다. [AFP=연합뉴스]

허난성 정부는 지난 7월 말 한 입찰 공고를 냈다. 의심스러운 사람을 추적할 수 있는 감시 시스템을 구축할 회사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의심스러운 사람은 누구를 말하나. 세 부류다. 외국 기자와 외국 유학생, 그리고 중국에 불법 체류 중인 여성이라고 했다. 외국 기자는 다시 홍색과 황색, 녹색 등 세 가지 색깔에 의해 3등급으로 분류됐다. 홍색은 1급 인물로 중점적으로 관리가 필요하고 황색의 2급 기자는 일반 관리 대상이며 녹색의 3급 인물은 안심해도 되는 기자다. 홍색과 황색 표시의 기자가 허난성으로 가는 표를 구입하면 바로 경보가 울리게끔 돼 있다고 한다.

지난 2018년 10월 베이징의 한 기술 스타트업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걸음걸이와 체형으로 사람을 식별하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시연해 보이고 있다. [AP=뉴시스]

지난 2018년 10월 베이징의 한 기술 스타트업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걸음걸이와 체형으로 사람을 식별하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시연해 보이고 있다. [AP=뉴시스]

유학생도 위험도에 따라 세 종류로 나뉜다. ‘우수 유학생’과 ‘일반 유학생’, 그리고 ‘중점 및 불안정 유학생’ 등이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유학생 명단과 출입국 관리 부서 및 국가 안전 부문이 제공하는 각종 자료에 유학생의 일상적인 출결 상태는 물론 시험 성적, 그리고 어떤 국가에서 유학을 온 것인지 등 모든 정보를 담아 그 학생이 허난성에 어떤 위험을 안길 것인지를 평가한다. 학교는 스스로 ‘문제 유학생’을 당국에 신고해야 하고 당국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해당 유학생에 대한 추적 및 감시에 들어간다. 또 중국에 불법 취업 목적으로 온 제3국 여성을 적발하기 위한 감시 시스템도 구축한다.

지난 7월 말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서 발생한 홍수로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7월 말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서 발생한 홍수로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입찰 공고 약 한 달 반만인 지난 9월 중순 둥롼(東軟,NeuSoft) 그룹이 계약을 따냈는데 감시 시스템 구축의 핵심은 허난성 곳곳에 포진한 첨단 안면인식 카메라인 것으로 알려진다. 마스크와 안경을 쓰고 있어도 개인의 얼굴을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휴대폰과 SNS에서의 활동, 차량의 디테일, 숙박호텔, 항공권이나 기차표 구매 정보, 부동산 자료, 사진 등 갖가지 정보를 다 수집해 외국 기자나 유학생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구축한다. 허난성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하늘의 그물(天網)’에 걸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 전역에는 약 5억 6000만개의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EPA=연합뉴스]

중국 전역에는 약 5억 6000만개의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EPA=연합뉴스]

허난성 정부가 이처럼 외국인에 대한 철저 감시 시스템 구축에 나선 건 지난 여름의 물난리와 관계가 있다. 지난 7월 허난성 성도(省都)인 정저우(鄭州)에 폭우가 쏟아져 지하철을 타고 가던 승객이 익사하는 등 홍수로 많은 인명 피해가 났는데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 각국의 외신 기자가 몰려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보도는 자연히 허난성의 어두운 측면에 초점이 맞춰졌고, 애국주의 열기에 휩싸여 있는 중국 인민은 서방이 일부러 중국을 욕보인다고 분개했다. 급기야 외국 기자들의 신변이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지난 7월 말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 내린 폭우로 병원이 침수 위기에 빠지자 구조대가 환자와 의료진의 대피 작업을 돕고 있다. [신화사=뉴시스]

지난 7월 말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 내린 폭우로 병원이 침수 위기에 빠지자 구조대가 환자와 의료진의 대피 작업을 돕고 있다. [신화사=뉴시스]

중국의 첨단 안면인식 카메라는 범죄 예방 등에서 유용한 측면이 많다. 중국 공안(公安, 경찰)은 수년 전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해 홍콩 가수 장쉐유(張學友)의 여러 차례에 걸친 중국 대륙 공연 때 현장에서만 60여 명의 수배자를 잡는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사회 안정을 이유로 2018년 2억 개에 달했던 감시 카메라가 올해는 약 5억 6000만 개로 부쩍 늘었다. 그러나 허난성 정부의 외신 기자와 유학생, 불법 체류 외국 여성 등 외국인 대상의 디지털 감시 시스템 구축은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꽤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허난성과 둥롼그룹 간 계약서에 따르면 11월 중순까지는 시스템 구축이 완료된다고 했다. 앞으로 허난성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안면인식기술 이용해 외신과 유학생 감시 나선 허난성 #서방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 막을 수 있을지 모르나 #허난성 가고 싶다는 생각 접게 해 손실이 더 많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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