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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물폭탄, 남극은 반토막···지금 아기, 이런 세상서 죽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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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 투모로우의 한 장면. 극한의 한파가 몰아쳐 미국 뉴욕이 얼음과 눈의 도시로 변했다. [중앙포토]

SF영화 투모로우의 한 장면. 극한의 한파가 몰아쳐 미국 뉴욕이 얼음과 눈의 도시로 변했다. [중앙포토]

남극의 넓이가 지금보다 42%(약 600만㎢)가량 쪼그라든다. 일부 지역에서는 하루 800㎜가 넘는 ‘물 폭탄’이 종종 쏟아진다. 겨울이 짧아지고 봄이 일찍 찾아오는 등 계절 주기가 달라진다-.

기초과학硏, 美 대기연구센터 80년 후 기후 예측

미국 뉴욕의 맨해튼이 물에 잠기고, 자유의 여신상이 얼어붙는 재난 영화 ‘투모로우’ 속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같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그대로 유지되면 앞으로 80년 후 지구 곳곳에서 ‘기상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과 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 복합지구시스템모델 그룹은 9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80년 후의 지구 기상’을 이같이 예측했다.

지구 온난화가 유발하는 극한 강수 발생 빈도. 현재 대비 2090년~2099년 강수량이 극한 강수량을 초과한 일수를 보여준다. 1이면 극한 강수일의 변화가 미래에는 없다는 의미이고, 11이면 해당 지역의 극한 강수일이 현재에 비해 미래에 10일 더 증가한다는 의미이다. [사진 기초과학연구원]

지구 온난화가 유발하는 극한 강수 발생 빈도. 현재 대비 2090년~2099년 강수량이 극한 강수량을 초과한 일수를 보여준다. 1이면 극한 강수일의 변화가 미래에는 없다는 의미이고, 11이면 해당 지역의 극한 강수일이 현재에 비해 미래에 10일 더 증가한다는 의미이다. [사진 기초과학연구원]

이번 연구를 통해 ‘미리 가 본’ 미래의 지구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지속적인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모든 생태계를 바꿔놓는 것으로 나타나서다. 키스 로저스 IBS 기후물리연구단 연구위원은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호우·혹서 등 ‘극한 기후’의 강도·빈도가 달라지고, 계절 주기까지 영향을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인류가 현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2100년대 지구 평균온도는 2000년 대비 약 4℃ 증가한다. 강수량은 6% 늘어난다. 이에 따라 극한 기후 현상은 더 빈번해진다. 열대 태평양에서 하루 100㎜ 이상 비가 내리는 ‘극한 강수’는 지금보다 10배로 증가한다. 심지어 하루 800㎜ 이상의 폭우도 자주 일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연간 평균 강수량(1207㎜)의 3분의 2가량이 하루에 쏟아진다는 얘기다.

복사 평형도 무너진다. 어떤 물체가 흡수 또는 방출하는 에너지양이 서로 비슷한 상태를 복사 평형이라고 부른다. 지구도 흡수하는 태양 에너지만큼 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에 기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미래에는 이런 균형이 깨지면서 지표면 ㎡당 도달하는 에너지의 양이 2.8배 정도 늘어난다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이다.

현재 기후 대비 달라지는 미래 기후. 이 세계 지도는 ‘2070년~2099년 평균치’에서 ‘1960년~1989년 평균치’를 차감한 수치를 색깔이나 점으로 보여준다. 기온차를 보여주는 색깔은 빨간색에 가까울수록 현재 대비 미래 기온이 올라가는 지역이다. 강수량을 보여주는 점은 크기가 클수록 현재 대비 미래에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사진 기초과학연구원]

현재 기후 대비 달라지는 미래 기후. 이 세계 지도는 ‘2070년~2099년 평균치’에서 ‘1960년~1989년 평균치’를 차감한 수치를 색깔이나 점으로 보여준다. 기온차를 보여주는 색깔은 빨간색에 가까울수록 현재 대비 미래 기온이 올라가는 지역이다. 강수량을 보여주는 점은 크기가 클수록 현재 대비 미래에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사진 기초과학연구원]

엘니뇨 주기는 현 3.5년에서 2.5년으로 줄어든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주변보다 2~10℃ 정도 높아져 세계 곳곳의 가뭄·폭풍·홍수·가뭄 등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이러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거대산불 발생 확률이 높아지고, 북대서양에선 플랑크톤 번식량이 현저히 감소할 거라는 예측이다.

지구온난화는 강수량은 늘어나는 대신 겨울철 눈이 줄어드는 현상을 유발한다. 적설량 감소로 북반구 고위도 지역의 식물 생장 기간은 지금보다 3주가량 늘어난다. 악셀 팀머만 IBS 기후물리연구단장은 “인간의 활동이 생태계 전반을 바꾼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슈퍼컴퓨터가 예측한 미래 기후. 그래픽 박경민 기자

슈퍼컴퓨터가 예측한 미래 기후. 그래픽 박경민 기자

이번 연구는 역대 최대 규모의 ‘대규모 앙상블 시뮬레이션’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앙상블 시뮬레이션은 해양‧대기 등 기상 조건과 변수를 다양하게 설정해 100차례가량 반복해 기후변화를 전망하는 연구방법이다. 지구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기후 상태를 100개로 추려본다는 뜻으로, 그만큼 신뢰성이 높다는 뜻도 된다. 실제로 지구를 100㎞ 단위로 쪼개 정밀하게 1850~2100년 지구 기후를 시뮬레이션했다.

이는 그동안 과학계가 시도한 적이 없는 분석 기법이다. 슈퍼컴퓨터가 시뮬레이션하는 데 15개월이 걸렸고, 데이터를 저장하는데 5페타바이트(PB·1PB는 1024테라바이트)의 공간이 필요했다. 1PB는 6기가바이트(GB)짜리 영화 17만4000편을 담을 수 있는 용량이다.

이순선 IBS 기후물리연구단 연구위원은 “지구 시스템의 자연 변동과 인간 활동에 따라 어떻게 기후가 달라지는지 구분해서 연구해 기후변화 전망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며 “지금 같이 인간이 온실가스를 지속적으로 배출한다면 올해 태어난 아이가 할아버지‧할머니가 되면 ‘현실’로 닥칠 수 있다는 과학적 분석”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지구시스템역학’ 최신호에 실렸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앞으로 ‘산업진흥’ 관점에서 탄소중립 정책을 펼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기업 참여를 유도하고, 한편으론 탄소배출 저감 기술에 적극 투자해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 기후 어떻게 예측했나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슈퍼컴퓨터 알레프(Aleph). [사진 기초과학연구원]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슈퍼컴퓨터 알레프(Aleph). [사진 기초과학연구원]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은 슈퍼컴퓨터 ‘알레프(ALEPH)’를 이용했다. 알레프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누리온’, 기상청의 ‘누리·미리’와 함께 한국 연구기관이 보유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 중 하나다.

미국 크레이가 제조한 알레프의 연산 속도는 1.43PF(페타플롭스·1초에 1000조번 연산 가능한 속도)다. 개인용 컴퓨터(PC) 1560대가 동시에 계산하는 속도와 맞먹는다. 최대 저장 용량은 8.74PB(페타바이트)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기후모델은 방정식을 활용해 수립한다. IBS 기후물리연구단은 알레프를 활용해 기후모델 방정식을 컴퓨터 코드로 변환했다.
바람·습도·강수·해속 등 1850년~2014년까지 습득한 각종 기후 데이터를 입력해 당시 기후를 재현했다. 이렇게 재현한 기후를 기반으로 2015년~2100년 기후 변화를 예측했다.

이 과정에서 슈퍼컴퓨터가 필요한 이유는 단 하나의 변수가 미세하게 바뀌어도 전체적인 계산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태양에너지의 복사량과 구름의 변화가 달라지면, 중국에서 한국으로 불어오는 편서풍의 양이 달라진다. 이에 따라 한국의 습도·온도가 바뀐다. 이렇게 바뀌는 데이터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고, 지표의 상층·하층에 따라 또 다르다.

알레프가 이처럼 복잡한 연산을 15개월간 반복하면서 IBS는 역대 최대 규모의 지구 시스템 모델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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