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우디서 여자 대회, 난민 올림픽 출전…이게 태권도 정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65호 26면

[스포츠 오디세이]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세계태권도연맹 조정원 총재는 “태권도가 지구촌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인류 평화의 메신저가 되는 게 평생의 비전”이라고 말했다. 정준희 기자

세계태권도연맹 조정원 총재는 “태권도가 지구촌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인류 평화의 메신저가 되는 게 평생의 비전”이라고 말했다. 정준희 기자

태권도를 관장하는 국제기구인 세계태권도연맹(WT) 가입국은 210개다. UN(193개국)은 물론 국제올림픽위원회(IOC·206개국)보다 많고 국제축구연맹(FIFA·211개국)과는 1개 차이다.

2004년부터 17년째 WT의 수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정원(74) 총재가 지난 10월 6선(選)에 성공했다. 조 총재는 화상투표로 진행된 WT 총회 선거에 단독 입후보, 131명 중 129명의 찬성표를 받아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2025년까지 WT를 이끌게 될 조 총재는 ‘스포츠 태권도’의 끊임없는 개혁과 태권도를 통한 세계평화 기여라는 비전을 밝혔다. 서울 태평로에 있는 WT 본부에서 조 총재를 만났다.

태권도 시범, 대표적 K- 스포츠로 육성  

6선을 축하드립니다.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비결이 뭐라고 보십니까.
“신뢰와 화합이겠죠. 투명한 연맹 운영으로 회원국에게 신뢰를 줬고, 태권도인들이 화합하면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쌓았다고 자부합니다. 태권도는 대한민국이 세계에 준 큰 선물입니다. 1994년 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게 세계화의 기폭제가 됐죠. 고(故) 김운용 총재님이 큰 역할을 하셨고, 저는 스포츠 태권도를 좀 더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게 만들어 키우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최근 아메리카-이탈리아-프랑스의 ‘갓 탤런트’ 경연에서 WT 태권도 시범단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2005년 마드리드 세계선수권에서 주최측이 스페인 전통춤 플라멩코와 태권도 품새를 연결한 퍼포먼스를 하는데 ‘아, 바로 저거다’ 싶었어요. 태권도 품새를 음악·춤·의상 등 그 나라 문화와 연결하면 강력한 파워를 낼 수 있다고 느꼈죠. 2009년부터 세계연맹 시범단을 주요 대회에 파견했습니다. 2018년 이탈리아 갓 탤런트에서 골든 버저를 받고 결선에 올랐고, 그 영상을 본 각국에서 초청을 했죠.”
태권도 시범이 K-POP처럼 세계적인 문화상품이 될 가능성도 보입니다.
“유럽과 라스베가스에서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아예 나라별로 태권도 시범단이 모여 세계대회를 하자는 의견도 있어요. 무도 품새는 수준이 높아지면 변별력이 없어져요. 피겨스케이팅의 프리 종목처럼 태권도의 난이도 높은 동작을 응용한, 각국의 특색을 반영한 창작 품새로 가는 게 옳다고 봅니다. 피겨처럼 음악·안무·의상도 창조적으로 정하고, 기술점수와 예술점수를 합쳐서 평가하는 거죠.”
WT 시범단이 공연 마지막에 펼치는 ‘평화는 승리보다 소중하다’는 문구가 큰 감동을 줬습니다.
“원래 태권도는 남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방어를 위해 만든 겁니다. 약자를 돕는 역할도 하지요. 그걸 표현한 게 이 메시지입니다. 태권도를 통해 평화와 화합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보다 소중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이 세계태권도평화축제에서 발차기를 시연하고 있다. [중앙포토]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이 세계태권도평화축제에서 발차기를 시연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런 차원에서 만든 게 태권도평화봉사재단과 태권도박애재단이죠.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 어린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장비와 용품을 지원했습니다. 2008년에 시작한 봉사단은 그 동안 120개국에 3000명이 다녀왔습니다. 2015년 터키 해변에 다섯 살 난민 아이의 시신이 떠오른 걸 계기로 난민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요. 난민을 돕기 위해 2016년 태권도박애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활동을 했습니까.
“터키·르완다·지부티·요르단 등지의 난민 캠프에 운동 시설을 만들고 세계연맹이 현지 사범을 교육해 태권도를 보급했죠. 캠프에서 오갈 데 없이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통해 삶의 목표과 희망을 심은 거죠. 이들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고 IOC가 한 해 뒤 2017년에 올림픽난민재단을 만듭니다. 그해 무주 세계선수권대회에 온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당신들 보면서 우리도 이걸 만들었으니 창립 이사로 참여해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올림픽에 난민이 출전하게도 됐죠.
“2016년 리우 올림픽부터 난민 선수가 나옵니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 3명, 패럴림픽에 1명의 난민 태권도 선수가 출전했어요. 이란 여성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딴 선수가 이란 국적을 포기하고 난민 신청을 했는데, 그 선수가 1회전에서 올림픽 3연패를 노리던 영국의 제이드 존스를 꺾는 이변을 일으켰죠.”
사우디에서 여자 태권도 국제대회가 열린다면서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11월 말에 열리는데 이건 대단한 사건입니다. 대회를 성사시키는 데 2년이 걸렸어요. ‘여성을 차별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아시안게임도 유치할 수 있다’고 설득했죠.(이 대회는 11월 25~27일 36개국+난민팀 171명이 출전해 성대하게 치러졌다.)”
중동 쪽이 특히 태권도 인기가 높습니다.
“이란은 태권도 인구가 200만을 넘은 지 오래 됐고 경기가 열리면 구름 관중이 모입니다. 2004년부터 아랍권 여성들에게 히잡을 쓰고 경기를 해도 좋다고 오픈해 준 게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습니다. 중동 지역 여성 태권도 인구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축구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가진 스포츠가 태권도 아닌가 싶습니다.”

‘승리보다 소중한 평화’ 메시지 전파

세계태권도연맹은 이처럼 난민·장애인·유소년·여성 등 마이너리티에게 파고들어 그들을 세워주고 키워준다. 이들이 이슈의 중심으로 등장하고 세계의 관심을 받도록 태권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조 총재는 “우리는 존중받는 국제 스포츠 기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만 즐기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류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까 고민해야죠. 그럴 때 존중을 받습니다”고 말했다.

WT 본부를 경기도 고양시에 짓는다면서요?
“연맹이 계속 셋방살이를 해 왔어요. 광화문-서초동-성남, 다시 광화문을 거쳐 지금은 태평로에 있지요. 이래선 곤란합니다. 만약 총재가 다른 나라 사람이 되면 당장 본부를 옮기려고 할 겁니다. 반듯한 본부 건물이 있으면 설령 외국인 총재가 돼도 옮기지 못하겠죠. 문체부와 고양시 도움을 받아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태권도 세계화가 거의 완성 단계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도쿄 올림픽 때 뉴욕 타임스 기자가 잘 썼더라고요. ‘태권도는 특정 국가에 쏠리는 스포츠가 아니라 열심히 하면 누구나 메달 가져갈 수 있는 스포츠’라고요. 곧 바티칸시티가 회원국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면 회원국이 211개국이 되고, 아프리카 남은 몇 나라만 들어오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회원국을 가진 스포츠가 될 겁니다.”
종주국 한국은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하나도 못 땄는데요.
“우리 부진은 코로나19 영향이 큽니다. 유럽이나 중남미는 자체경기를 소화하고 왔는데 우리는 갇혀서 훈련만 하고 나왔거든요. 경기 경험 부족,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강박감이 몸을 굳게 만들었죠. 파리 올림픽이 3년도 안 남았으니까 좀 젊은 선수로 세대교체가 돼야 할 것 같습니다.”
태권도인 조정원이 꿈꾸는 태권도 이상향은 무엇입니까.
“세계 곳곳의 공원에서 태극권을 수련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요. 태권도도 연령에 맞춰 품새를 개발하면 모두가 편하고 즐겁게 수련할 수 있을 겁니다. 바닷가든 도심이든, 프로든 동호인이든 태권도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무도이자 스포츠가 되는 게 제 꿈입니다.”

경희대 설립자인 고(故) 조영식 박사의 장남인 조 총재는 경희대 상징동물인 사자 모형을 수집하는 게 취미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재질과 모양의 사자를 모으고, 여러 지인으로부터 선물도 받는다. 백발과 대비되는 검고 짙은 눈썹,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조 총재의 모습이 사자와 닮았다는 느낌도 들었다.

파리올림픽 태권도 선수, 디자인 세련된 컬러풀 경기복 입는다

태권도는 여성과 어린이·장애인·난민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태권도는 여성과 어린이·장애인·난민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태권도는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을 계기로 신선한 변신을 보여줬다. 2024년 파리에서는 무엇을 보여줄까.

조정원 WT 총재는 “무도(武道)는 변하면 안 되지만 스포츠는 변해야 합니다. 도복은 변하지 않아도 경기복은 변해야 하지요.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만드는 새로운 경기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라고 귀띔했다.

뻣뻣한 재질에 단순한 디자인의 도복 대신 세련된 디자인에 컬러풀한 감각을 더한 획기적인 경기복을 선보이겠다는 뜻이다. 재질도 땀 흡수가 잘 되고 경기하기에 편한 쪽으로 바꿀 계획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등장했을 때 경기장 규격이 12×12m였다. 이후 10×10m를 거쳐 8×8m로 줄었다. 그마저도 2016년 리우부터는 네 귀퉁이를 잘라내 8각형으로 만들어 선수들이 도망 다니지 못하게 했다.

2012 런던 올림픽부터 판정 시비를 없애기 위해 전자호구를 도입했다. 조 총재는 “논란도 있었지만 전자호구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퇴출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회에서 금메달 8개를 8개 나라가 나눠 가짐으로써 ‘태권도는 공정하다’는 인식이 굳어지게 됐다. 조 총재는 “대중이 원하지 않는 스포츠는 살아남지 못합니다”라고 단언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