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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선수 인기 많네’ 착각 말고, 개인 기량 더 키워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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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SK 농구 전희철 감독 

프로농구 SK 나이츠의 고공비행을 이끄는 조종사는 ‘에어 본’ 전희철(48) 감독이다. SK에서 수석코치로 10년간 문경은 감독을 보좌한 그는 올해 4월 사령탑에 오른 뒤 견고한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다. SK는 지난 9월 KBL컵에서 4전 전승으로 우승했고, 2021~22 정규리그 초반이긴 하지만 1위(10승4패)에 올라 있다.

전희철은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현주엽·김병철·신기성 등과 함께 고려대 ‘호랑이 군단’을 이끌었다. 뛰어난 점프력과 체공 시간을 활용한 화려한 덩크슛과 골밑 플레이는 그에게 ‘에어 본’ ‘에어 희철’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프로에 와서는 고감도 미들슛과 장거리슛도 장착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변신했다.

‘초보답지 않은 초보 감독’ 전희철을 경기도 용인에 있는 SK 농구단 접견실에서 만났다.

SK 배신하기 싫어 다른 팀에 안 가

SK 농구단 접견실에서 만난 전희철 감독은 “이기는 습관이 밴 팀을 만들겠다”고 했다. 김경록 기자

SK 농구단 접견실에서 만난 전희철 감독은 “이기는 습관이 밴 팀을 만들겠다”고 했다. 김경록 기자

감독 자리가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다 싶은 때가 있나요.
“지금은 선수들이 워낙 잘해 줘서 행복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어쨌든 이 정도까지 스트레스를 받는구나 절감합니다. 얼마 전 2연패를 한 뒤 ‘3연패 하면 컵대회와 정규리그 1라운드 성과가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을 한두 시간밖에 못 잤어요. 모든 게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제 성격 탓도 있겠지요.”
막판까지 시소게임을 하다가 1~2점 차로 진 경기도 있던데요.
“선수들한테 당황한 모습, 조급한 모습 보이면 안 되기 때문에 표정연기를 해야 하고, 작전타임을 부른 뒤에도 한 박자 쉬고 말합니다. 14경기를 치렀는데 5점 차 이상 진 경기가 없어요. 공격이 잘 안 풀려서 지긴 했지만 수비에선 끝까지 집중력을 갖고 잘 버텨줘서 고맙죠.”
SK는 ‘빠른 농구’라는 라벨이 붙어 있는데요.
“속공 숫자 리그 1위긴 하지만 우리는 ‘경기당 10개’라는 말도 안 되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문 감독님 계실 때부터 빨리 달릴 수 있는 선수 구성을 해 놨고요. 다만 공격 전개가 단조롭다는 단점이 있어요. 2명의 선수가 패턴 플레이를 할 때 나머지 3명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주는 ‘모션 오펜스’를 더 다듬고 있습니다.”

문경은 감독-전희철 수석코치는 SK에서 10년 세월을 함께했다. 그래서 “진짜 부부같다”는 농담도 들었다. 전 감독은 “부부도 성격이 좀 다른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생긴 것도 그렇고 남성적이고 집요한 스타일이고, 문 감독님은 얘기를 많이 듣고 재미있는 면도 많지만 결정을 내릴 때 약간 기대는 면도 있거든요. 그렇게 둘의 박자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고 회고했다.

“언제까지 문경은 밑에 있을 거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죠?
“물론이죠. 여자팀 포함해 여러 곳에서 감독 오퍼도 받았습니다. 근데 전 SK가 좋았어요. 은퇴할 때 영구결번(13번)도 해 주고 코치로서 길도 열어줬잖아요. 배신하기 싫었죠. 문경은-전희철 체제로 계속 가도 좋았는데 지난 4월 갑작스러운 상황을 접하고 좀 힘들었습니다.”
“SK에는 자밀 워니, 최준용, 전희철이라는 세 가지 물음표가 있다”고 했는데,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뀐 사람이 있습니까?
“워니와 최준용은 바뀐 것 같고, 저는 아직 물음표입니다. 워니와 재계약 하려 했을 때 열에 아홉은 ‘저 말썽꾸러기를 왜 뽑나’고 했지만 저는 자신 있었어요. 살을 빼고 개인 플레이를 자제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고요.”
경복고 후배이기도 한 최준용(2m·포워드)은 어떻습니까.
“준용이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매력입니다. ‘언제 터질까’ 긴장감을 갖고 선수를 보는 게 스릴 있어요. 물론 안 터지길 바라지만요(웃음). 농구 재능이야 워낙 타고났으니까 팀으로서 어떻게 가야 할지만 조언합니다. 준용이는 천 번 잘하다가 한 번 못하면 욕 먹는 스타일이잖아요. 많이 진중해진 건 사실인데 밝은 이미지와 화려한 쇼맨십은 그대로 갖고 가라, 팬들과 소통은 하되 선을 넘지는 말라고 말해줍니다.”
문경은(왼쪽) 감독 시절 전희철 수석코치가 작전을 숙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경은(왼쪽) 감독 시절 전희철 수석코치가 작전을 숙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전 감독은 소문난 ‘얼리 어답터’다. 전자제품, 컴퓨터, 게임 등을 워낙 좋아한다. VR(가상현실) 안경도 써 보고 고가의 시스템 세팅도 직접 한다. 메모는 태블릿으로 하고 경기 영상 분석 프로그램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그는 “기계를 쓰면 일이 재미있다”고 했다.

당황한 모습 안 보이려고 표정연기

IT 장비를 팀 운영에도 활용하나요.
“미국에 코치 연수 갔을 때 썼던 전술 프로그램을 지금도 씁니다. 선수와 공의 움직임을 볼펜으로 그리는 것보다 다이어그램을 사용하면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고, 전에 그렸던 걸 반복 재생할 수도 있죠. 비시즌 때는 VR 글래스 사용법을 코치·선수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김기만 코치는 그걸 쓰고 호러 영화를 보다가 무서워서 뒤로 넘어지기도 했답니다.”
경비행기도 몰 수 있다는데 정말인가요.
“옛날에 2년 정도 비행기에 꽂힌 적이 있어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나온 플라이트 시뮬레이터(Flight Simulator)라는 게임을 했는데, 조이스틱을 이용해 비행기를 띄우고 내리려면 두꺼운 매뉴얼 북 한 권을 다 읽어야 합니다. VR 글래스를 끼고 조종석에 앉으면 진짜 비행기 모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륙하면 서울 전경이 아래로 쫙 펼쳐지지요. 자동항법장치를 걸어두고 한잠 잔 뒤에 LA 공항에 착륙시키는 거죠. 정말 재밌습니다.”
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스타였는데 지금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농구라는 스포츠가 더 많은 팬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만 농구 선수는 인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허웅-허훈 형제죠. 방송이나 SNS 노출 등을 통해 선수를 알리고, 그 선수가 하는 농구를 보러 오게 만드는 게 더 빠를 것 같습니다.”
농구 인기를 회복하려면?
“국내 선수의 하드웨어와 기술은 우리 때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봅니다. 문제는 프로 마인드입니다. 대학에서 프로에 오면 당연히 팬층이 생기고 미디어 노출도 늘어나는데 그걸 ‘아, 내가 인기가 있구나. 농구 인기가 좋구나’ 이렇게 착각하는 선수들이 꽤 있어요. 개인 기량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팬들에게 더 잘해줄 생각을 해야죠.”
이번 시즌 목표는?
“‘이 팀 힘드네. 다크호스구나’ 얘기 들으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목표를 바꿨습니다.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해 우승하는 겁니다. 저는 연습경기 할 때부터 ‘이기는 습관을 들이자’고 강조했고, 선수를 테스트 하면서도 이기려고 했습니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우리는 목표를 향해 전진할 겁니다.”

전 감독은 “좋은 성적 내고 보너스 많이 받아 VR 세트 최신 기종으로 바꿔야죠”라며 활짝 웃었다.

예능인 변신 서장훈 ‘운동선수는 무식’ 선입견 깨줘 고마워

2004~05 프로농구 경기에서 SK 전희철(왼쪽)과 삼성 서장훈이 맞붙는 장면. [중앙포토]

2004~05 프로농구 경기에서 SK 전희철(왼쪽)과 삼성 서장훈이 맞붙는 장면. [중앙포토]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10년 넘게 한국 농구를 이끌었던 허재·서장훈·현주엽 등이 예능인으로 변신해 방송가를 휩쓸고 있다. 전희철 감독은 “‘저 모습을 왜 재밌다고 하지?’ 싶은 때가 있는데 어쨌든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고, 본인들도 즐겁게 방송하고 농구도 알릴 수 있어서 좋다고 하네요. 저는 예능에 재능이 없어 농구로 승부를 볼랍니다”라고 말했다.

서장훈과 전희철은 맞수 연세대와 고려대의 골밑을 지키며 숱한 명승부를 연출했다. 전 감독은 “장훈이는 엄청난 키와 늘 화난 듯한 표정 등으로 좀 비호감이었는데 예능인으로 반전을 이뤄냈어요. 사실 장훈이가 옛날부터 말을 정말 잘했고, 지식도 많고 상식도 풍부했죠. ‘그때 말이야, 형’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우린 모두 방청객이 됐다니까요”라고 소개했다. 전 감독은 “‘운동선수는 공부도 못하고 머리도 비었다’는 선입견을 이분들이 깨줘서 고맙죠. 우리가 공부할 기회를 못 가진 거지 머리가 나쁜 건 아니거든요. 수학은 못해도 돈은 잘 셉니다”라며 크하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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