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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이형 못 챙겨줘 미안, 성용이형 월드컵 나갔으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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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호 28면

[스포츠 오디세이] 안익수 FC 서울 감독

전북 현대의 5연속 우승으로 막을 내린 올 시즌 프로축구 K리그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을 이뤄낸 팀은 FC 서울이다. 서울은 시즌 중반 한때 최하위(12위)까지 떨어져 창단 후 처음으로 K2리그로 강등을 걱정해야 할 위기에 빠졌다.

이 때 서울의 ‘수호신’으로 등장한 이가 안익수(56) 감독이다. 축구계의 대표적인 강골로 통하는 안 감독은 선문대를 맡은 지 3년 만에 대학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안 감독 부임 이후 FC 서울은 6승4무1패의 뛰어난 성적을 거둬 7위로 시즌을 마쳤다.

안익수는 고교 2학년 때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해 국가대표 수비수로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출전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강한 카리스마와 혹독한 훈련, 끊임없이 공부하는 지도자로도 유명하다. 안 감독을 중앙UCN 스튜디오에 모셨다.

내년 시즌 준비에 들어간 안익수 감독은 “FC 서울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알고 헌신하는 선수라면 누구나 환영한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내년 시즌 준비에 들어간 안익수 감독은 “FC 서울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알고 헌신하는 선수라면 누구나 환영한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고2 때 축구 시작, 월드컵 참가 악바리

박주영 선수가 FC 서울을 떠나는데요.
“오로지 하나의 목표(1부 잔류)만 보고 가다 보니 박주영 선수가 관심의 대상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던 것 같아요. 서울과 포항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은퇴하는 포항 오범석 선수가 팬과 동료의 따뜻한 인사를 받았고, 저도 포옹해 줬는데요. 팀을 떠나게 되는 박주영 선수에게 그렇게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박주영

박주영

FC 서울에 와 보니 뭐가 문제였습니까?
“시즌 마지막 포항전(2-1 역전승) 끝나고 라커에서 선수들한테 ‘이런 멋진 잠재성을 내면에 두고 왜 실망스런 모습을 만들어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그걸 아껴놨을까’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선수 각자가 갖고 있는 잠재력이 표출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는 거죠.”
전술과 선수 구성의 변화, 선수단 기강 확립 등 어떤 점이 통했습니까?
“기강이란 용어는 저한테 잘 안 어울립니다. 그게 제 캐릭터가 된 듯한데 이젠 아닙니다. 선문대에 있으면서 제가 해 왔던 축구, 하고 싶은 축구에 대해 깊이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선수가 경기장에서 실수하면 ‘왜 이런 집중력 가지고 팬들 앞에 나가나’라고 질책했는데 요즘은 일어날 수 있는 실수라고 생각해 미소가 지어집니다. ‘기다려야 할 시기였는데 왜 서둘렀을까. 나도 실수를 통해 이만큼 성장했는데 하물며 선수는 그걸 통해 성장하는 단초가 되는데 그걸 용납하지 못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죠.”
FC 서울 일부 선수가 코인 투자에 빠져 있다는 소문에 대해 “내기 직접 보지 않은 건 믿지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선수들을 믿었어요. FC 서울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알고 있고, 코로나로 경기장 못 찾는 팬들이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응원하고 질책도 하는 그 온도를 느끼고 있다고요. 그 확신 때문에 그 이슈가 공론화 됐을 때 분명히 이야기를 전달했고 선수들도 유혹은 있었지만 현혹되지 않았던 게 오늘의 스토리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어요.”
기성용

기성용

기성용 선수는 시즌 내내 좋지 못한 이슈(학생 시절 성추행 의혹)로 시달렸는데요.
“기성용이 그런 과정이 있었다면 지금 같은 대선수가 되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선수들 앞에서 ‘성용이형’이라 부르는데요. 제가 하는 축구의 70~80%까지 성용이형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점이 좋다’는 몇 마디로 포장이 안 되는 선수, 그라운드 안에서 감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선수입니다. 성용이형이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축구에 마지막으로 선물을 줬으면 합니다. 지금 컨디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데….”
왜 ‘성용이형’이라고 부릅니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니까요. (고)요한이형, 오스마르형, (박)주영이형도 마찬가지고요. 그들은 이 정도 대우를 받을 만한 레전드이고 프로페셔널입니다. 그들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오산고 출신 이태석·강성진 등 ‘젊은 피’를 중용했는데요. 차두리 감독이 이들을 잘 키워냈죠?
“차 감독과는 그라운드에서 마주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긍정적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그 안에서 꿈과 목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충실하신 분이라고 느꼈어요. 태석이는 운동 중독입니다. 하루도 운동을 안 하면 안 되는 선수죠. 성진이와 이한범(보인고 졸업)도 놀랄 만큼 내일이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조영욱 선수는 감독님이 오신 뒤 골 폭풍을 일으켰어요.
“영욱이가 운이 좋은 건지 제가 운이 좋은 건지(웃음). ‘보이지 않는 훈련’의 가치를 아는 프로페셔널이고, 기대치가 어디까지인지 가늠이 안 되는 무한 잠재성을 가졌어요. 20세 월드컵 준비할 때 2년 이상 월반시켜 뽑은 것도 그 잠재력을 본 거고요. 한국축구에 이름 석 자를 새길 선수입니다.”

FC 서울이 승승장구 하면서 응원석에 ‘안익수 찬양 문구’가 등장했다. ‘익버지(안익수+아버지)’ ‘넷플익수(넷플릭스 드라마 같은 경기를 한다는 뜻)’가 떴고, 십자가 모양에 ‘오직 익수’라고 쓴 피켓을 든 팬도 보였다.

안 감독은 “마지막 홈 경기 끝나고 기자들 질문 받고서야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았어요. 부임해서는 인터넷과는 담을 쌓고 살았거든요. 저한테는 과분한 칭찬이고, 그래서 더 책임감이 느껴집니다”고 말했다.

강골 이미지 벗고 따뜻한 남자 변신

고2 때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셨다면서요?
“돌아가신 아버님이 운동선수에 대해 안 좋은 시각이 있으셔서 반대를 하셨어요. 축구부가 있는 문일고에 진학했는데 하필 제 자리가 축구부 운동하는 걸 창문으로 넘겨다 볼 수 있는 곳이었죠. 축구에 대한 꿈이 숙명처럼 다가와 아버님께 ‘제 의견을 존중해 주십시요’라고 부탁드려 허락을 받았어요. 축구를 안 했다면 지금도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리프팅(공 차 올리기)도 못 하던 선수가 월드컵까지 갔는데요.
“선수로 받아주는 대학이 없어 시험 쳐서 중앙대에 갔는데 ‘특기자가 아니면 축구부 못 들어온다’고 해서 다시 시험을 쳐 인천전문대에 갔습니다. 축구를 통해 아버지께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새벽·오전·오후·밤, 하루 네 번 훈련을 했죠. ‘오늘 리프팅 5개를 했다면 내일은 6개를 하자’는 마음으로 노력했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축구계 대표적인 흙수저로서 ‘고집불통’ 이미지도 강했는데요.
“저는 선수 때나 지도자 때나 한 번도 ‘저를 선택해 주세요’라고 부탁해 본 적이 없어요. 인생은 자신에게 투자하다 보면 주변의 의식 있는 분들이 이끌어준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나를 선택해 주신 분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자기계발에 힘썼고요. 타협보다는 외골수로 축구 공부에만 매진한 게 안익수 인생이 아닐까 싶네요.”

안 감독에게 “내년에는 FC 서울이 어느 자리까지 가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지켜보시죠.”

중앙UCN 유튜브 채널

중앙UCN 유튜브 채널

“K리그 복귀한 이승우, 월드컵 주역 되길 응원”

유럽 무대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이승우는 K리그로 복귀해 재기를 노린다. 김현동 기자

유럽 무대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이승우는 K리그로 복귀해 재기를 노린다. 김현동 기자

안익수의 축구 인생에 가장 큰 좌절은 2016년에 찾아왔다. 그는 2017년 한국에서 열리는 20세 이하 월드컵에 출전할 대표팀 감독이었다. 당시 대표팀에는 ‘바르셀로나 듀오’로 각광받던 이승우와 백승호가 있었다. 팬들은 두 선수에게 열광했지만 안 감독은 팀워크 차원에서 냉정하게 이 둘을 관리했다.

어린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엄하게 대한다는 불만도 튀어나왔다. 결국 2016년 10월 아시아 청소년대회에서 2승1패로 예선탈락하자 축구협회는 안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안 감독은 “모든 게 제 능력부족이죠. 좌절이 컸지만 새로운 시각에서 축구를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죠”라고 회고했다.

이승우가 K리그로 복귀해 수원 FC에 입단했다. 안 감독은 “승우가 굴곡을 많이 겪었는데 그게 성장의 디딤돌이 될 겁니다”고 말했다. 이승우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지금은 대표팀에서도 제외돼 있지만 한국 팬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줄 거라 기대합니다. 카타르를 넘어 다음 월드컵에서 주역이 되기를 FC 서울에서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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