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오디세이] 안익수 FC 서울 감독
전북 현대의 5연속 우승으로 막을 내린 올 시즌 프로축구 K리그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을 이뤄낸 팀은 FC 서울이다. 서울은 시즌 중반 한때 최하위(12위)까지 떨어져 창단 후 처음으로 K2리그로 강등을 걱정해야 할 위기에 빠졌다.
이 때 서울의 ‘수호신’으로 등장한 이가 안익수(56) 감독이다. 축구계의 대표적인 강골로 통하는 안 감독은 선문대를 맡은 지 3년 만에 대학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안 감독 부임 이후 FC 서울은 6승4무1패의 뛰어난 성적을 거둬 7위로 시즌을 마쳤다.
안익수는 고교 2학년 때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해 국가대표 수비수로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출전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강한 카리스마와 혹독한 훈련, 끊임없이 공부하는 지도자로도 유명하다. 안 감독을 중앙UCN 스튜디오에 모셨다.
고2 때 축구 시작, 월드컵 참가 악바리
- 박주영 선수가 FC 서울을 떠나는데요.
- “오로지 하나의 목표(1부 잔류)만 보고 가다 보니 박주영 선수가 관심의 대상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던 것 같아요. 서울과 포항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은퇴하는 포항 오범석 선수가 팬과 동료의 따뜻한 인사를 받았고, 저도 포옹해 줬는데요. 팀을 떠나게 되는 박주영 선수에게 그렇게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 FC 서울에 와 보니 뭐가 문제였습니까?
- “시즌 마지막 포항전(2-1 역전승) 끝나고 라커에서 선수들한테 ‘이런 멋진 잠재성을 내면에 두고 왜 실망스런 모습을 만들어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그걸 아껴놨을까’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선수 각자가 갖고 있는 잠재력이 표출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는 거죠.”
- 전술과 선수 구성의 변화, 선수단 기강 확립 등 어떤 점이 통했습니까?
- “기강이란 용어는 저한테 잘 안 어울립니다. 그게 제 캐릭터가 된 듯한데 이젠 아닙니다. 선문대에 있으면서 제가 해 왔던 축구, 하고 싶은 축구에 대해 깊이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선수가 경기장에서 실수하면 ‘왜 이런 집중력 가지고 팬들 앞에 나가나’라고 질책했는데 요즘은 일어날 수 있는 실수라고 생각해 미소가 지어집니다. ‘기다려야 할 시기였는데 왜 서둘렀을까. 나도 실수를 통해 이만큼 성장했는데 하물며 선수는 그걸 통해 성장하는 단초가 되는데 그걸 용납하지 못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죠.”
- FC 서울 일부 선수가 코인 투자에 빠져 있다는 소문에 대해 “내기 직접 보지 않은 건 믿지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 “저는 선수들을 믿었어요. FC 서울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알고 있고, 코로나로 경기장 못 찾는 팬들이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응원하고 질책도 하는 그 온도를 느끼고 있다고요. 그 확신 때문에 그 이슈가 공론화 됐을 때 분명히 이야기를 전달했고 선수들도 유혹은 있었지만 현혹되지 않았던 게 오늘의 스토리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어요.”
- 기성용 선수는 시즌 내내 좋지 못한 이슈(학생 시절 성추행 의혹)로 시달렸는데요.
- “기성용이 그런 과정이 있었다면 지금 같은 대선수가 되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선수들 앞에서 ‘성용이형’이라 부르는데요. 제가 하는 축구의 70~80%까지 성용이형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점이 좋다’는 몇 마디로 포장이 안 되는 선수, 그라운드 안에서 감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선수입니다. 성용이형이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축구에 마지막으로 선물을 줬으면 합니다. 지금 컨디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데….”
- 왜 ‘성용이형’이라고 부릅니까?
- “그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니까요. (고)요한이형, 오스마르형, (박)주영이형도 마찬가지고요. 그들은 이 정도 대우를 받을 만한 레전드이고 프로페셔널입니다. 그들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 오산고 출신 이태석·강성진 등 ‘젊은 피’를 중용했는데요. 차두리 감독이 이들을 잘 키워냈죠?
- “차 감독과는 그라운드에서 마주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긍정적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그 안에서 꿈과 목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충실하신 분이라고 느꼈어요. 태석이는 운동 중독입니다. 하루도 운동을 안 하면 안 되는 선수죠. 성진이와 이한범(보인고 졸업)도 놀랄 만큼 내일이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 조영욱 선수는 감독님이 오신 뒤 골 폭풍을 일으켰어요.
- “영욱이가 운이 좋은 건지 제가 운이 좋은 건지(웃음). ‘보이지 않는 훈련’의 가치를 아는 프로페셔널이고, 기대치가 어디까지인지 가늠이 안 되는 무한 잠재성을 가졌어요. 20세 월드컵 준비할 때 2년 이상 월반시켜 뽑은 것도 그 잠재력을 본 거고요. 한국축구에 이름 석 자를 새길 선수입니다.”
FC 서울이 승승장구 하면서 응원석에 ‘안익수 찬양 문구’가 등장했다. ‘익버지(안익수+아버지)’ ‘넷플익수(넷플릭스 드라마 같은 경기를 한다는 뜻)’가 떴고, 십자가 모양에 ‘오직 익수’라고 쓴 피켓을 든 팬도 보였다.
안 감독은 “마지막 홈 경기 끝나고 기자들 질문 받고서야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았어요. 부임해서는 인터넷과는 담을 쌓고 살았거든요. 저한테는 과분한 칭찬이고, 그래서 더 책임감이 느껴집니다”고 말했다.
강골 이미지 벗고 따뜻한 남자 변신
- 고2 때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셨다면서요?
- “돌아가신 아버님이 운동선수에 대해 안 좋은 시각이 있으셔서 반대를 하셨어요. 축구부가 있는 문일고에 진학했는데 하필 제 자리가 축구부 운동하는 걸 창문으로 넘겨다 볼 수 있는 곳이었죠. 축구에 대한 꿈이 숙명처럼 다가와 아버님께 ‘제 의견을 존중해 주십시요’라고 부탁드려 허락을 받았어요. 축구를 안 했다면 지금도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 리프팅(공 차 올리기)도 못 하던 선수가 월드컵까지 갔는데요.
- “선수로 받아주는 대학이 없어 시험 쳐서 중앙대에 갔는데 ‘특기자가 아니면 축구부 못 들어온다’고 해서 다시 시험을 쳐 인천전문대에 갔습니다. 축구를 통해 아버지께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새벽·오전·오후·밤, 하루 네 번 훈련을 했죠. ‘오늘 리프팅 5개를 했다면 내일은 6개를 하자’는 마음으로 노력했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 축구계 대표적인 흙수저로서 ‘고집불통’ 이미지도 강했는데요.
- “저는 선수 때나 지도자 때나 한 번도 ‘저를 선택해 주세요’라고 부탁해 본 적이 없어요. 인생은 자신에게 투자하다 보면 주변의 의식 있는 분들이 이끌어준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나를 선택해 주신 분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자기계발에 힘썼고요. 타협보다는 외골수로 축구 공부에만 매진한 게 안익수 인생이 아닐까 싶네요.”
안 감독에게 “내년에는 FC 서울이 어느 자리까지 가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지켜보시죠.”
“K리그 복귀한 이승우, 월드컵 주역 되길 응원”
안익수의 축구 인생에 가장 큰 좌절은 2016년에 찾아왔다. 그는 2017년 한국에서 열리는 20세 이하 월드컵에 출전할 대표팀 감독이었다. 당시 대표팀에는 ‘바르셀로나 듀오’로 각광받던 이승우와 백승호가 있었다. 팬들은 두 선수에게 열광했지만 안 감독은 팀워크 차원에서 냉정하게 이 둘을 관리했다.
어린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엄하게 대한다는 불만도 튀어나왔다. 결국 2016년 10월 아시아 청소년대회에서 2승1패로 예선탈락하자 축구협회는 안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안 감독은 “모든 게 제 능력부족이죠. 좌절이 컸지만 새로운 시각에서 축구를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죠”라고 회고했다.
이승우가 K리그로 복귀해 수원 FC에 입단했다. 안 감독은 “승우가 굴곡을 많이 겪었는데 그게 성장의 디딤돌이 될 겁니다”고 말했다. 이승우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지금은 대표팀에서도 제외돼 있지만 한국 팬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줄 거라 기대합니다. 카타르를 넘어 다음 월드컵에서 주역이 되기를 FC 서울에서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